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마도 日人들이 울릉도에 살게 해달라고 청원했으나 태종이 거절

옛날 동해 여러 섬 가운데서도 가장, 큰 섬에 살았던 큰 용이 꼬리로 섬들을 모두 때려부수었다. 그래서 울릉도와 독도만 남게되었다는 것이다.

그 용이 울릉도는 복섬이라고 하면서 성인봉 꼭대기에서 하늘로 올라갔다고 한다. 또는 그 섬들은 모두 일곱 섬이었는데 해적들이 많아서 용이 모두 꼬리를 쳐서 없애 버리고 말았는데 이 섬 이름을 "가산도"라고 불렀다.
 
어부 세 명이 조그마한 배를 타고 고기를 잡으러 바다로 나갔다. 그날 따라 이상하게도 고기라곤 한 마리도 잡히지 않았다.

그런데 갑자기 저쪽 하늘에서 구름이 퍼지기 시작하더니 거센 바람이 불기 시작하고 파도가 일렁이기에 모두 놀라 서둘러 돌아갈 차비를 하였다. 그러나 바람은 점점 더 거세어 갔고 파도는 이제 뱃전을 치며 노조차 젖지 못하게 되었다.

사흘을 굶은 그들에게는 이제 노를 저을 힘조차 없을 정도로 기진맥진해 있었으니 그저 절망감만이 그들의 가슴을 엄습할 뿐이었다. 바람 부는 대로 물결이 흘러가는 대로 내맡겨 두는 도리밖에 없었다. 

"어어-, 저것 보게!" 외치는 소리에 깜짝 놀라 나머지 두 사람도 일어나 소리친 사람이 가리키는 곳을 보니 저 멀리 구름인지 안개인지는 분간을 못하겠으나 밑 쪽으로 거무스름하게 보이는 것이 육지 같았다.눈을 닦고 자세히 보니 틀림없는 육지였다.

간신히 그 곳에 다다라 보니 어안이 벙벙했다. 깎아지른 듯한 절벽이었다. 위를 쳐다보니 여전히 안개는 자욱할 뿐이었다.

다시 다른 곳을 찾아보려고 노를 저어 나갔다. 간신히 한 곳에 이르니 겨우 사람이 발붙일 만한 곳이 눈에 띄었다. 배를 붙이고 내려보니 길도 없고 그저 바위투성이 이었다.

세 사람은 이곳저곳을 헤매며 쏘다니다가 간신히 위에 오를 수 있었다. 그러나 안개는 여전히 자욱하였다. 안개가 짙은 가운데에도 살펴보니 울창한 왕대밭 이었다.

세 사람은 그러한 것에 놀라고 감탄하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우선 무엇이든 간에 허기를 메워야 했기 때문이다. 무턱대고 이리저리 헤매다보니 무엇인가 앞에 보이었다. 보니 그 집안에는 수염이 하얀 노인 한 분이 문을 열어 놓고 이곳을 바라보고 있는 게 보였다.
세 사람은 다짜고짜 그 앞에 가서는 절을 넙죽 하였다. "웬 사람들인고?" 노인의 음성은 점잖은 가운데도 우렁찼다. 그리고 그 눈매는 빛났으며, 용모는 단아하였고, 범치 못할 위엄이 있었으며, 俗氣를 떠난 仙氣마저 보이는 것 같았다.

세 람 가운데 가장 나이가 많은 사람이 자초지종을 이야기하였다. "허어 그 사람들 고생께나 하였겠구먼" 하고는 그저 멀거니 세 사람을 바라볼 뿐이었다. 답답해진 세 사람은 다시 "저희들은 오늘까지 나흘동안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하고 허기와 갈증에 지쳐 있으니 물과 먹을 것을 좀 주실 수 있겠습니까?" 그러자 노인은 "물은 없고, 사람이 먹을 것이라곤 없는데 어찌하나" 세 사람은 어안이 벙벙하여 서로 얼굴을 쳐다보았다.

사람이 사람을 보고, 먹을 것이 없다니 도대체 될 말인가? 그렇다면 자기는 사람이 아니란 말인가? 그럼 사람이 아니면 무엇인가 하고 제각기 마음속으로 생각하고 있는데, 노인이 선뜻 일어서더니 무엇인가를 방에서 가져 나오더니 "자 그럼 이것이라도 먹게나" 하고 노인이 내미는 것을 보니 꼭 사과같이 생겼는데 사과는 아닌 것 같았다. 세 사람은 우선 이판에 이것저것 가려볼 겨를도 없이 눈 깜짝할 사이에 그 과실을 먹어치웠다.

노인이 안에서 나오더니, "이제 너희들은 집으로 가야지 식솔들이 몹시 기다릴텐데" "그렇지만 저희들은 어디 방향을 알아야 갈 수 있지요" "그런가 그러면 내가 길을 인도하지"하여 네 사람은 배에 올랐다.

그리고는 순풍에 돛을 올려, 노인이 가리키는 곳으로 배를 몰았다. 뒤돌아보니 섬은 여전히 안개에 싸여 있었다. 여러 시각을 달려 이윽고 저 멀리 수평선상에 산봉우리가 보이기 시작했다. "이전 살았습니다" "그럼 이젠 찾아가겠지" "고맙습니다. 어르신네" "뭐, 고마울 것 있나

자네들이 하도 딱해서 도와준 것뿐일세" 그리고는 옷소매 자락에서 어제 먹던 과실을 세 개 끄집어내어 세 사람에게 주며, "이 과실을 햇빛이 없는 곳에 두어야 하네. 그리고 또 오늘부터 쳐서 꼭 석 달 열흘만에 이것을 먹도록 하게. 그럼 잘 들 가게나" 하고는 인사할 틈도 없이 홀연히 사라져 버렸다.

드디어 울릉도에 돌아왔다. 죽은 줄 알았던 사람들이 살아서, 그것도 기운이 펄펄해져서 돌아왔으니 집안식구는 물론, 온 마을이 야단법석이었다. 그리고 이야기의 꽃이 피었다.

그 신비와 안개에 쌓인 섬에 관해서 기이한 노인이며 신비로운 과실이며, 대나무의 숲이며 모두 듣는 이로 하여금 신비감에 싸이게 하고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족하였다.그 뒤 호기심이 가장 많은 사람들이 몇이 모여 세 사람의 어부를 부추겼다. 그리고는 큰 배에다 식량과 물을 싣고 또다시 신비의 섬을 찾아 나섰던 것이다. 그러나 철 아닌 복숭아꽃이 떠내려오는것을 보았을 뿐 풍랑이 심하여 끝내 이 섬을 찾지 못하고 되돌아오고 말았다.

한편 신라 장군 이사부(異斯夫)는 지장(智將)이었다. 그는 거친 반역의 섬 우산국(于山國.울릉도)을 간단한 계략으로 정복했다.512년 그는 나무로 만든 사자를 배에 싣고 섬에 도착했다. 사자 조각을 해안쪽으로 세운 뒤 유황불을 피워 마치 사자의 입에서 화염이 내뿜어지는 것처럼 위장하면서 북과 나각으로 굉음을 쏟아냈다.

이어 "항복하지 않으면 사자를 섬에 풀어 모두 밟히고 물려죽게 하겠다"고 협박, 진짜로 항복을 받아냈다. 울릉도 남양포구에 서 있는 사자바위가 그 물증이란 전설이 지금도 남아 있다.

이후 우산국은 신라를 거쳐 고려와 조선의 땅으로 자동상속됐지만 사실은 한민족 유민과 왜구( 倭寇)들이 뒤엉켜 뺏고 빼앗기는 혈투를 반복하며 살았다.

조선 초 대마도의 일본인들이 울릉도에 옮겨살게 해달라고 청원해 왔으나 태종이 거절했다는 기록을 보면 소유권은 엄연히 조선왕실에 있었다.

그러나 태종은 왜구들에 의한 피해가 끊이지 않자 울릉도에서 조선 사람을 모두 철수시키는 공도(空島.섬을 비움)정책을 택했다. 소유권자가 방치한 가운데 울릉도는 여전히 조선의 유민과 왜구가 다투는 분쟁의 섬으로 남았다.

조선왕실이 소유권을 공식적으로 재확인한 것은 왕조 말기인 1882년. 울릉도 내 조선인 마을이 불타는 등 피해가 잇따르자 고종이 검찰사 이규원을 파견했다. 검찰사는 울릉도 내 일본인과 면담하면서 이들이 울릉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믿고 있음을 확인했다.

그들이 주장하는 근거는 '대일본국 송도(松島)'라 적힌 표목(標木)이었다. 메이지(明治)2년(1869년)에 세워졌으니 무려 13년간 울릉도가 일본땅으로 둔갑했던 셈이다.

검찰사는 높이 2m, 폭 30㎝ 크기의 푯말을 찍어내 태운 뒤 남은 재를 바구니에 담아 돌과 함께 깊은 바다에 던져버렸다. 조선왕실의 항의로 다음해 일본인들은 모두 섬을 떠났다.

푸른 바다에 솟은 화산섬 울릉도는 숱한 우여곡절 끝에 우리 땅으로 굳건히 자리잡았다. 희귀 동.식물을 안고 살아가는 기암절벽의 비경은 여전하다.

환경부가 울릉도와 독도를 묶어 해상국립공원으로 지정키로 한 것은 만시지탄(晩時之歎)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일본 외무성이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며 항의한다는 소식이 대한해협을 건너왔다. 이사부 장군이 지하에서도 웃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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