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흘간의 연휴가 끝났다. 다시 오기 쉽지 않을 황금연휴를 알차게 보내려고 궁리에 궁리를 보름 전부터 했던 터였다. 연휴 전날, 도립중앙도서관에서 10권, 선경, 병점도서관에서 각 7권씩 총 24권의 책을 빌려와 노트북 앞에 쌓아놓았다. 이번 휴가 중에 완전히 독파하는 게 목표다. 오산시문학회 공 회장의 감성 수필집 초고도 이참에 끝내줘야 한다. 스마트폰에 쓴 원고라서 일일이 한 글자씩 당기고 밀면서 교정하고 퇴고했다. 생각보다 쉽지 않고 시간도 오래 걸린다. 오후부터 시작해 늦은 밤까지 꼬박 매달렸지만, 아직도 까마득하다. 

1일 차, 9월의 마지막 날이다. 티브이를 철거해 아예 포장 상자에 넣어 창고로 옮겼다. 열흘간만이라도 시간을 빼앗기지 않고 미뤘던 일 처리를 하기 위함이다. 인터넷이나 스마트폰을 통한 뉴스도 보지 않고, 빌려온 책을 읽거나 공 회장의 원고를 교정하는데 몰입했다. 세상이 하도 떠들썩해서 뉴스가 보고 싶었지만, 용케 잘 참아냈다. 예상보다는 교정 작업의 진척도 빨라졌다. 이런 기세라면 며칠만 더 투자하면 완결될 것 같다. 역시 티브이를 멀리하니 일이 술술 잘 풀린다.

2일 차, 10월의 첫날이며 일요일이다. 며칠 전에 만난 오산시문학회 박민순 사무국장은 자기네 월례 모임에 와줬으면 하는 눈치다. 그간 10여 년 이상을 고향에서 진행되는 행사에 무심했던 터였다. 회원 중 한 사람이 시집을 냈는데 뉴스거리가 될 거라 했다. 낮에는 밀렸던 일들을 마저 처리했다. 오산향토문화연구소에서 오산문화 총서를 발행한다는 메일이 들어와 자료들을 찾는데, 내 시집을 어디에 두었는지 모르겠다. 강원도에서 내려온 뒤 책을 담은 이삿짐 상자는 아예 풀지도 않았다. 하여튼 너무 잘 감춰두어서 찾지도 못하겠다.

3일 차, 꼼짝 않고 원고 수정에 매달려 드디어 완결했다. 4일 차, 개천절이다. 4350년 전에 우리나라를 세운 날인다. 그런데 ‘1919년부터다, 1948년이 맞다’ 하면서 게거품을 물고 있다. 잃어버린 2333년은 도대체 뭐란 말인가. 의왕시 백운호수에서 레일바이크를 탔다. 빡빡하다. 난 옆지기가 발만 올려놓은 줄로 오해하고 힘껏 밟으라고 소리쳤다. 헐헐헐. 분노조절장애 치료 차 오산시 물향기수목원으로 장소를 옮겼다. 각자 두 발로 한 바퀴 돌고 나니 조금은 기분이 풀렸다. 

5일 차, 한가윗날, 추석이다. 동생들이 척척 알아서 챙기는 차례상, 지방 쓰는 것만 내 몫이다. 참 속 편한 장남이다. 6일 차, 동생과 함께 서대산 밑자락 아버지 산소에 다녀왔다. 다들 선약이 있다는 핑계로 다음으로 미루는 바람에 단둘이서 다녀왔다. 아무래도 고속도로가 붐빌 것 같아 새벽 일찍 출발해 정체 없이 내려갔다. 서너 시간 정도 산소 앞에서 앉았다가(사실 엉겅퀴도 캠) 점심은 추부에서 추어탕 한 그릇씩 뚝딱 비우고 고속도로를 탔다. 충주휴게소부터 상하행선이 꽉 막혀 갈 때보다 올라올 때는 두 배 이상 걸렸다. 새벽에 주유할 때 비싸게 넣었다고 동생이 투덜댔는데, 고속도로 통행료가 그저께부터 공짜라서 딱 본전치기했다. 

7일 차, 세 군데 도서관을 도는 것도 만만치 않다. 휴가 중에 반납한 책들이 많았던 모양이다. 무인 책 반납기 속이 꽉 찼다. 보안요원에게 사정을 얘기하고 내일 대신 반납해 달라고 부탁했더니 쾌히 승낙한다. 8일 차, 월요일부터 바쁜 내 사정을 미리 눈치챈 옆지기가 생일상을 앞당겨 챙겨줬다. 극장에 가서 ‘남한산성’ 영화도 보고, 근사한 카페에서 작은 케이크에 초를 꽂고 손뼉 치며 생일 축가도 함께 불렀다. 하트 마크가 뜬 커피가 달달하다.

9일 차, 다시 도서관으로 가서 새로운 책으로 빌려왔다. 이상하게도 노트북 곁에 책이 쌓여 있지 않으면 괜히 불안하다. 10일 차인 오늘, 한글날부터 신문사는 근무가 시작된다. 그러고 보니 열흘 휴가 동안 제대로 이룬 게 하나도 없다. 딱 열흘만 쉬는 게 희망 사항이었는데, 푹 쉬지도 못하고 한 일도 없이 어영부영 시간만 날렸다. 식어버린 프라이팬에서는 달걀 한 알도 익힐 수 없다. 뜨끈하게 팬이 달궈졌을 때는 서너 개씩도 가능하다. 이번 같은 열흘 휴가는 솔직히 아깝고 아쉽다. 출근하자마자 월급날이라고 해서 하는 말은 결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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