제주도 서귀포에 있는 하멜상선전시관

하멜을 비롯한 네덜란드 선원들은 네덜란드 동인도회사 소속의 무역선 스페르베르(Sperwer) 호(號)를 타고 1653년(효종 4) 1월 네덜란드를 출발하여 같은 해 6월 바타비아(Batavia, 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7월 타이완[臺灣]에 이르고, 8월 일본의 나가사키[長崎]로 항해 중 폭풍우를 만났다. 선원 64명 중 28명이 익사했다.

하멜을 포함한 36명은 제주도에 표착했다. 조선 관원들에게 체포돼 10개월간 제주도에 머무른후 1654년 5월 서울로 압송되어 훈련도감의 군인으로 배속됐다. 당시 조선은 외국인이나 낯선 인물이 나타나면 보내지 않는 정책을 취하고 있덨다. 하멜 일행은 고국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이들은 조선을 방문한 청나라 사신을 통해 탈출을 시도했다. 발각돼 전남 강진으로 유배된다. 강진에 흉년이 들자 전라도 여수 등 지방 여러 곳으로 분산 이송되었다. 전라도 여수로 이송된 하멜은 1666년 9월 동료 7명과 함께 해변에 있는 배를 타고 일본으로 탈출했다. 일본 나가사키로 도망하여 1668년 7월에 네덜란드로 귀국했다.

이들이 1653년부터 1666년까지 14년간 머무르면서 조선의 생활상을 적은 보고서가 바로 ‘하멜표류기’다. 조선의 지리 ·풍속 ·정치 ·군사 ·교육 ·교역 등을 유럽에 소개한 최초의 문헌이다. 하멜은 제주도에 표착하여 관원에게 체포된 경위와 1653년~1666년의 14년간을 제주도, 한양, 강진, 여수에 끌려다니며 겪은 고된 생활, 즉 군역(軍役) ·감금 ·태형(笞刑) ·유형 ·구걸의 풍상을 겪은 사실들을 소상하게 기록했다. 조선 사람과 접촉하면서 겪은 조선의 여러 지방마다 풍속과 사정을 상세하게 적었다. 부록인 《조선국기(朝鮮國記)》에는 한국의 지리 ·풍토 ·산물 ·경치 ·군사 ·법속(法俗) ·교육 ·무역 등에 대하여 실제로 저자의 보고 들은 바가 기록되어 있다.

하멜이 이 보고서를 작성한 이유는 14년간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에서 받지 못한 임금을 받기위한 것이었다.

‘하멜표류기’는 한국에서는 1917년 재미교포 잡지 ‘태평양’에 연재되었으며 최남선이 이를 ‘청춘’이라는 잡지에 최초로 수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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