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이야기] 근대건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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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이야기] 근대건축물
  • 이두 기자
  • 승인 2017.11.09 1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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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말 개항장 일대 유럽식 건물 많이 지어져

한때 인천의 상징물로 여겨지며 자유공원에 있었던 존스턴 별장을 복원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또 나오고 있다. 10여년전부터 복원 논란이 되었던 터라 다시 추진될지 여부는 미지수다. 존스턴 별장은 1905년 인천자유공원에 지어진 유럽식 건물이었다. 빼어난 건축미를 자랑해 인천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물로 손꼽히기도 했다. 한국전쟁 당시 폭격으로 사라졌다. 인천에는 이처럼 특이한 근대 건축물이 많다. 과거 개항장 일대 중심지였으며 1990년대 초까지 인천의 중심지였던 인천 중구와 동구 등 구도심에 건축물이 남아있다. 100여년 전 국내 초기 서양식으로 지어진 일본은행, 답동성당, 인천우체국, 제물포구락부 등이 지금은 색다른 건축미를 자랑한다.

◆서양 건축양식 한눈에

근대 건물들은 그 양식이 다양하다. 옛 일본제1은행 건물은 후기 르네상스 양식을 본떠 지어졌다. 회백색 화강암으로 치장한 건물은 작은 돔과 현관 아치를 중심으로 좌우대칭을 이뤄 엄숙한 균형미를 보여준다. 현재는 인천개항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일본제1은행의 옆 블록에는 옛 일본제58은행과 지금은 인천개항장 근대건축전시관으로 사용되고 있는 옛 일본제18은행이 있다. 18은행은 절충주의적 성격으로 서양식 벽면 위에 일본식 지붕으로 이국적인 분위기를 풍긴다. 지금은 근대건축전시관으로 이용되고 있어 인천에 있는 근대건축물과 소실된 건물 등을 각종 자료를 통해 살펴볼 수 있다.

모더니즘 건축의 간결함과 수평으로 기다란 창이 특징인 일본 영사관 건물은 현재 인천 중구청사로 사용되고 있다.

프랑스 신부가 설계해 1897년 건립된 답동성당은 유럽의 마을 성당을 떠올리게 한다.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3개의 종탑이 있으며 평면은 십자가 모양이다. 자연석을 주로 사용한 서양식 성당과 달리 돌과 붉은 벽돌로 지었으며 뾰족탑으로 수직적 효과를 나타냈으며 주요 부분에는 하얀 화강암을 사용해 치장했다.

자유공원 바로 아래에는 ‘제물포 구락부’가 있다. 중국과 일본, 영국, 러시아, 독일, 스페인 등 인천에 거주하던 외국인들이 정보를 교환하고 교류를 위해 만든 사교 클럽이다. 당시에는 사교실과 도서실, 당구대 등이 있었고, 실외에는 테니스 코트도 있었다고 한다. 이곳은 일제강점기인 1912년 조계 제도가 폐지되며 기능을 상실했다. 1913년에는 일본재향군인연합회, 1934년에는 일본부인회, 광복 직후에는 미군 장교 클럽, 1947년에는 대한부인회 인천지회 등이 사용했다. 우리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세워져 오랫동안 외세에 의해 사용됐던 공간이다.

자유공원 일대에는 상하이에서 활동하던 영국인 사업가 존스턴의 여름별장과 인천에 세워진 최초의 서구식 주택인 세창양행 숙사, 인천 세관의 통역관이던 중국인 오례당의 주택, 독일 상인 파울 바우만의 주택 등이 있었지만 현재는 자취를 감췄다.

인근에는 일본 공병대가 물자 수송을 위해 만든 홍예문과 서양식과 일본식을 섞어 화강암으로 만든 인천우체국(현재 인천 중동우체국)도 눈길을 사로잡는 근대 건축물이다.

◆공원 기상대 등 한국 최초 넘쳐나

신문물이 들어온 곳인 만큼 인천에는 '최초'가 많다. 중구청에서 인천역 쪽으로 200m쯤 걸으면 나오는 차이나타운에는 자장면 발상지인 '공화춘'이 있다. 1905년 지어진 2층짜리 목(目)자형 구조물로 전형적인 청나라 양식을 따랐다. 화교 출신 우희광이 1911년 이곳에서 중국 음식점을 개업해 유명해졌다. 중화민국 수립을 기념해 '공화국의 봄'이라는 뜻의 공화춘(共和春)이라고 했다고 한다. 

응봉산에 위치한 자유공원은 한국 최초의 서구식 근대공원이다. 서울 파고다공원보다도 9년이나 빠른 1888년 조성됐다. 산 정상에 위치한 인천기상대는 한국에서 처음으로 근대적 기상 관측을 시작한 곳이다.

인천 개항 후 가장 먼저 영사관을 설치한 나라는 일본이었다. 1883년 일본은 조계지의 일본인 거류민을 보호하기 위해 현재 중구청 자리에 부속 경찰서와 감옥이 있는 2층 목조의 영사관을 준공했다. 건축 자재는 모두 일본에서 가져왔다고 한다. 이 건물은 조선총독부가 설치된 1910년 이후에는 인천부청사로 사용되기도 했다. 현재 건물은 1964년 3층으로 증축된 것이다.

중구청에서 청ㆍ일 조계지 경계 계단으로 가는 거리에는 새로 지은 일본식 건물이 들어서 있고, 계단 건너 옆으로는 중국인이 1925년 건립해 사용했던 건물이 자리한다. 2층 벽돌 건물로 경사진 지붕과 개방형의 발코니가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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