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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탕건바위'의 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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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7.11.12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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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천시를 가로질러 흐르는 남천(南川)[자호천(紫湖川)] 가에는 ‘탕건바위’라 부르는 바위가 있다. 몇 해 전만 해도 이 바위 아래는 물이 맑고 폭이 넓은 소(沼)가 있어 여름철 피서지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는데, 이곳에는 오래 전부터 전해 오는 애틋한 전설이 있다.
아주 오랜 옛날 야사동에 살고 있는 짠돌이 영감은 성질이 고약하고 욕심이 많아 주위 사람들로부터 좋지 않은 평판을 받고 있었다. 그러나 천성적으로 부지런하고 억척스러운 노력 덕분에 만석군의 살림을 누리고 있었다.

인근 대부분의 전답이 그의 것이었으니 지방 토호로써 당당하게 세력을 누리고 있었다. 그에게는 월례라는 아리따운 무남독녀가 있었는데 아버지와 달리 얼굴도 예쁘고 마음도 착하였다.

어느 날 밤 월례는 우연히 탕건바위 쪽으로 산책을 나갔다. 봄바람과 달빛, 풀 향기에 취해 바라본 강은 정말 아름다웠다. 둑 위의 수양버들은 여인의 머릿결처럼 달빛을 받아 일렁거리는 광경에 월례는 두 팔을 번쩍 들어 환호를 하다가 그만 실수를 하여 물에 빠지고 말았다.
물에 빠진 월례가 허우적거리고 있는데 마침 이곳을 지나가던 완산동의 더벅머리 총각이 구해 주었다. 정신을 차린 월례는 오래도록 총각을 쳐다보았다. 낯선 생각도 들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모든 것을 의지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월례는 총각의 등에 업혀 와서는 부모님에게 자초지종을 이야기하고는 남편으로 맞이하고 싶다고 하였다. 영감은 갑작스러운 일에 당황했지만 총각이 자기집의 소작인의 아들인 것을 알고는 딸을 설득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딸의 뜻이 워낙 확고함을 알고는 영감도 화가 치밀었다. 그래서 이 문제만은 들어줄 수 없다고 잘라 말하였다. 그러나 월례는 아버지의 강경한 태도와는 달리 은밀히 총각을 만나 장래를 약속하고 미래를 계획하고 있었다.

당황한 영감은 딸을 나무라고 매질도 해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할 수 없이 하인들에게 딸을 감시하도록 하고 총각집이 경작하고 있는 전답을 모두 회수하였다. 그러나 총각은 전답을 걱정하기보다는 오히려 월례를 만날 수 없음을 안타까워했다.

총각은 매일 밤 탕건바위로 갔지만 월례를 볼 수가 없어 혼자서 텅 빈 공간을 지키다가 그대로 돌아가곤 하였다. 두 사람의 그리워하는 마음은 날이 갈수록 더하였다. 더구나 월례의 집에서는 서둘러 혼인을 시키려고 백방으로 매파를 풀어놓았다.

월례는 자신의 사랑이 이루어질 수 없다면 차라리 죽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여 몰래 집을 빠져 나왔다. 그리고 총각이 오래도록 행복하게 살기를 빈 후 미련 없이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바위에는 고운 신발 한 켤레만 놓여 있었다.

이튿날 온 동네가 야단이 났다. 나뭇짐을 지고 돌아오던 저녁 무렵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은 완산동의 총각은 단숨에 탕건바위로 달려가 땅을 치며 통곡을 하였다. 그 울음소리는 강 건너 작산(鵲山)을 스치고 처절한 메아리로 돌아와 마을 사람들은 긴 밤을 우울하게 보냈다.

그로부터 총각의 울음소리는 하루도 그치지 않았다.

그 날도 총각이 월례가 남긴 신발을 안고 흐느끼고 있는데, 소복을 입은 여인이 나타나 “가난이 죄일 뿐이다. 그 바위를 깨뜨려라”는 말을 하고는 사라졌다.

청년은 허망한 꿈이지만 가슴에 응어리진 가난의 한을 풀 수 있다고 생각해 그 날부터 바위를 허물기 시작하였다. 이런 모습을 본 마을 사람들은 총각이 미쳐간다고 생각하여 불쌍하게 여길 따름이었다.

바위가 반쯤 깨져 탕건처럼 변한 어느 날이었다. 갑자기 바람이 불고 대낮인데도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캄캄해졌다. 하늘에서는 온 세상을 떠내려 보낼 듯이 억수같이 비가 쏟아지고 육중하던 바위는 춤추듯 흔들거렸다. 그리고는 심장이 갈라지듯 선지피를 뿜어내는 것이었다. 그러나 얼마가 지나고는 언제 그런 일이 있었느냐는 듯이 몰라보게 조용하였다.

그런 일이 있은 후 이변이 계속 일어났다. 그처럼 당당하던 영감 집안 살림이 차츰차츰 기울어지기 시작하였다. 불상사도 연이어 터지기 시작하였고, 그 때마다 당사자는 물론 온 동네의 살림이 축나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반대로 총각이 살고 있는 완산동에는 매일매일 경사가 생기고 재산이 늘어만 갔다. 이렇듯 몇 년이 지나고 보니 영감 집은 형언할 수 없는 거지꼴이 되었고 총각은 부자가 되었다.

그러나 총각은 기쁘지 않았다. 잘 산다는 것과 관계없이 월례를 잊지 못하고 있는 것이었다. 지나간 일이라 체념하려 하였지만 더욱 또렷하게 그녀의 얼굴이 떠오르는 것이었다. 결국 총각도 월례를 따라 그녀의 옆에 잠들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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