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그머니! 인터넷 검색창에 ‘달걀’로 쳐야 하나 ‘계란’으로 넣어야 하나 헷갈린다. 이처럼 같은 사물을 놓고 두 개로 쓰이는 경우는 ‘이름과 성명’, ‘찬물과 냉수’, ‘해와 태양’. ‘강과 하천’도 있다. 냉장고 문 앞에 달걀 넣는 칸이 있다. 예전에는 폐지를 불린 계란판에 10개 혹은 30개씩 포장했다. 그보다 더 옛날에는 짚으로 만든 꾸러미에 10개씩 꿰어서 바람이 잘 통하는 선반에 소중하게 보관했다. 서울 사는 외갓집 손님이 오시면 어머닌 보란 듯이 번철에 달걀 몇 알을 톡톡 깨 넣고 살짝 익혀 윤기 반지르르한 그것을 밥상 가운데로 척 얹어놓으셨다. 

뭐니 뭐니 해도 젤 맛난 달걀은 뜨끈한 온기가 남아있는 날달걀이다. 암탉이 ‘꼬꼬댁!’하며 울면 닭장 안으로 슬금슬금 들어가 둥우리에서 달걀을 꺼낸다. 암탉이 눈을 크게 뜨고 멀뚱히 바라보기는 하지만 못 가져가게 막지는 않았다. 입을 크게 벌리고 송곳니에 톡톡 쳐 위아래에 구멍을 내 빨아먹는 그 맛이란 안 먹어본 사람은 상상도 안 될 것이다. 마지막 남은 노른자위까지 쪽 빨아먹고 입가를 손등으로 쓱쓱 닦은 후 빈 껍질은 닭에게 툭 던져주었다. 닭들은 그걸 쪼아 먹고 다음 날이면 탐스러운 알을 또 낳았다.
  
예로부터 달걀은 요모조모 귀하게 쓰였다. 삶은 달걀은 두세 알만 먹어도 오랫동안 배가 든든하다. 그래서 소풍이나 운동회 날이면 빠지지 않는 간식이 달걀이다. 어르신들도 먼 거리 여행을 갈 때면 달걀과 곤소금은 꼭 챙겼다. 기차나 버스 안에서 출출할 때 간식으로 옆 사람들에게 민폐를 끼치지 않고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뿐인가. 아버지의 하얀 와이셔츠가 누렇게 변했을 때 양파 그물망에 달걀껍데기를 넣고 삶으면 감쪽같이 누렇던 옷깃이 새하얗게 변했다. 기독교에서는 부활절 달걀이 있다고 자랑하지만, 우리 조상들도 새해맞이 떡국에도 넣고 제사상에도 삶은 달걀을 칼집 내 별 모양으로 예쁘게 만들어 올렸다. 또한, 삼촌이 노래자랑에 나갈 때면 무대 아래에서 날달걀을 쭉 빨아 넘기고는 한 곡조 멋들어지게 뽑았다.

누이들이 얼굴 마사지하는 거야 기본이고, 문간방 아재는 커피잔에 달걀을 풀어 모닝커피라며 무게를 잡았고, 할아버지도 허리가 아프다는 핑계로 큰 컵에 소주를 붓고 달걀을 띄워 드셨다. 이웃집 신혼들도 부부싸움 끝에 시퍼렇게 멍든 광대뼈 붓기도 달걀을 굴려 문지르면 감쪽같이 사라졌다. 그때 쓴 달걀은 삶아서 껍데기를 까면 퍼런 멍이 희한하게도 흰자위로 옮겨와 있었다. 요즘엔 집회나 시위현장에서 맘에 안 드는 사람에게 항의 표시로 날달걀을 던진다. 돌멩이나 벽돌을 던지면 다칠 수도 있겠지만, 달걀은 미끈미끈하고 누런 점액질만 뒤집어씌울 뿐 큰 충격은 주지 않는다.

이처럼 귀하고 쓸모 많은 고마운 달걀이 대형마트는 물론 동네 구멍가게에서조차 의심의 눈초리를 받는 신세가 됐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라더니 귀신 중에는 달걀귀신도 있다. 그놈은 걸어갈 때 물구나무서기를 해서 바닥에 머리를 대고 ‘통, 통, 통’ 소리를 내며, 마당 구석에 있던 측간(화장실) 문 틈새로 엿본다 했다. 뒤가 급했던 여동생이 볼 일을 마칠 때까지 화장실 바깥에서 보초를 섰던 옛일도 문득 떠오른다. 아무렇지도 않다가도 방송 한 번 탔다 하면 이 지경으로 사달 나 야단법석이다. 그간 즐겨 먹던 김밥에서부터 피자와 빵 그리고 과자는 물론 마요네즈까지 달걀을 넣지 않고서는 풍부한 영양과 맛을 낼 수가 없다. 며칠만 기다리면 끝날 것 같더니, 갈수록 태산이다. 대책도 없고 책임질 사람은 아무도 앞으로 나서질 않는다. 에그머니! 진짜 달걀귀신은 따로 있었네.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로 트럼프와 김정은이 치킨게임에 열중했다. 아니나 다를까. 약발이 안 먹힌 모양이다. 달걀에 살충제 독성이 영 점 영 퍼센트가 있다며 호들갑을 떨며 관심을 급히 달걀로 돌렸다. 제대로 벌집을 쑤셨다. 진드기 잡겠다고 미사일을 양계장에 떨어뜨린 꼴이 됐다. 성인이 한꺼번에 175개를 먹었을 때 급성독성 상태가 된다는데, 더한 것도 잘들 먹고 잘 살면서 있는 오두방정은 다 떤다. 양계장에는 가 본 적은 없으나, 닭들만 불쌍하게 됐다. 졸지에 공공의 적으로 추락했으니 미안하고 민망하다. A4지 한 장도 채 안 되는 철제 우리에서 옴짝달싹 못 했다. 고개만 내밀어 주는 대로 사료만 먹었다. 선 채로 알만 낳던 그 암탉들이 무슨 죄란 말인가. 이래저래 닭 팔자는 기구하다. 앗! 샛길이다. 에그머니! 헛발 디딜 뻔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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