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네에서 실족한 그녀는 벼랑 아래로 꽃잎처럼 떨어져 내리고~

영동에서 국도변을 따라 대전 쪽으로 가다보면 부용리 고개를 지나 약 0.7km 지점에 가파른 절벽이 하나 있다. 높이가 20m 정도의 날이 선 돌출암벽 위에 야윈 고목 한 그루가 특히 인상적인데 이 벼랑 위에 서면 바로 그 아래로 흐르는 금강 상류의 영동천과 멀리 소백산맥의 연달은 봉우리가 한 눈에 들어와 장관을 이룬다. 

이 암벽을 예로부터 낙화대(落花臺)라 부르고 있는데 거기에 언제 들어도 애타는 어느 기생의 전설이 서려있어 오가는 행인들의 가슴을 아프게 한다. 

옛날 영동에 한 이름난 기생이 있었다. 노래를 부르면 꾀꼬리요, 춤을 추면 학이라던 인기 있는 기생이었다. 시와 글쓰는데도 막히는 데가 없는 그 기생은 지조와 절개와 높기로도 인근에 이름이 났다. 

영동에서 난다하는 멋진 사내들과 관리들이 그녀를 꺾으려고 팔방으로 힘을 써 보았지만 오히려 콧대만 높여 줄뿐 그녀를 품에 안은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 새로 부임한 영동 원님(군수)은 이러한 소문을 듣고 어느 날 평복차림으로 기생이 있는 집을 찾았다. 

원이라는 지위를 이용해서 강압적으로 그녀를 차지하기보다는 한 남자 대 여자의 입장에서 그녀를 꺾어보고 싶은 욕심에서였다. 원은 서울에서 소문을 듣고 찾아온 선비 행세를 하며, 그 기생과 술자리를 벌렸다. 

그녀는 과연 소문대로 천하의 미인이며 시, 글, 노래, 춤 그리고 말재주 어느 하나도 막히는 데가 없는 사람이었다. 원과 기생은 밤이 새는 줄도 모르고 술과 노래와 시조를 주고받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날이 밝고 멀리서 닭 우는 소리가 들릴 무렵 기생은 스스로 몸을 던져 선비의 품에 안겼다. 며칠이 지난 뒤 원은 기생에게 수청을 들라고 불러들였다. 원 앞에 고개를 숙인 채 기생은 말하기를 자기는 이미 몸을 허락한 사람이 있어 일부종사하기로 작정한 몸이라 수청을 들 수 없다고 똑똑하게 아뢰었다. 

원은 시치미를 떼고 갖은 위협적인 말을 다 늘어놓았다. 그러나 기생은 끝까지 거절했다. 강제로 자기를 범한다면 자살하겠다고 가지고 온 칼을 뽑아 가슴을 겨루기까지 하는 것이었다. 

갸륵한 절개에 탄복한 원님은 더 이상 기생을 놀릴 수가 없어 기생의 턱을 들어 자기를 바라보게 하였다. 그때 기생의 놀람과 기쁨을 어찌 글로써 표현할 수 있겠는가! 

그후 원과 기생은 하루가 멀다하고 만나 정을 나누기가 바빴다. 두 연인은 특히 전망이 좋고 탁 트인 낙화대에 앉아 술잔을 기울이며 시조 읊기를 즐겼다. 

때로는 암벽 위에 있는 나무에 그네를 매고 그네 타기를 즐기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들 연인에게도 헤어질 날이 오고야 말았다. 

원님이 다른 군으로 부임하게 되어 만부득 헤어지지 않으면 안 되었다. 원님이 새 임지로 떠나는 날 기생은 아픈 가슴을 안고 낙화대로 뛰어올라가 원님의 행렬을 가장 멀리까지 볼 수 있는 곳, 원님과 많은 추억이 서려있는 곳이 바로 낙화대였다. 

기생은 전에 매어 둔 그네에 올라서서 있는 힘을 다 주어 창공을 날으며 님의 행렬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전송을 했다. 그네가 창공을 날 때면 곧장 님의 곁으로 갈 것만 같은 생각에 기생은 계속해서 그네에 힘을 주었다. 

꼭 자기를 데리러 오겠다는 원님의 말과 이제 떠나면 다시 못 만날 것같은 불안감에 겹쳐 기생은 정신이 흐려지는 것을 느꼈다. 순간 그네에서 실족한 기생은 벼랑 아래로 꽃잎처럼 떨어져 내리고 말았다. 그 기생이 죽은 뒤부터 그네가 매어 있던 이 암벽을 낙화대라 불려왔다고 전한다.

저작권자 © 일간경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