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2부 부장 이원규

하루하루가 너무 빨리 휙휙 돌아간다. 세상에서 나 혼자만 바쁜 척 밤잠도 설쳐가며 개발새발 끼적거렸는데, 새벽에 일어나 다시 읽으면 영 아니다. 그렇다고 대단한 기삿거리도 아닌 걸 크게 선정이라도 베푼 양 올라오는 보도자료가 부척 늘었다. 웬일인가 했더니 내년으로 지방선거가 바투 다가섰다. 이른바 밥그릇 지키기 작전에 돌입하는 모양이다. 옛날 얘기 또 꺼내면 ‘아재, 할배’로 취급하겠지만, 욕먹을 각오로 시답지 않아도 심심풀이 땅콩 몇 알 욱여넣고 씹어본다.

무뚝뚝한 경상도 사내가 집에 들어와 아내와 나누는 대화는 “아는? 밥 도. 자자!” 딱 세 마디란다. 간단명료해서 좋긴 좋다. 그런데 애들이 다 크면 ‘도’ 한마디면 끝이란다. 물론 우스갯소리고 아재개그겠지만, 대략난감이다. 여기까지는 양반이다. 혹자들은 충청도 말의 느림을 흉잡지만 간결하고 빠른 건 따라잡을 수가 없다. 이번에 박사학위 통과했다는 제자가 한턱 쏜다 해서 먹자골목 지나갈 제, “개혀요?”라고 해서 깜놀했던 적이 있다. 말인즉슨 개 혓바닥이 아닌 ‘개고기 먹느냐?’고 묻는 소리였다. 대답은 “그려” 혹은 “아녀”하면 의사소통이 완벽하다. 식사를 주문할 때도 “밥줄껴?”하면, “옜슈”로 끝나고, 맛이 어땠느냐 묻는 것은 “어뗘”하면 “좋았쥬”하면 된다. 물론 전라도는 누차 얘기한 바 있듯이, ‘거시기’와 ‘잉’이면 웬만한 소통은 다 된다.

우리말은 주어와 목적어 때로는 동사까지 과감하게 생략해도 막힘없이 술술 통한다. 때에 따라서는 눈만 껌벅여도 중요하고 긴한 명령까지도 전달된다. 하지만 한도 끝도 없이 늘어놓을 수 있는 게 우리말이다 ‘그래서, 그러므로, 따라서, 때문에, 그러나, 그런데, ~인데도 불구하고, 오히려, 단, 그리고, 및, 또한…’ 등등의 접속사와 이 지면에 다 열거할 수 없을 수많은 형용사를 활용하면 밤새도록 대하 장편소설 더댓 권쯤 될 얘기를 혼자서도 해댈 수 있다.

필자도 말장난을 꽤 치는 편이다. 우리말로 번역이 안 돼 외국말을 쓰는 걸 나무랄 수야 없겠지만, 깊은 속뜻도 없는 프랑스제, 미국제 꼬부랑말이 이밥에 낀 돌덩이처럼 덜그럭거리게 들려 입맛 떨어질 때가 있다. 물론 별로 유식해 보이지도 않는다. 누구나 말은 너무 쉽게 내뱉으면 안 된다. 신중하게 생각하고 상대방이 금방 알아듣고 눈치채게 해야 함은 당연지사다. 상황에 따라서는 전문용어와 외계어까지라도 동원해서 전하고자 하는 깊은 속뜻을 올바르게 전해야 한다. 

극히 드물게 역대 대통령 중에서 계급장 떼고 아주 쉬운 말로 정곡을 찔렀던 놈현 대통령은 참모들에게 이렇게 말했단다. “민주주의의 최고 비극이 뭔지 아는가. 만들어놓은 기성품 중 하나를 고르라는 거야. 다 마음에 안 드는데…. 정작 필요한 이들은 정치를 안 하려 하고. ‘하고재비’들은 불나방처럼 쏟아지는 기라. 그리할 사람들은 쌔고 쌨어. 천지삐까리라.” 여기에서 ‘하고재비는 아무 일에나 끼어드는 사람을, ‘천지삐까리’는 요즘 같은 가을 들판에 볏가리로 가득 찬 ‘굉장히 많다’라는 뜻의 경상도 사투리다. 비슷한 말은 바로 앞에 ‘쎄삐맀다’였다. 

내 팔 내가 내 맘대로 흔들어도 누가 뭐랄 사람 없는 자유로운 세상이 됐다. 그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사사건건 발목 잡고 시정잡배들처럼 엉겨 붙어 쌈질에 드잡이판이다. 그래 봤댔자 서로 득이 될 것도 없을 성싶은데, 아니면 말고 식으로 무조건 너는 불륜이고, 내가 하면 로맨스라 생각한다. 예전부터 느낀 바지만, 보수는 더 보수해야 하고, 진보는 더더욱 진보해야 한다. 그게 딱히 정치판만의 얘기가 아니다. 사회에서도 알게 모르게 진보와 보수로 나누어져 어디로 가는 건지 도통모르겠다.

아이들에게 초등학교 선생님이 이렇게 질문했다.
“높은 하늘에 수십 마리 기러기가 날아가고 있었어요. 그런데 갑자기 수직으로 낙하해 떨어져 죽었대요. 이런 현상이 무엇일까요?”
답을 생각하느라 아이들이 쩔쩔매는데, 맹구가 용감하게 손을 번쩍 들었다. 선생님은 반가움에 크게 말해보라 했겠지요. 맹구 왈,
“극히 보기 드문 현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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