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력에 동그라미가 그려진 그제는 어머님 생신이었다. 그때 보니 사흘 후인 내일은 입동(立冬)이다. 입동에 따뜻하면 겨울도 따뜻하다는데 엊그제 내린 비 탓에 갑자기 추워졌다. 이젠 가을도 끝물인 모양이다. 앞으로 서너 달은 물도 땅도 추위에 떠는 겨울이다. 겨울잠 자는 짐승들은 땅굴을 파고 들어간다는데,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우리는 그럴 입장과 처지가 아니라서 그럴 수가 없다. 없는 사람은 더 바쁘고 티가 나는 추운 계절이 바투 다가섰다.

안성에 있는 둘째 동생의 농장은 초록 물결로 흥건하다. 추운 겨울이 닥쳐오건만, 들판에는 보리들이 두 잎을 가위 모양으로 올리며 예쁘게도 자란다. ‘입동 전 가위보리’라면서 내년에는 분명히 풍년이 들겠다며 잎들을 쓰다듬는다. 올해는 유난히 가뭄이 심했다. 둘째 동생이 농사를 짓다 보니 평소에 안 하던 가뭄 걱정도 꽤 많이 했다. 내가 사는 게 좀 불편하더라도 올겨울에는 눈이라도 많이 내려서 내년은 올해와 같은 가뭄 걱정이라도 덜었으면 좋겠다. 

배추와 무를 심은 텃밭에서 동생은 무 하나를 뽑더니 낫으로 쓱쓱 깎아 두 토막을 내더니 푸른 쪽을 내게 건넨다. ‘트림만 안 하면 인삼’ 먹은 것보다 낫다면서 무뿌리가 곧고 깊게 박혀 내년에는 모든 농사가 풍년이겠단다. 돌아오는 길에 저수지 근처에 있는 식당 앞에서 차를 세우더니 추어탕이나 들고 가란다. 들판에서 추위에 떨었던 판에 뜨끈한 추어탕 한 그릇씩 뚝딱 비우고 나니 배 속까지 든든해 세상 부러울 게 없다. 묵은 시래기 향이 오래도록 입가에서 그윽한 향으로 맴돌던 저녁이었다.

입동 무렵이면 겨우살이의 첫 목록인 김장이 시작된다. 시장바닥에 수북하게 쌓인 싱싱한 배추와 무가 얌전하게 입양할 주인을 기다린다. 요즘에는 잘 말려두면 귀한 시래기가 되는 무 잎사귀와 푸성귀도 덤으로 가져가는 이도 늘었다. 배추와 무는 짠 소금을 뿌려 절이면 식감이 아삭하게 변한다. 겨울 반찬으로 김장김치만 한 게 없다. 발효식품으로 저장했던 우리네 조상님들 슬기가 새삼 존경스럽다. 이미 우리네 전통김장은 세계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코흘리개 어린 시절, 김장하던 어머니 곁을 맴돌다가 붉은 양념을 싼 돌돌 만 절인 배추 한입을 맛나게 얻어먹고 뛰놀던 옛 기억이 떠올라 문득 군침을 꿀꺽 삼킨다. 

남들은 가을 단풍 구경 간다고 야단났는데, 어머니는 무를 썰어 방바닥에 말리는 무말랭이를 보며 표정이 사뭇 진지하다. 조카들이 창틀에 매단 시래기 냄새도 안 가셨는데, 또 냄새를 풍긴다며 코를 막고 찡그리거나 말거나…. 감은 올해는 대풍이다. 한 그루에서 2백여 개도 넘게 땄으니 말이다. 물론 까치밥으로 대여섯 개는 일부러 남겨두는 것도 잊지 않았다. 곶감을 만들기 위해 칠팔십여 개는 깎아 꼬치를 만들어 매달았고, 나머지는 소쿠리에 담아 홍시로 저장했다. 감 껍질은 햅쌀로 만든 시루떡에 버무려 쪘다. 입동에는 장독대 터줏가리와 광까지 구석구석에 동티나지 말라는 액막이로 떡을 놓았다. 물론 농사에 애쓴 소는 물론이고 이웃집과도 당연히 나눠 먹던 그 시절이 그립다.

이어령 선생 같은 이는 우리나라가 이만큼 잘살게 된 이유를 코흘리개 아이들 때문이었다고 우스갯소리도 했다. 어렵던 그 시절, 어른들이 아이들 코를 닦아주며 “얘야! 흥(興)해라!”라고 해서 우리나라가 이처럼 부흥됐단다. 입동을 발음하면 [입똥]이다. 입이 똥이 된 못된 자들 요즘 너무 흔해 빠졌다. ‘흥하라’라면 서로 흥하고, ‘망할 놈아’ 하면 하늘이 노해 되레 자신이 망한다. 요즘 세상 돌아가는 꼴 목구멍을 막는 짙은 가래보다도 역겹다. 날까지 추워지니 콧물이 저절로 흐른다. 체면이면 따지지 말고 너나없이 흥흥, 시원하게 풀어내자. 내일이면 입동이다, 얼른 흥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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