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2부 부장 이원규

“아버지! 죄송합니다.”

선산 갔다 왔던 얘기 좀 해야 하겠다. 새벽부터 일찍 준비물을 챙겨 출발할 때는 신나는 소풍을 가는 것처럼 신났다. 어젯밤에 어머니는 먹거리도 단디 준비하셨다. 모처럼 조카들도 함께 가기 때문에 요즘 허리와 무릎 관절이 안 좋아지신 어머니는 우리에게 ‘잘 다녀오라’며 간식과 점심 먹거리를 준비하셨던 거다. 그런데, 아버지 산소 앞 길가에 차를 세웠지만, 우리는 한참이나 산소 앞으로 갈 수 없는 상황이었다. 시커먼 비닐과 모종컵 등이 올라가는 입구에 그야말로 산더미처럼 쌓여있었다. 세상에~이런 난리 구석은 상상도 못 했다. 동네에서 이장을 보는 필자와 동갑내기에게 항의라도 해야겠다는 마음을 먹고 있던 차에 마침, 경운기를 끌고 지나가던 나이는 두 살 차밖에 나지 않지만, 할아버지 항렬인 당내 간 아저씨가 우리에게 급한 걸음으로 다가왔다.

“미안하구먼! 사실 걔가 쓰러졌어. 그래서 조카며느리가 일꾼까지 샀다는데 경황이 없어서 이 지경이 됐구먼.”
자초지종 전후 사정 얘기를 듣고 보니 오해는 다소 풀렸지만, 한편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 대목이 있다. 아무리 돈 받고 남의 집에 일에 나왔다지만, 그들도 부모를 모시는 사람들 아니던가. 조금 쉽게 하려고 ‘남의 집 앞에 쓰레기를 버리는 건 경우가 아니다’라고 핏대를 올렸다. 친구가 갑자기 쓰러지는 바람에 그동안 없었던 이런 일도 생겼다. 당장이라도 친구의 아내에게 쫓아가 퍼붓고 싶었는데, 아침 첫차로 병원으로 갔다는 거다. 아무래도 비닐 걷는 것부터 시작하면 애초에 이곳으로 올 때의 계획이 망가질 판이다.

“이건 나 혼자 걷어낼 테니, 예초기는 둘째, 갈퀴는 막내, 너희들(조카들)은 냇가로 가서 통발을 놓아 점심때까지 고기를 잡아 온다, 내 말 알았지?”
몇 구비의 산길을 돌고 돌아 마을 입구에 오면 큰 소나무 한 그루가 반겨주었다. 그런데 그 소나무는 지금은 서울 어느 집 갑부의 별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곳의 랜드마크였던 소나무가 없어지고 난 뒤로는 아버지 산소 앞에 심어놓은 단품나무가 그 역할을 대신한다. 필자가 IMF 때 건물을 짓기 전, 아버지께 새 건물 올린 후 회갑 잔치를 새집에서 해드릴 거라며 큰소리쳤는데, 그 일이 성사되기도 전인 음력 5·18 때 급히 저세상으로 가시고 말았다. 뜰앞에 있던 나무를 아버지 산소로 옮겼다. 사철나무와 단풍나무가 보기 좋게 컸는데, 평소 애지중지하시던 단풍나무를 아버지 산소 앞으로 옮겨놓았다. 13년이 지나는 동안 제법 밑동도 굵어지고 우리가 음식을 먹을 그늘을 만들어주는 큰 나무로 자랐다.

묏자리에 풀을 깎는 벌초는 지방마다 금초, 사초, 예초, 애초, 참조 등 부르는 이름도 다양하다. 쉽게 말하면 집 앞의 풀을 깎아주는 거다. 절기상으로 처서가 지나면 서서히 밤 기온이 내려가고 풀잎에 이슬 맺히는 백로가 되면 나무나 풀들도 일단은 생육을 멈춘다. 웃어른을 공경하는 마음이 예전 같지는 않지만, 그래도 우리 집안은 아버님 산소에 가는 것만큼은 큰 행사로 생각하고 있다. 서로 다른 직장과 직업 탓에 함께 야외로 나가 만날 기회는 한식과 추석 외에는 없다. 추석은 또 각자 다른 집안에서 온 아내들이 있으니, 추석 전 벌초하는 날 함께 만나고 있다. 물론 더 먼 옛날에는 삼촌부터 사촌, 오촌은 물론 삼종형제(8촌)까지 선산에 모여 시사를 지내고 정담을 나누기도 했었다. 그러나 요즘은 먼 옛날의 추억으로 아슴아슴하게 떠오를 뿐, 앞으로 후대들이 조상을 위한다는 것은 기대할 수 없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최장 10일의 ‘황금연휴’가 돌아오고 있다. 앞으로 추석 10일 연휴는 2025년과 2028년, 2044년에도 나온다고 한다. 정치꾼들 얘기는 그때 가봐야 안다. 자신들이야 배불러 못 느끼겠지만. 지금 당장 시방 빨리 앞에 맞닥친 먹고 사는 민생부터 해결하시라. 요즘 세간에서는 말 잘하는 사람들 입에서는 꿀 바른 좋은 말들 번지르르하게 흘러넘친다. 어찌 들으면 금방 수소폭탄이 터질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국민의 입과 귀이라는 방송까지도 집구석에서 총질해대는 걸 보면 금방 좋은 세상은 올 것도 같고 아닐 것도 같은데, 막상 좋은 말 한 대목쯤 뽑으려니 쓸 말만 한 말은 한마디도 없는 껍데기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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