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도 정족산성 4천 년 전 축조됐을 가능성이 크다"

인천 강화도 정족산성(삼랑성)의 실제 축조 시기가 고조선 초기인 4천 년 전일 가능성이 크다는 학설이 제기됐다.

군사고고학연구회 회장인 인하대 남창희 교수는 지난 5년에 걸친 동북아 고대 산성 비교 연구 과정에서 정족산성의 구조와 위치를 군사학적으로 검토한 결과, 축성 시기를 고조선 초기로 추론할 수 있다고 밝혔다.

전등사가 위치한 정족산성은 전형적인 포곡식 산성으로 가파른 외 측면 산세를 이용한 천혜의 군사기지다. 포곡식 산성은 계곡을 둘러싼 능선에 산성을 쌓아 성 내부가 훤히 들여다보이는 구조의 성을 말한다.

1866년 병인양요 때 양현수 장군이 강화도에 상륙하려는 프랑스군을 격퇴했을 정도로 정족산성은 방어에 유리한 지형 조건을 갖추고 있다.
정족산성의 축조 시기와 관련해서는 고려 시대에 처음 쌓았다는 기록이 고려사에도 없고, 세종실록지리지에는 전설에 의존해야 할 정도로 먼 과거에 축조된 것으로 기록돼 있다. 이 때문에 축조 시기를 놓고 학설이 분분한데, 남 교수팀은 한성백제 시기와 3천500년 이전이라는 두 개의 군사학적 가설을 국내에서 처음으로 제시했다.

전설에 의햐면 고려사 지리지에 이곳 삼랑성에 대한 이야기를 이렇게 적었다. 

일명 정족산성이라고도 불리우는 이 성은 단군의 세 아들 부여,부우,부소가 전등산의 산세를 따라 둥글게 성을 쌓았다는 전설이 전해 내려오고 있지만 그 당시에 쌓았던것으로 보기는 어렵지 싶다.성곽의 구조를 보면 잡석으로 축조되어 있기에 삼국시대의 석성구조를 잘 나타내 보여 준다고 할 수 있다.

삼국의 항쟁 과정에서 백제가 고구려와 함께 치열한 접전을 벌였던 곳이 강화도 였고 아마 그러한 어간에 쌓여졌거나 삼국통알 이후에 신라에 의해 쌓아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고려사에 따르면 고려 고종이 강화도로 천도한 다음 임금이 머물 임시궁궐의 자리를 물색하다가 삼랑성과 그 아래 신니동에 자리를 정하게되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이를 통해 고려 고종이 강화도로 천도하기 이전에 이미 성이 축조되어 있음을 인식할 수 있다.그 이후로도 오랫동안 성이 경영되어 왔던것으로 보이는데 몽골군의 침입으로 재화를 입기도 하였다

 성 내에는 고구려 소수림왕 11년 (3841)에 창건된 유서 깊은 전등사가 있으며 고려 고종 46년(1259)에는 이 성안에 궁궐(이궁)을 지었으나 현재는 무너지고 터만 남아 있다. 

조선 현종 1년에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할 사고를 설치하였는데, 무너진 것을 1998년 강화군에서 복원하였다. 조선 고종 3년 병인 양요시 양헌수장군이 이 성을 침입해오던 160여 명의 프랑스군을 무찌른 전승지 이기도 하다.

이 성에는 동.서.남.북에 4대문이 있고 남문을 제외한 3개 문에는 문루가 없었다 하나 영조때에 남문인 종해루라 현판을 걸었다고 한다. 남문의 문루가 무너져 없어진 것을 1976년 현재와 같은 모습으로 복원하였다.

조선 현종 1년(1660) 마니산의 사고에 보관되어 있던 '조선왕조실록'을 성 안에 있는 정족산사고로 옮기고, 왕실의 족보를 보관하는 선원보각을 함께 지었다. 그러나 지금은 둘 다 없어지고 전등사만 남아있다.

군사 지리적 위치와 수용 능력의 데이터를 결합하면 정족산성은 해양력이 발달한 북방세력의 전방작전기지(Forward Operating Base)로 효용이 높았다고 남 교수는 설명했다. 동시에 한반도 내륙의 전략적 가치 중심을 노리는 적대 세력의 원정 상륙을 막는 방어기지로써도 효과적이었다는 것이다.

남 교수팀과 국방대 권태환 교수는 BC 8세기부터 한성백제 말기 475년까지 약 1천200년간의 동북아 국제 관계 주요 변동 시점에서 정치군사 모의분석을 실행했다.

그 결과 강화도에 대형기지를 설치할 전략적·작전적 필요는 BC 8세기 이전과 한성백제 시기에 존재했다. 연구팀은 그러나 한성백제 시기보다는 2천800년 이전이었을 가능성이 크다는 잠정 연구 결과를 공개했다.

삼국시대 이전 해양력 발전의 지표는 천문기록과 항해인데, 두 가지를 충족시킨 국가는 고대 동북아에 고조선뿐이었다는 주장이다. 중원 문화에 없는 고인돌의 별자리 새김문화와 신석기 시대 원양 어로 암각화의 존재가 고조선의 앞선 해양력을 뒷받침한다는 것이다.

또 고조선 말기에는 제나라, 연나라 등 대륙 세력의 위협에 집중해야 했기 때문에 고조선 남쪽 주변부인 강화도에 대규모 군사 시설을 설치할 필요가 없었다는 해석도 나왔다.

따라서 정족산성은 BC 2천300년 경 고조선 초기 세력권이 한반도 남쪽으로 확장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토착 해양세력과의 갈등 흔적이라고 남 교수팀은 해석했다.

김연성 인하대 고조선연구소 소장은 "정족산성이 4천 년 전에 축조된 것으로 확인되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서도 손색이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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