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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황신과 최명길(崔鳴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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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7.08.08 1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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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흘산과 문경새재에 전하는 전설로는, 조선 태종 때 처음으로 조령의 길을 개척할 때 일이다.

문경 현감이 조정에 긴급히 전해야 할 중대한 안건이 있어 역졸 중에 신체 건장한 역졸을 선발하여 조정에 상계(上啓)할 장계를 가지고 급히 다음 역까지 전달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현감의 명령을 받은 역졸은 다음 역을 향해 문경새재를 넘어가는데 새재의 중간지점에 이르렀을 때 호랑이에게 변을 당하고 말았다. 문경 현감은 역졸이 호환(虎患)을 당한 줄도 모르고 조정에 상계한 장계의 답만을 기다리고 있던 차에 조정에서는 문경현감에게 장계가 오지 않았다고 급히 보고하라는 엄명을 내렸다.

문경현감은 깜짝 놀라서 몸소 보낸 그 역졸을 호출하였더니 역졸이 행방불명된 사실이 드러났다.

이 사실을 늦게 안 현감은 즉시 그 역졸의 행방을 탐색한 결과 문경새재에서 호랑이가 먹다 남은 신체 일부와 행장이 발견되었다.

현감은 또다시 지연된 사유와 장계를 조정에 올리니 태종은 크게 노하여 봉명사를 문경새재에 내려보내어 산신령을 잡아오라는 엄명을 내리셨다. 

봉명사는 문경새재에 도착해 산신령을 잡으려고 하였으나 산신령을 잡을 묘책이 없어서 새재 산신각에 제문을 지어 제사를 지낸 후에 혜국사에 머물면서 산신령을 포박할 궁리를 하였다. 

그날밤 만월로 달빛도 밝은데 삼경쯤이 되어 천지가 진동하는 듯한 호랑이 울부짖음이 일어나더니 잠잠해졌다. 그 이튿날 새재 산신각 앞에 큰 호랑이가 죽어 있어서 봉명사는 그 호랑이 가죽을 태종께 바치고 전후 사실을 상세히 알렸다. 

그 후부터는 문경새재에 호환(虎患)이 사라졌으며, 그 사건이 있은 후 전씨(錢氏)라는 이방인이 혜국사에 유숙하고 있는데 꿈에 산신령이 현몽하기를 “나는 새재 산신령이오. 나라에 득죄하여 아직 면죄를 못받았으니 나라에 상소하여 억울한 죄명을 씻어줄 수 없겠소?” 하고 간청했다. 그는 쾌히 승낙하고 즉시 새재 산신령에 관한 사죄 상소를 올려 죄를 면해주었다는 전설도 있다.

영남제일관문이라고 하는 주흘관에서 오른쪽으로 보면 성황당이 있다. 제1관문 성벽에 있는 성황당에는 여신을 모신다. 숱한 전설이 있으나 최명길(崔鳴吉)의 전설을 소개한다.

최명길은 조선 인조 때 영의정을 지냈다. 최명길이 어렸을 때 안동부사로 있는 외숙께 문후차 안동으로 갈 때 새재를 넘게 되었다. 그때 용모가 단정하고 자색이 아리따운 젊은 여인이 뒤를 따라오면서 “험한 산길이라 여자 혼자 무서워 갈 수 없으니 동행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말을 건넸다.

최명길은 성격이 호방한데다가 젊은 여인이 동행을 원하는지라 쾌히 승낙하고 동행하면서 그 여인의 정체를 살피고 있었다. 앞서가던 여자도 그 눈치를 차렸는지 뒤를 돌아보고 방긋 웃으며 “공이 저를 의심하는 모양이니 내 정체를 말씀하리다. 

저는 사람이 아니고 새재 성황신인데 안동사는 좌수(左首) 모씨가 서울 갔다 오는 길에 성황당을 지나면서 성황당에 걸려 있는 치마를 훔쳐 제 딸에게 주었으니 이런 고약한 자가 어디 있습니까? 지금 좌수딸을 죽이러 가는 길인데 우연히 공과 동행하게 되었습니다”라고 말하면서 최명길의 눈치를 살핀다.

최명길은 마음속으로 놀랐으나 태연자약하게 “인명은 재천인데, 죽일 것까지야 없지 않소"라고하며 용서할 수 없느냐고 물었다. 그 여자는 한참 후에 공은 미구(未久)에 정사 공신으로 영의정에 오를 몸이요, 병자호란이 일어나는데 공은 큰 공을 세우실 것입니다.

그러나 명나라는 망하고 청나라는 흥할 것이니 부디 청과 화친하여 이 나라 사직(社稷)을 보전하여야 합니다”라 일렀다.

 “오늘 좌수의 딸을 죽일 것이되, 공의 체면을 봐서 징벌(懲罰)을 할 것이니 공은 이렇게 하여 제 체면을 세워주시요”라고 한 뒤 간 곳이 없었다. 최명길은 서둘러 안동 모 좌수의 집을 찾으니 좌수딸이 급사하여 집안이 발끈 뒤집혀 경황이 없었다.

최명길은 주인을 찾아 인사를 나눈 후 “딸은 내가 회생시킬 수 있으니 딸 있는 방으로 안내하시오”하니 주인은 죽은 딸을 살리겠다고 감사히 여겨 최명길을 딸방으로 인도하였다. 

새재에서 본 성황신이 좌수 딸의 목을 누르고 있다가 일어나며 “이제야 오십니까?” 하고 인사한다. 성황신과 최명길의 대화는 다른 사람에게 들리나 성황신이 다른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 

“문경새재 성황당에서 가져온 치마를 빨리 불사르고 깨끗한 음식으로 제사 지내면 딸이 회생할 것이니 염려마시오” 라고 말하자 좌수는 백배사례하고 시킨대로 하니 딸이 다시 살아났다. 

그 후 과연 최명길은 벼슬이 차츰 올라 영상이 되고 병자호란 때 중의를 물리치고 당시 정세를 잘 파악하여 치욕을 참고 화청정책을 채택하여 국난을 수습한 사실은 성황신과의 인연이었다는 사화가 구전되고 있다.

일간경기  ilgangg@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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