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 씨가 된다’는 옛말이 있다. 생각 없이 내뱉은 말이 현실로 나타남을 경고하는 말이다. 우리의 뇌세포 98%는 자기가 말한 대로 움직이려고 준비 중이란다. 한때, ‘꿈☆은 이루어진다’라는 말이 유행했었다. 따라서 긍정적인 말을 하면 삶이 긍정으로, 부정적인 말만 일삼으면 인생 또한 안 되는 방향으로 흐른다. 오죽하면 ‘입이 보살’이고 ‘한마디 말로 천 냥 빚’도 갚는다고 했겠는가. 요즘 공중파 방송에서 나오는 말도 험할 대로 험해졌다. 말로 잘 먹고 잘사는 고위직 사람들마저도 말 같지 않은 말을 내뱉는다. 그야말로 ‘아니면 말고’ 식으로 막가고 있다. 

‘말이 씨가 된다’는 말은 ‘반드시 현실로 온다’라는 솔깃한 말이지만 한편으로는 저주가 담긴 무서운 뜻도 담겼다. 옛날에 동네에서 욕 잘하는 어느 아주머니가 남편과 싸울 때마다 걸핏하면 ‘길바닥에 나가서 뒈질’이라든가 ‘꼬꾸라져 죽을’이라면서 씩씩거렸다. 그러던 어느 날 “저 웬수는 귀신이 왜 안 잡아가지”하면서 대문을 박차고 나와서까지 고래고래 악을 썼다. 그런데 진짜로 그날 아저씨가 산에서 나뭇짐을 지고 내려오다가 미끄러져 계곡으로 굴러떨어져 귀신 앞으로 직행했다. 말이 원하는 대로 진짜 이뤘다. 

말이 씨가 된 사례는 가수들을 보면 더욱 생생하다. '세상은 요지경'을 불렀던 신신애는 진짜로 사기를 당했다. 노랫말 그대로 ‘여기도 짜가 저기도 짜가, 짜가가 판’을 쳤던 때였다. 그 이전에도 '0시의 이별'을 부른 가수 배호는 0시에 '마지막 잎새' 흔들며 '돌아가는 삼각지'로 떠나버렸고 '낙엽 따라 가버린 사랑'의 차중락과 '간다 간다 나는 간다 너를 두고 나는 간다'던 김정호 '떠나가 버렸네'라던 가수 김현식이 노래처럼 일찌감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떴다. 최근 인구에 회자하는 가수 김광석도 '서른 즈음에'를 불렀지 않았던가. 간절하게 '만남'을 부르던 노사연은 원하던 대로 듬직한 무송 씨를 만남이 늦게나마 이뤄져 결혼했고…. 

‘말’을 길게 발음하면 ‘마알’이다. 즉 ‘마음 + 알’이다. 말이 곧 마음이며 알 같은 존재라는 뜻이 된다. 마음을 곱게 쓰면 말이 곱고, 말이 험악하면 당연히 마음도 그럴 거라는 안 봐도 뻔한 비디오다.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그 사람의 생각이다. 품위를 지키는 말은 자신은 물론 그 말을 듣는 사람의 인격까지도 높여준다. 예전 정치인들은 고사성어나 명작의 한 구절을 인용하면서 말이라도 에둘러 그럴싸하게 했다. 그야말로 ‘문자’를 쓸 줄 알았다. 그런데 요즘 정치꾼들은 스마트폰 다루듯 아니면 말고 식이라서 새겨들을 말이 없다.

공자 말씀이던가. 유익한 벗과 손해인 벗 세 가지가 있다고 했다. ‘정직하고, 성실하며, 듣고 보아서 얻은 지식이 많은 벗은 유익하고, 편벽되고, 아첨을 잘하며, 말만 잘하면 해롭다’라고 했다. 미안하게 생각하지 말고 내 주변부터 둘러봐야 한다. 옛 중국의 어느 정치가도 ‘설(혓바닥 舌)’이라는 시에서 ‘입은 화를 불러오는 문이요, 혀는 몸을 베는 칼’이라고 했다. 험한 세상 살면서 조심해야 할 게 한둘은 아니겠지만, 말만큼은 잘 가려서 해야 한다. 특히 남의 말일수록 그렇다. 말은 때로는 사람을 해치는 흉악한 무기가 되니 말이다.

세상 바뀌나 했건만 역시나 서로 잡아먹겠다고 아우성이다. 여기저기서 예전보다 강도가 높은 새로운 적폐가 고개를 들 조짐이다. 이권 챙기려고 달려드는 떼거지들 핏발 선 눈빛이 예사롭지 않다. SNS에서 댓글 달지 않고 ‘좋아요’를 누른 이유는 대부분 진짜 좋아서가 아닌 별 볼 일 없다는 대답이다. 말 많으면 탈도 많게 마련이다. 막말 좋아하면 자신도 그 꼴로 가겠다는 뜻으로 하늘도 받아들인다. 남의 말처럼 하기 쉬운 말은 없다. 좋은 말도 기분 상하는데 남의 말을 나쁘게 한다면 내 말을 좋게 해 줄 성인군자는 없다. ‘말로써 말 많으니 말 말까 하노라’라던 무명씨의 옛시조 마지막 구절이 떠오르는 시월도 이젠 끝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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