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2부 부장 이원규

비 온 뒤 푸른 하늘에서 햇볕이 내리쬔다. 하지만, 엊그제 그 느낌과는 다른 괜찮은 햇살이다. ‘봄볕에는 며느리 내보내고, 가을볕에는 딸 내보낸다’라는 속담이 정녕 맞다. 농사를 시작하는 봄과 거두는 가을에는 일거리가 많아 들판으로 아니 나갈 수가 없다. 고부갈등이 심하던 시절에 며느리보다는 딸을 더 아끼고 위한다는 데서 나온 시어머니의 차별이 담긴 못된 속담이다.

요즘에는 옛날처럼 농사에만 매달리지도 않는 세상이다. 물론 쓸데없이 햇볕을 너무 많이 쬐면 별로 좋을 게 없다. 좋은 계절이 돌아오는 것 같아서 젊잖게 넘어가려 했는데, 버릇을 버리지 못해 쓴소리 한 마디 내뱉고 속풀이 좀 해야 쓰겠다. 요즘 세상 돌아가는 꼴이 엉망진창이다. ‘모기 주둥이도 비뚤어진다’라는 처서도 지났건만 팔뚝 걷어붙이고 일할 수가 없다. 여기저기에서 피 빠는 버릇을 가진 모기떼들이 죽지도 않고 용쓰며 악착같이 달라붙어 침을 쏴댄다. 

책을 빌리기 위해 경기도교육청 옆 도서관을 한주 걸러 한 번씩 드나드는 버릇이 있다. 필자는 좁은 통로나 계단을 오르내리면서 마주 오는 사람들과 자주 충돌한다. 왼쪽으로 걷던 버릇이 몸에 밴 까닭이다. 앗! 우측으로 바뀌었지 생각하며 정신 차렸을 땐 이미 늦었다. 상대방과 내 가슴이 맞부딪혀 서로 왔다 갔다 밀어내기를 하며 민망한 지경에 도달한 후다.

도서관 앞, 보훈지청 울타리는 현수막으로 도배를 해놨다. 비정규직, 사립유치원, 기간제 교사들이 교육청 직원들의 출퇴근 시간에 정확히 맞춰 피켓시위도 한다. 하지만 그들에게 관심을 두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상호 밥그릇을 챙겨야 할 처지가 다른 중차대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몇 해 전에 이곳 교육수장이던 김 아무개 씨는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으로 고속으로 출세해 윗선으로 가 앉았다. 혹시나 하며 외쳐대도 두문불출 요지부동이다. 사정이 이러하니 그 밑에 있는 분들이 제 버릇 개 줄 리가 없다. 더욱더 철통같이 복지부동 자세를 공고히 하며 철밥통 소리 죽여가며 소 닭 보듯 하면서 출퇴근한다.

우리나라 법이라는 게 큰 도둑은 웬만하면 풀어주고 생계형 작은 잘못은 엄중하게 처벌한다. 그 버릇이 완전히 굳어졌다. 돈 때문에 들어갔던 모 전, 총리가 만기를 채우고 드디어 햇빛을 봤다. 역시 돈 문제로 대통령직도 내려놓고 들어간 첫 여성 대통령도 올림머리를 풀어헤쳤다. 옛 버릇이 아직도 가시지 않은 사람들은 그분을 무죄 석방하라고 목청을 돋운다. 또 있다. 뭉텅이 돈다발을 바쳤다는 기업체 모 부회장은 1심을 가볍게 5년형으로 받았다. 이를 두고 인민재판이냐 장난이냐 라는 등 막말이 오가고 있다. 그뿐이랴. 온 나라를 발칵 뒤집어놓고 브라운관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던 최 모 씨가 건재하다. 다 아는 처지에 3년은 너무하지 않느냐며 흰머리 휘날리며 막무가내로 생떼 쓰고 있단다. 수백억쯤은 애들 떡고물 먹듯 했으니 그 버르장머리는 안 봐도 뻔한 비디오다.

이번 8월은 비 내린 날이 더 많았던 늦장마 기간이었다. 멀쩡한 하늘에서 갑자기 물폭탄 터진 듯 소나기로 퍼붓는가 하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 햇살 쨍쨍한 된더위로 바뀌는 둥 변덕이 죽 끓듯 했었다. 어제오늘은 제법 바람도 서늘하고 햇살도 가을처럼 기분 좋게 부드럽다. 생뚱맞은 기상캐스터의 일기예보를 믿지 않게 된 건 오래전부터다. 써준 대사 읽느라고 수고하는 그녀들이 예쁘지 않았다면 아마도 한참 혼쭐났을 거다. 지나봐야 알겠지만, 오늘부터 한 차례 더 비가 내리겠다고 이번에는 남자 기상캐스터로 바꾸어 알려준다. 버릇이 굳어져 믿기지도 않아 우산도 없이 도서관으로 향한다. 책 살 돈도 없으나 읽은 책 반납하고 다른 책으로 바꿔야 한다. 성큼 다가온 가을, 책 읽는 버릇 하나는 참 잘했다. 그런데 웬걸, 무슨 놈이 비가 이처럼 무지막지하게 쏟아지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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