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신의 풍란은 마야고의 전설로 환란(幻蘭)으로 환생

지리산의 여신 마야고(麻耶姑)는 남신 반야(般若)를 사모하여, 그리운 옷 한 벌을 고이 지어, 만나서 전해 줄 기회를 찾고 있었다. 그러나, 그 기회가 잘 닿지 않아 마음을 태웠다. 달 밝은 어느 날 밤, 마야고는 지리산 중턱에 앉아 반야의 옷을 품에 안고 그를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때 꿈에도 기다리던 반야가 자기 쪽으로 손짓하며 걸어오고 있는 것이 아닌가. 마야고는 바람에 나부끼는 꽃잎의 물결 속으로 반야의 옷을 든 채 달려갔다. 그리고 정신없이 무엇을 잡을 듯이 허우적거렸는데, 이상하게도 잡히는 것이 없었다. 
정신을 차려 보니, 그리운 반야는 보이지 않고, 쇠별꽃(나도개미자리과의 다년생 풀. 줄기가 연약하여 땅에 눕고, 흰 판화가 여러 꽃대에서 피어난다.)들만 달빛 아래서 바람에 흐느적거릴 뿐이었다.

쇠별꽃의 흐느적거림을 반야가 걸어오는 것으로 착각한 것을 알게 된 마야고는 너무나 실망하여 두 손바닥에 얼굴을 파묻고 한없이 울었다. 

마야고는 그 뒤로 자신을 속인 쇠별꽃을 다시는 치지 못하게 했다. 그리고 정성껏 지어 두었던 반야의 옷도 갈기갈기 찢어서 숲 속 여기저기에 흩날려 버렸다. 

또 매일 같이 얼굴을 비춰보던 산상의 연못도 신통력을 부려서 메워 없앴다. 마야고가 갈기갈기 찢어 날려버린 반야의 옷은 소나무 가지에 흰 실오라기처럼 걸려 기생하는 풍란(風蘭)으로 되살아났는데, 특히 지리산의 풍란은 마야고의 전설로 '환란(幻蘭)이라고 부른다.
멀리 웅장한 지리산 산자락을 타고 지리산의 정상 천왕봉(天王峰이 보인다. 높이 1,915m)에서 서쪽으로 바라보이는 반야봉(般若峰)(지리산의 제2봉. 높이 1,734m) 은 마야고가 늘 바라보고 반야를 생각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또, 마야고가 메워 버렸다는 못은 누군가가 천왕봉 밑 장터 목에서 찾아내 '산희샘(山姬샘)'이라고 이름 붙였다. 

마야고의 한과 노여움을 풀어주기 위하여 고려 때 천왕 봉에 사당을 세우고 여신상을 모셨는데(현재 성모상은 중산리 천왕사에 있음) 일제 때 한 왜병이 군도로 그 코와 귀를 잘라 버리려다가 신 벌을 받아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한편 1300여년전 반선 고을에는 송림사라는 절이 있어 해마다 불도에 정진하여 다른 불제자의 본보기 가 될 만한 승려 한 사람을 뽑았는데 이 승려가 칠석날 정성껏 기도하면 구름을 타고 은하수를 건너 극락세계로 간다하여 불도들은 최고의 영광으로 알았다. 
그리하여 이 행사는 해가 갈수록 성대해져 갔는데, 세월이 흘러 조선 선조때의 고승 서산대사가 이 이야기를 듣고 사람의 불심이 아무리 돈독하다고하여도 하늘로 올라가 신선이 될수는 없다고 생각하여 그해 모범스님으로 뽑힌 승려 에게 독이 묻은 옷을 입혀 신선대에서 기도하게하고 몰래 숨어서 동정을 살펴보았다.

밤이 깊어 자정이 넘었을때 신선대 밑 용소가 요동치더니 거대한 이무기가 나와 승려를 덮쳤다. 서산대사는 신선이 돼 하늘로 올라간다는 흉계를 꾸며, 해마다 송림사가 한 사람을 속여 승려를 이무기의 제물로 바쳐 온 비밀을 알게 되었다. 다음날 아침 신선대에 가보니 승려와 이무기가 함께 죽어 있었다. 

용이 못된 이무기가 죽은후, 사람들은 이 골짜기 이름을 뱀이 죽었다고 해서 이라 부르게 되었으며 골짜기 입구의 마을을 반선이라 칭하는 것도 신선이 되겠다는 승려가 이무기의 밥이 되어 반쪽 신선밖에 되지 못했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또한 차일봉은 그 모양이 마치 차일을 쳐 놓은 것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우번대, 종석대, 관음대 등 여러 이름을 갖고 있는데 정상에 암불이 솟아 있어 자연전망대로서 구실도 톡톡히 하고 있다.
 
차일봉 남쪽 천은사 계곡 상류 깊은 곳에 상선암이란 이름난 선원이 있었다. 신라의 고승 우번조사가 젊은 시절 조용한 상선암을 찾아 10년 수도를 결심하고 혼자 수도 정진하기를 9년째 되던 어느 봄날, 절세미인 한사람이 암자에 나타나 요염한 자태로 우번을 유혹하였다.
여인에게 홀린 우번은 수도승이란 자신의 위치를 망각하고 여인의 뒤를 따라 나섰다. 그 여인은 온갖 기회요초가 만발하고 아름다운 수림속을 지나쳐 자꾸만 높은 곳으로 올라갔다. 

우번은 여인을 놓칠까봐 산속을 헤치며 정신없이 올라 가다 보니 어느덧 차일봉 정상에까지 오르게 됐다. 그런데 우번을 유혹하던 여인은 간데 없고 난데없이 관음보살이 나타나 우번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깜짝 놀란 우번이 정신을 가다듬고 생각해 보니 이는 필시 관음보살이 자기를 시험한 것이라 깨닫고 그 자리에 엎드려 자기의 어리석음을 뉘우치고 참회하니 관음보살은 간데 없고 대신 큰 바위만 우뚝 서 있었다.

자신의 수도가 크게 부족함을 깨달은 우번은 그 바위 밑에 토굴을 파고 토굴속에서 수도하여 후일 도승이 되었다 한다.

우번도사가 도통한 그 토굴자리를 우번대라 부르게 됐으며, 또 우번조사가 도통하던 그 순간에 신비롭고 아름다운 석종소리가 들려왔다하여 이곳을 종석대라 부르며, 관음보살이 현신하여 서 있던 자리를 관음대라 부르게 되었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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