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양사는 대한불교조계종 18교구의 본사로 632년 (백제 무왕 33년) 여환선사가 창건하고 백암사라 칭하고 있다.

절 뒤에는 학바위(백학암)라는 바위가 있는데 모습이 학같이 생겼다 하여 부르는 것이다. 백암산이라는 산이름도 이 학바위로 인해서 생긴 이름이라고 한다.
운문암은 옛날부터 높은 도승들이 수도를 하던 암자였다. 그런데 정토사라는 이 절의 이름을 백양사로 고친 것은 다음과 같은 유래가 있다.

"스님은 어디서 오셨소이까"
"소승은 금강산 장안사에서 왔습니다."
"소승은 공주 마곡사에서 왔습니다."
"소승은 묘향산에서 왔소이다.
전국 각처에서 수많은 스님들이 매일 구름처럼 장성 정토사로 모여들었다. 스님들뿐만 아니라 원근 각 지방의 백성들은 쌀과 찬을 꾸려들고 구름처럼 모여들었다.

영문을 모르는 사람들은

"아니 난데없이 무슨 일이 났기에 이처럼 많은 사람들이 모여 든담."

"글세 말이오. 아무튼 삼사일 전부터 팔도 강산의 중이란 중은 다 모이는 것 같소이다. 절에서 스님들이 무슨 대회라도 연단 말인가..."
"당신들은 모르는 소리요. 지금 백암산 정토사에는 지완스님이 와 계시오. 지완스님은 상감님께까지 설법을 내리신 도가 높으신 스님이시오. 이번에 그 지완스님께서 법회를 베푸시게 되었고 그래서 그 높으신 지완스님의 법회에 참석코자 팔도강산의 고승들이 모두 모이고 불도를 믿는 사람들이 이렇게 모여들고 있는 것이오. 나도 내 한 평생에서 다시없을 이번 법회에 꼭 참가를 하려하오."

이러한 소문은 더욱 퍼져서 전라도는 물론이요 충청도, 경상도, 서울 등지에서 법회에 참가하려는 사람들이 수 없이 몰려왔다. 마침내 법회의 날이 되었다. 
이른 새벽부터 법종이 은은하게 울리는 가운데 수만명이 운집했다. 붉은 법복을 입은 지완스님이 불상 앞에 무릎을 꿇었다.
"나무관세음보살...."
지완스님은 오늘의 법회가 부처님의 보살핌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자비가 미치기를 진심으로 기원했다. 경건한 기도가 끝나고 지완스님이 인도하는 법회가 드디어 시작됐다. 그런데 난데없는 수천 마리의 백학이 날아와서 절의 주위를 감쌌다.

"아- 저 백학들도 지완스님의 높은 덕을 찬양하고 오늘의 영광스런 법회에 참석하러 왔구나."

법회에 참석한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이같이 말하고 새삼스러이 지완스님의 덕에 깊이 감복 했다. 모든 참석자들은 지완스님의 설법에 감동되어 황홀한 선경에 오른 듯 석가여래의 재림을 대한 듯 깊은 깨달음 속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그리고 사흘째 되던 날이었다. 법당위에 오색이 찬란한 서기가 내리며 하늘에서 은은한 독경 소리가 들려왔다. 오색 찬란한 서기를 본 참가자들은 그 신비스런 사실에 모두 눈을 크게 뜨고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그런데 어이된 일인가? 흰 구름을 타고 한 마리의 흰 양이 사뿐히 내려오고 있는 것이 아닌가... 양이 절에 가까워지자, 하늘에서 들려오던 독경소리는 더욱 크게 들려왔다.

"아 - 하늘에서 내려오는 양이다." "아니, 저 양은 부처님께서 내려보내신 불제자이다."

이같이 모든 사람들이 수근거렸으나 지완스님은 조용하고 담담하게 설법을 계속하고 있었다. 그러자 하늘에서 내려온 양은 지완스님 앞에 이르러 무릎을 꿇었다. 그런데 양의 털은 어찌나 희고 번쩍이는지 눈이 부시었으며 찬란한 광채가 발했다. 양은 지완스님에게

"스님의 높으신 법회에 참석코자 내려왔나이다." 하고 말했다.

지완스님은 부처님의 높으신 배려라고 생각하고"나무관세음보살..." 을 연거푸 부르며 감사를 올렸다. 그런데 밤이 되자 양의 몸에서 밝은 광택이 비치어 절 안팎을 낮과 같이 밝혀 주었다. 그래서 횃불을 피우지 않아도 되었으며 법회는 더욱 선경에 이르렀다. 지완스님의 법회는 칠일 동안 계속됐다. 칠일이 끝나는 날이되자 흰 양은 다시 흰 구름 속에 쌓여 은은한 독경소리를 남기며 하늘로 올라갔다.

 지완스님의 법회에 하늘에서 백양이 내려왔다는 소문은 순식간에 전국으로 퍼졌다. 이에 모든 사람들은 지완스님의 높은 덕을 더욱 숭상하게 되었는데 이 소문이 숙종 임금에게도 전해져서 숙종은"참으로 경사스런 일이로다. 하늘에서 양이 내려왔다니 나라에 좋은 일이 있을 길조로다. 그러니 그 사실을 영구히 기념하기 위해 절 이름을 백양사로 고치도록 하여라." 라고 분부하고 많은 시주를 내리었다. 이리하여 이후부터 정토사가 백양사로 이름이 바뀌게 되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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