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2부 부장 이원규

영 아니다.
일(1)
십(10)
백(100)
천(1000)
만(10000)
십만(100000)

백만(1000000) 원대 임금만 꼬박꼬박 손에 쥐여줘도 감지덕지할 사람들 부지기수다. 그런데 요즘은 천만에다. 위로 올라가면 천만 원대로는 명함조차 내밀 수 없다. 최소 억(100000000)대라야 사람대접받는다. 말도 안 될 얘기지만, 월급 500만 원을 40년간 한 푼도 쓰지 않고 모아야 24억이 된다. 그런데, 모 금융 CEO 같은 이는 상반기 성과급으로만 단번에 24억을 챙겼다는 데야 말문이 막혀버린다.

억 정도만 있어도 차고도 넘칠 텐데, 인간의 욕심이야 끝장이 나도 끝날 줄을 모른다. 날개가 달린 동그라미가 열두 개이며 조, 십조, 아름다운 백조(100000000000000)는 14개다. 앞에서 말하는 조는 황금알 낳는 새가 아니다. 더 나아가면 경, 해, 달, 별, 안드로메다로 이어진다는 유머도 있다. 서양에서는 구골(Googol)이라고 10의 100제곱도 있다. 즉, 1 뒤에 0이 백 개인 수다. 에드워드 캐스너라는 수학자가 9살 난 조카에게 ‘1 뒤에 지칠 때까지 0을 칠판에 써보라’ 해서 생겼다는 일화가 있다.

희한하게도 정권이 바뀌어도 세상은 달라질 기미가 없다. 현직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이라는 사람이 현직 대통령더러 공산주의자라 하질 않나? 억지 부리는 사회 지도층의 머리통 속은 알 길이 없다. 더 웃기는 얘기는 여선생이 초등 6학년 남학생 제자가 좋아서? 여러 번 부적절한 관계를 맺었다고? 이런 식이면 우리나라 인구의 억대 진입은 식은 죽 먹기보다 쉽겠다.

어린애들이 뭘 보고 배울는지 한심하기 짝이 없다. 구닥다리라고 에~하겠지만, 옛 어르신들은 돈이나 공부보다도 사람됨을 앞세웠다. 무슨 일이 터지면 ‘사람이 어찌 그럴 수가 있나?’, ‘사람도 아녀!’라면서 혀를 끌끌 찼다. 인수인계(?) 못 받았다고는 하지만, 새 정부에서 새판 짜는 게 억수로 힘겹다. 제대로 된 사람을 찾는 게 천연기념물보다도 더 귀한 세상이라서 이해하고도 남는다. 막돼먹은 별별 해괴망측한 꼴 보며 살다 보니 이젠 혀끝도 다 닳아 없어졌다.

세상 똑바로 살아야 한다. 헌재소장 후보자의 인준안도 넉 달째 말귀에다 염불하기다. 새 정부 들어 장관감으로 쓸 만하다 싶어 추천한 인재들 뒤를 캐보면 영 아니다. 참신하다는 첫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후보자도 뒷덜미 잡힐 테고, 인권변호사로 칭송이 자자했던 젊은 여성 헌법재판관 후보자는 국회 청문회까지는 잘 넘겼다 싶었는데, 막판에 주식 투자로 1년여 만에 12억원이 넘는 수익을 냈다는 민낯이 벗겨졌다. 점심 한 끼 마주 앉아 먹는데 345,789달러(약 40억원)였던 ‘워런 버핏’도 억하고 뒤로 자빠져 뇌진탕으로 가실 뻔했다.

이게 나라인가 정말로, 참말로, 진짜로 자괴감마저 든다. 백만원대 벌이에도 웃음으로 살던 그때가 그립다. 수십 배 억대 연봉으로 호의호식하며 힘깨나 쓴다는 윗선들은 누구라고 할 것 없이 인두겁을 쓴 괴물로밖에 보이지 않는 세상이다. 억장이 무너져 급히 아퀴를 짓는다. 이 좋은 옛 시는 연말쯤에 덕담으로나 써먹으려고 아꼈는데…. 아울러 백범 김구 선생께서 억수로 좋아하셨음도 밝힌다. ‘눈 내리는 벌판 한가운데를 걷더라도 / 어지럽게 걷지 말라 / 오늘 걸어간 이 발자국들이 / 뒤따라오는 사람의 이정표가 되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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