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대 전 안양문화원장

안양은 전국에서 포도가 가장 유명하던 도시였다.

포도는 안양의 정체성이었다. 그 당시 초등학교 교과서에 포도의 명산지 안양이라고 쓰여 있었다.

지금은 포도밭들이 다 아파트가 들어서 찾아보기 힘드나 안양의 노인들은 그때의 포도맛과 정서를 잊지 못하고 살아간다.

지금은 안성(安城)으로 그 명예가 옮겨진 것 같다. 故 이석용(李奭鎔)시장이 시작하여 신중대(愼重大)시장이 적극적으로 포도밭 늘리기 운동을 펼쳤다.

안양농협에 협찬을 얻어 포도 시식회도 매년 펼쳤다. 포도를 심는 농가에는 지원비도 지급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밭이 없어 더 확장하지 못하고 중단하고 말았다.

포도 시식회에 갔다가 들은 이야기인데 전국 포도중에서 안양포도가 가장 당도가 높다고 했다.

안양의 포도가 전국의 으뜸인 긍지와 그윽한 향기와 정서를 다 잊어버린 지금, 향토의 정체성을 살리기 위해서 〈포도축제〉를 기획하였으나 예산이 여의치 못해 실현하지 못하고 있다. 그렇게 예산이 많이 드는것도 아니다.

우선 세가지 행사만 시작해 본다.

1. 포도아가씨 선발대회

• 文化院 주최 주관

• 심사위원회 구성

• 진선미현숙정 6인 선발

• 소요예산 약 1,000만원

2. 포도 미술제

안양미협 회원들이 故 홍사영 지부장때부터 26회를 매년 거르지 않고 하고 있다가 여기에 격려비 500만원 정도만 후원하면 훌륭한'포도미술제'가 될 것이다.

(관악 미술제로 이름을 바꿨다. 원인은 안양포도가 별로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3. 포도 시식회

안양농협 주최 주관

현 거화예식장 자리부터 구 안양경찰서 자리까지가 포도밭이었고 그 안에 경향포도주(대표 황인웅)공장이 있었다.

안양시 석수 안양예술공원 입구 양쪽이 다 포도밭이었고 비산동 관양동 밭들은 다 포도를 심었었다.

'포도축제'를 매년 거행하여 전국에 안양이 포도 도시로서의 원조임을 다시 알리고 싶다. 방송에 굴뚝도시 안양이라고 하는 보도가 있었는데 포도도시에서 굴뚝도시로 넘어가는 과정이 생략되어 서운했다.

안양시는 매년 1,500만원정도의 예산을 수립하여 文化院에 주최 주관을 맡기고 안양 농협에 협찬을 구하여 포도 시식회도 매년 이룩되도록 하여 주시기 바란다. 결과로 포도향과 그 정서로 안양의 정체성이 드높아지기 기원한다.

안양시가 추진하는 제2의 안양부흥 운동에〈포도축제〉가 기초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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