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명택 (한국서예가협회 이사)

서예는 한자를 대상으로 시작되었기 때문에 그 기원은 한자의 시초인 은대(殷代)의 갑골문까지 올라간다.

그러나 모필에 의한 서사체의 예술성 추구는 후한대(後漢代)부터 본격화되었으며, 남북조시대 동진(東晉)의 왕희지(王羲之) 등에 의해 서풍의 전형이 확립되었다. 우리나라에서 서예가 본격적으로 전개된 것은 한사군(漢四郡)을 통해 한대의 문화가 유입되면서부터이다. 삼국시대의 서예는 금석유물을 통해 살펴볼 수 있는데, 고구려는 위예법(魏隸法)에 동진의 해법을 가미한 예해혼합풍(隸楷混合風)이 성행했던 듯하며, 특히 광개토대왕비의 서체는 질박하고 근엄한 특색과 함께 웅장한 기상이 담겨 있어 당시 중국에서도 보기 힘든 명품으로 꼽힌다.

따라서 서예는 동아시아 천년 역사의 전통적 예술 혼이 응집되어 있으므로 현재 세계의 예술문화 형성과 구성에 아주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인간은 인류 역사와 함께 해온 글자를 보다 아름답게 나타내고자 노력해 왔다. 이에 따라 여러 가지 서체가 만들어지고 우리들의 생활과 깊은 관련을 가지면서 조형성, 예술성이 이루어져 왔다. 글씨를 아름답게 쓰고 싶어하는 마음은 사람의 정서를 순화하여 정신의 풍요를 가져오게 되므로 서예를 “심성을 표현하는 예술”이라고 일컬어 왔다. 간단한 점과 획 하나하나는 극히 단순하지만 이것이 결합되면서 무한한 조형의 아름다움이 창조되고 이의 연마를 통하여 심미적이고 창조적인 인간상 정립과 정서를 향유할 수 있게 된다.

예로부터 선비들의 여섯 가지 교육 과목으로 육예(六藝)가 있는데 禮,樂,射,御,書,數가 그것이다. 書(서예)를 독립된 한 교과목으로 여길 만큼 서예는 조상들의 정신수양에 있어서 필수적인 학문이었다. 道, 藝, 技가 통합된 동양 예술의 극치로 보았다. 문자의 단순한 기록으로 볼 때는 기호에 불과하지만 그 문자를 통하여 조형성을 추구하고 조화와 율동을 찾으면서 정서를 순화하고 창조의 기쁨을 경험 할 수 있다.

우리의 선인들이 남긴 문화유산 중에서 가장 고귀한 정신이 담긴 전통문화 예술의 하나이다. 이러한 서예의 우수성을 알고 익힘으로써 민족의 우월성과 자긍심을 께닫고 서예술의 표현을 통하여 인격의 완성은 물론 실용성도 추구하여야 한다. 국제화 시대에 우리들은 자칫 잊혀지기 쉬운 전통문화로써 서예를 자율적으로 표현, 감상하고 나아가 창작함으로써, 주체적 자아의식을 지닌 창의력 있는 인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1. 서예 인구의 감소

필자가 30년 전 서예학원을 개원 할 때만 해도 초, 중, 고교생들은 서예뿐만 아니라 미술, 피아노학원을 오가며 문화예술의 기초를 다지고 익혀 정서적으로 풍요로운 소양을 쌓아 청소년백일장과 경연대회에서 선의의 경쟁을 하던 모습이 요즘은 사라진지 오래되었다.

5년 전 의정부 靑少年育成會에서 주최하는 청소년 서예백일장 심사를 하면서 서예인구의 감소가 이렇게 까지 바닥인가? 하고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었다. 이 행사는 20년의 전통을 갖고 있었으며, 초기에는 매년 약 1000여 명이 참석하는 국내에서 손꼽힐 만한 행사여서 학생들 간에 경쟁이 치열 했었고. 이 백일장에서 대상(敎育長賞)을 받고 국내외 서예학과에 진학한 학생이 10여 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백일장에 참가한 초, 중, 고생의 전체 참가 인원이 30여 명인 것을 보고 할 말을 잃었다. 이렇게 서예에 대한 관심이 줄어든 원인은 과연 어디에 있을까?

첫째는 우리나라 서예의 성쇠기를 몸소 겪어 오면서 시대별로 살펴보면 노무현 정부 들어 경제에만 집중하여 문화예술 예산을 삭감하거나 축소 운영 하는 데에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당시 시, 도 단위 女性會館에서는 문화예술 취미 강좌를 대부분 閉課하고 技術敎育에 집중하여 주부들에게 자격증을 취득하도록 하여 젊은 어머니들이 문화예술에 대한 관심을 멀리하였다고 본다. 또한 동아시아의 한자 문화권의 위상이 점차 살아나고 있는데도 한자교육을 멀리하고 있다. 특히 이명박 정부 들어 영어 沒入式 교육을 하였고 초, 중등 학생들에게 문화 예술 특기로 상을 받을 경우 優待하던 加算點制를 廢止함으로써 학부모나 학생들이 서예학원을 등록하지 않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대학의 서예과에 진학할 학생들이 급속히 줄어들어 몇 개 되지 않는 서예학과의 폐과가 이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둘째 서실운영자 당사자의 교육방법 미숙과 경험부족 등을 들 수 있다.

비단 서예 뿐 만 아니라 문화예술을 교육하려면 최소한 유능한 스승을 모시고 10∼20년 이상은 공부하거나 서예과를 이수한 후에 학원이나 교습소를 운영해야 할 것이며, 그 후에도 지속적인 연마를 하여 교학상장하면 될 것이다. 특히 서예는 한문을 꾸준히 공부하여야 하며 서예와 한문을 동시에 지도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작금에 수양이 부족한 서예인들이 운영하는 서실들은 이미 도태 되거나 사라졌고, 전통예술의 큰 꿈을 갖고 서예공부에 전념했던 젊은이들이 생활을 영위할 수 없어 직업을 바꾸거나 꿈을 포기하는 사람들을 볼 때 안타깝기 그지없다.

그나마 현재 겨우 명맥을 잇고 있는 서예학원들도 운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으니 안타까움이 더할 뿐이다.

2. 노령 층의 서예인구 증가

근대화과정속에서 산업의 발전과 의학기술의 향상에 따라 인간의 수명은 점차 늘어나게 되었고, 이러한 산업화와 경제적 성장의 이면에 환경문제와 청소년 일탈문제, 노령화 문제 등 여러 사회적 현상들이 나타나게 되었다.

이로 인해 노인 인구가 늘어남에 따라 65세∼80세의 노령 층의 어르신 들이 서실을 찾는 경우가 점차 늘어나는 추세이다. 그러나 그 분들의 문의가 별로 반갑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서예를 趣味로 가지려면 직장생활을 한다고 할 때 늦어도 50세부터라도 시작했어야 어느 정도 서예가로 성장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데, 정년퇴직을 하고 65세 이상 된 분들은 몸은 이미 굳어가고 정신 또한 昏迷해 지는 시기이므로 학습 능률을 기대하기란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뿐만 아니라 젊은 주부들과의 대화 또한 세대차이로 인하여 원활하지 못하여 여러 가지 문제점으로 擡頭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렇다고 서실마다 청소년이 전무한 상태에서 이분들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도 없는 입장이다 보니 운영자는 스트레스를 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분들이 대부분 젊었을 때는 고위직이나 중소기업에서 나름대로 대우를 받던 분들이다 보니 아집도 강하고 본인 실력은 젊은이들을 따라가지 못 하면서도 같은 대우를 받기 원하여 시기와 질투심을 들어내기도 하여 더욱 안타깝다 하겠다. 다만 심려되는 것은 이러다가 향후 서실들이 노인정으로 轉落하지나 않을까 염려가 될 따름이다.

3. 주민센터 서예교육의 문제점

30여 년전에는 각 동사무소마다 2∼30여 명의 공무원이 상주하여도 업무가 바빠서 기다려야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였는데, 20여 년전부터는 우리나라 모든 관공소에 컴퓨터가 보급되어 민원서류의 전산화가 완료되므로 인하여 작은 민원실에 4∼5명만 있어도 사무에 여유가 있는 시대가 되었다.

따라서 주민센터로 改稱하여 남는 공간을 활용하여 주민들에게 문화 취미를 즐길 수 있는 교육의 場으로의 변모를 가져오게 되었다. 물론 취지는 좋았다. 그러나 실재 운영 실태를 보면 문제점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첫째는 문화에 一面識도 없는 공무원들의 卓上行政에서 비롯된 문제이다. 진정 지역 주민들을 위하여 문화 교육서비스를 제공하려면 첫째 강사들을 채용 할 때 일정한 자격 기준이 있어야하고, 둘째 강사들에게 최소한 시간당 4∼5만원이상의 수당을 준비한 상태에서 시작 했어야 하며, 셋째 각 동사무소 마다 2∼3가지의 과목만 선정하여 최선의 교육을 실시했어야 한다.

그런데 요즘 각 주민센터에서 主婦들과 老年層의 서예 인구가 늘어나고 있으나 전통문화에 대한 무관심과 예산부족 등의 이유로 서예 강사들에게 거의 봉사 수준 내지 재능기부를 강요하다보니 실력 있는 서예작가들이 외면하게 되었고, 수양이 일천한 강사들이 布陣하여 지도하고 있으니 오히려 큰 뜻을 가지고 입문한 주민들이 환멸을 느끼고 아예 서예를 떠나거나 보다 훌륭한 서예가를 찾는 경우가 발생하고 있다.

지금같이 전시행정으로 10∼20여 개 과목를 무작위로 개설하여 강사들의 대우는 뒷전으로 돌리고 있으니 이것은 오히려 지역 주민들에게 피해를 주고 있는 것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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