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좌도, 우도로 나뉘기도, 일제강점기때 경성은 경기도에 속하기도

2018년은 경기도가 태어난지 1000년이 되는 해이다. 1018년 고려 현종때 당시 수도였던 개성과 그 주변을 한데 묶어 경기(京畿)라 부르기 시작했다.

원래 경기란 말은 당나라 시대에 왕도의 주변 지역을 경현(京縣)과 기현(機縣)으로 나누어 통치했던 데서 유래를 찾을 수 있다. 본래 경(京)은 천자가 도읍한 경사(京師)를. 기(機)는 천자가 살고 있는 왕성을 중심으로 사방 500리 이내의 땅을 의미한다.

경기 1000년을 앞두고 경기도는 내년 다양한 행사를 준비중이다. 이미 올해 경기도만의 독립서체인 ‘경기천년체’를 개발해 일반인들에게 무료로 보급하고 있다.

지난 1000년간 경기도는 여러 차례 지형적인 변화를 겪어왔다. 1069년(고려 문종 23) 경기도는 인근 지역을 합쳐 크게 확대된다. 개성부는 지금의 서울특별시처럼 별도의 행정구역이었으며, 경기도는 왕경을 둘러싼 지방행정구역이었다. 고려말인 1390년(공민왕 2) 경기도는 종전처럼 축소되고 좌도와 우도로 나뉜다. 당시 수도인 개성이 중심이었기에 지금의 경기도 내륙 지역으로 한양을 비롯해 철원 이천 양천 안산 교하 등이 해당됐다. 우도는 주로 해안가로 부평 강화 교통 김포 통진 등이었다.

조선이 개국하면서 행정구역도 대대적으로 개편된다. 우선 수도가 개성에서 한양으로 바뀐다. 태종때 행정구역이 달라지고 지역의 명칭도 크게 변한다. 이는 고려의 흔적을 없애기 위함이다. 좌도와 우도가 합쳐져 다시 경기도가 된다. 북부지역은 황해도로 넘겨지고 수원 여주 광주 안성 등 남부 지역이 경기도에 포함된다. 지금과 비슷한 형태의 경기도가 된 것은 조선 세종때이다.

조선 후기에는 수원과 광주, 개성, 강화가 중요하게 취급돼 경기도에서 분리돼 유수부(留守府) 체제를 갖춘다. 군사 교통의 요충지였기 때문으로 여겨진다. 갑오경장으로 1895년 지방 행정 구역이 크게 바뀐다. 경기도가 없어지고 한성부와 인천부 등 부 체제로 개편된다. 그러나 불편과 혼란 때문에 1년을 넘기지 못하고 다시 도 체제가 살아난다.

일제강점기인 1914년 일본은 대대적으로 조선의 행정구역을 개편해 조선인의 공동체 의식을 약화시키려 한다. 수도를 인정하지 않아 서울은 경성부(京城府)가 되어 경기도에 소속됐다. 경성부는 도성과 남대문, 용산 일부였으며 인천은 개항장 일대로 크게 줄어들었다. 부천이 인천의 대부분 땅과 부평을 흡수해 태어났다. 시흥은 안산과 과천을, 수원을 남양을, 용인은 양지를, 김포는 양천과 통진을, 강화는 교동을 흡수했다. 일제는 행정구역을 뒤섞으면서 마을 이름이나 고유 명칭을 무시하고 인위적으로 명칭을 변경했다.

광복 후인 1946년 경성부는 서울시가 되면서 경기도에서 제외됐다. 서울이 팽창되면서 1949년에는 서울 인근인 고양의 은평과 시흥군 일부가 서울로 편입됐다. 6.25는 경기도 북부 지형을 바꿔놓았다. 연천군과 포천군 북부지역을 수복했으나 개성, 개풍, 옹진 등이 북에 넘어가게 됐다.

1967년 서울에 있던 경기도청이 수원으로 이사와 본격적인 경기도 시대가 열렸다. 1973년 수도권 위성도시였던 부천과 성남, 안양이 시로 승격했다. 1981년에는 인천이 직할시로 승격하면서 경기도에서 떨어져 나갔다. 이후 구리 평택 과천 안산 군포 시흥 오산 의왕 하남 등 시로 줄줄이 승격했다. 수원과 고양, 용인은 100만 인구가 넘어섰으며 오랜 도시인 성남 부천 등은 100만에 육박하는 대도시가 되었다.

오늘날 경기도는 대한민국의 중심지로 인구 1300만명의 대한민국 최고의 파워를 자랑하는 광역자치단체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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