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달장군이 싸움에 패하자 마고할멈은 큰 돌을 팽개쳐

단양군 영춘면에 있는 온달산성은 고구려가 신라군을 막기 위해 온달장군이 쌓아 올린 석조산성이다. 

온달장군은 이 성을 위해 석재를 마고할멈에게 부탁 해 가져오도록 했다. 마고할멈은 강(남한강) 건너 지금의 장발리에서 돌을 캐 산꼭대기까지 운반해 갔다. 

그런데 성이 다 돼갈 즈음에서부터 신라군과 싸움이 벌어졌다. 마고할멈은 부지런히 돌을 운반하다가 하루는 돌을 가져가려는 참 에 온달장군이 싸움에 패해 성을 빠져 나왔다는 전갈을 들었다.

마고할멈은 그 소리를 듣고 들고 있던 큰 돌을 냅다 팽개쳤다. 마고 할멈이 내던진 돌은 땅에 한 쪽 끝이 박혀 세로로 서 버렸다. 지금도 장발리에 있는 선돌(立石)은 그때 마고할 멈이 버린 돌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동네 이름도 선돌마을이라 부르게 됐다.

선돌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도 전한다. 온달장군은 한참 온달산성에서 신라의 대군과 싸우고 있을 때, 온달장군의 누이동생이 온달을 도우려고 산성으로 달려 가다 지금의 장발리에 이르러 온달이 패주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누이동생은 대경실색해 제 자리에 꼿꼿이 선 채 숨이 막혀 죽었다. 

오라버니인 온달장군을 잃은 누이동생의 시신은 한에 사무쳐 돌로 변했다. 장발리에 있는 선돌은 온달의 누이동생의 화신이라는 것이다.
 
영춘 읍내의 강 건너 서쪽에 휴석(쉬는 돌) 마을이 있다. 온달성은 온달이 그의 누이동생과 함께 쌓았는데 누이동생은 강변에서 돌을 주어 치마 폭에 싸 나르고 온달은 그 돌을 받아 쌓았다. 

누이동생이 돌을나르다 피곤하면 강가의 편편한 바위에 앉아 쉬곤 했다. 그런데 온달은 온달성에서 배수진을 치고 신라군사와 격전을 벌였다.

싸움의 승패가 쉽게 판가름나지 않고 오랜 시일이 지나자 신라군은 증원군이 도착해 군세가 한층 강해진데 반해, 고구려군은 성내의 양식이 부족했을 뿐 아니라 병사의 수효도 적어 마침내는 신라군에게 패하고 말았다. 

신라군에게 성이 함락되자 온달은 성에서 빠져나와 한 발자욱에 쉬는 돌까지 뛰어 건너 그 바위에 앉아 쉬었다. 신라군은 이곳까지 뒤쫓아 왔으나 찾지 못하고 되돌아갔다. 온달은 여기서 사람을 강원도로 보내 증원군을 요청했으며 한편으로는 격문을 띄워 군사를 모았다.

온달은 이곳에 머무는 동안 쉬는 바위 위에 손가락으로 윷판을 그려놓고 부하 장졸들과 윷놀이를 했다고 한다. 온달의 누이동생 과온달이 쉬었던 돌을 쉬는 돌(휴석)이라 부르게 됐다.
 
한편 단양군 영춘면 동대리에는 용소동이라는 마을이 있다. 이 마을은 용 솟말이라고도 하는데 용소가 있기 때문이다. 여기 용솟물은 수질이 좋아 동네 사람들의 음료수로 예로부터 쓰였다. 지금은 동네에 설치된 간이 상수 도의 수원으로 활용되고 있다.

용수동 앞에는 형제봉이 높이 솟아 있다. 형제봉에는 큰 바위 두 개가 마치 의좋은 형제처럼 나란히 서 있어 그것을 형제바위라고 부른다. 옛날 형제봉에는 커다란 이무기가 어떤 굴 속에 있었다. 몇 백 년을 굴 속에 살면서 용이 되기를 기다렸다.

이무기는 마침내 용으로 화신해 승천하게 됐다. 벽력과 같은 굉음을 내며 용으로 변한 이무기는 굴에서 나와 승천하기 시작했다. 파란 구름이 쫙 깔리면서 용은 그 속을 뚫고 하늘로 올라가게 됐다. 

그런데 그 광경을 산에서 나무를 하던 나무꾼이 보게 돼 그만 부정을 타고 말았다. 하늘로 올라가던 용은 냅다 땅으로 떨어져 죽고 말았다. 이때 용이 떨어지면서 오줌을 쌌는데 그것이 떨어져 괴인 곳이 지금의 용소라 한다.
 
또 영춘면 오사리는 조선시대 때에 역이 있던 곳이다. 옛날에 오사역에 김준남이라는 역노가 있었다. 어느 날 역노는 말을 끌고 청풍으로 가게 됐다. 청풍이 바라보이는 곳에 남한강이 있어 강을 건너게 됐다.

말을 끌고 강물 가운데까지 갔을 때 물살에 휘말린 역노는 그만 익사하고 말았으며 말은 간신히 강을 건너게 됐다. 주인을 잃은 말은 오사역에 돌아온 후에는 슬피 울기 만하고 먹이를 먹지 않았다. 밤낮을 울기만 하던 말은 그만 굶어 죽고 말았다.

역졸들은 주인을 잊지 않고 순사한 말을 거적으로 싸서 장사 지내 주었다. 그런데 동네에 행실이 좋지 않은 소년 서넛이 죽은 말의 고기를 몰래 먹어 버렸다. 그러나 말고기를 먹은 소년들은 며칠을 앓다가 모두 죽어버렸다. 동네 사람들은 충절스러운 말고기를 먹었으므로 천벌을 받았다고 믿었다. 물에 빠진 역노 의 가족들은 남은 말의 시체를 거둬 무덤을 만들어 주었다. 사람들은 그 무덤을 말무덤 또는 의마총이라고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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