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의 몸인데 '현감' 호칭은 심히 의아스러운 생각이 들었다

음성군 원남면 소재지인 甫川에서 북으로 약 500m 올라간 곳에 마송리 부락이 있는데 이곳에 박주헌의 묘가 있다. 

박주헌이 아직 벼슬에 오르지 않고 백수의 몸으로 향리에 있을 때 나이 30전후해서 어느 봄날 그의 벗들과 더불어 음성시장에서 놀다가 술이 거나하게 취해서 乾芝峰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는데 날이 어두운지 오래되어 장꾼들 발길도 끊어졌다.

 그는 캄캄한 밤길을 갈지자(之)로 걸어 오다가 숲거리에서 주기(酒氣)를 이기지 못하고 쓰러져 잠이 들고 말았다. 그리고 얼마동안 잤는지 모르지만 눈을 떠보니 하늘에 아직도 별이 총총 보였다.

 그는 비몽사몽간에 어렴풋이 정신을 차리고 있는 귓전에 웅성대는 소리가 나직하게 들려왔다. 이에 박주헌이 취기가 몽롱한 눈으로 소리나는 곳을 바라보니 숲속에 불을 환히 켜놓고 키가 6척이 넘어 보이는 거한들이 모여 앉아 무엇인가 얘기를 주고 받고 있었다. 
그것을 희미하게 안막으로 느끼면서 그는 다시 잠속으로 빠져 들어갔다. 그런데 잠시후 거한 가운데 한 사람이 박주헌 곁으로 다가오더니 잠시 그를 눈여겨 보더니 동료들을 향해서 “애들아 여기 음성현감이 술에 취해서 계시니 집으로 모셔다 드리자”하고 소리를 쳤다. 

그러자 불을 에워싸고 있던 동료들이 다가와 박주헌을 등에 업고 숲거리를 빠져나오자 귀에 바람을 일으켜 하늘을 나는듯 치닫더니 삽시간에 건지붕 박주헌의 집 담을 넘어 사랑방에 박공을 눕혀 놓고 밖으로 나오려 하자 겨우 눈을 뜬 박주헌이 거한들을 향해서 누구냐고 물었다. 그중 하나가 “우리는 숲거리에 살고 있는 도깨비인데 음성 현감 나으리께서 술을 많이 잡수시고 계시므로 우리가 모셔온 겁니다.” 하고 홀연히 사라지고 말았다. 박주헌은 비로소 제 정신을 차리고 그가 현재 있는 곳이 다름아닌 그의 집 사랑방임을 확인하자 하인을 불렀다. 
그리고 “내가 분명 장터에서 술을 마시고 돌아오다가 거리에서 쓰러져 잔것으로 기억을 하는데 어찌 내 집 사랑으로 나와 있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하인은 “조금전 문간방문을 열고 키가 큰 거한이 박음성현감이 거리에서 술이 취해 주무시길래 모셔 왔으니 잘 보살펴 드리도록 하오”하며 나갔다고 대답을 했다.

 박주헌은 이때 아직 벼슬을 얻지 못하고 백수의 몸으로 있을 때여서 그가 음성현감이라고 호칭을 받은데 대해서 심히 의아스러운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런일이 있은 뒤 얼마 안가서 박주헌을 交河현감을 배임받아 부임했는데 이것을 시초로 횡성현감을 역임하고 마침내 순종 2년(1908 戊申) 음성현감을 拜任받았다.

 이것은 실로 그가 음성현감을 하게 되리라는 것을 도깨비들은 이미 20년 전에 미리 알고 있었던 것이다. 

 한편 아버지 없이 홀어머니 밑에서 동생과 함께 사는 소년이 있었다. 소년은 나무를 해다가 식구들을 먹여 살렸는데, 비록 어리지만 어른스럽고 효성이 지극했다. 어느 날 산에 나무를 하러가서 나무를 해놓고 보니 개암이 조롱조롱 달린 개암나무가 보였다. 마침 잘 됐다 싶어 가족들에게 가져다주기 위해 개암을 따 모았다.

그런데 개암 따는 데 정신이 팔려 날이 저무는 줄도 몰랐다. 당황한 소년이 사방을 둘러보니 먼 곳에 기와집 한 채가 보였다. 나무를 지고 허겁지겁 그 집으로 가 보니 사람이 살지 않는 빈 집이었다. 밤이슬을 피하기 위하여 마루 밑에 들어가 웅크리고 잠을 청하려는데 갑자기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가만히 들어보니 어디서 도깨비들이 몰려와 방안에 모여 앉아 도깨비 방망이를 두드리면서 음식을 만들어 먹고 있었다. 방망이를 두드리면 나오라고 하는 음식이 수북이 나왔다.

소년은 마루 밑에서 배가 고파 호주머니에 있는 개암을 한 알 꺼내어 깨물었다. “딱!” 소리를 내며 개암이 깨지자, 도깨비들이 그 소리에 놀라 음식과 방망이를 그대로 둔 채 모두 달아나 버렸다. 소년은 방으로 들어가서 음식을 배불리 먹었다. 그리고 도깨비 방망이도 챙겨 내려와 음식도 실컷 먹을 수 있게 되었고, 순식간에 부자가 되었다.

이웃집에 사는 욕심쟁이가 그 소문을 듣고는 소년의 집으로 찾아와 부자가 된 까닭을 물었다. 마음씨 착한 소년은 숨기지 않고 욕심쟁이에게 전후 사정을 모두 말해 주니, 욕심쟁이도 부자가 되고 싶은 마음이 생겨 그대로 따라해 보기로 마음먹었다.

산에 올라가서 먼저 개암을 따고, 날이 어둡기를 기다렸다가 빈집으로 가 마루 밑에 숨어 도깨비들이 오기를 기다렸다. 밤이 되자 도깨비들이 나타나 음식을 만들고 잔치를 하면서 웅성거렸다. 욕심쟁이는 마루 밑에서 개암을 ‘딱!’ 깨물었다. 그러나 도깨비들이 달아나지 않고, 도리어 마루 밑으로 달려들어 욕심쟁이를 끌어내어다가 방안에 내동댕이쳤다. 그리고는 도깨비들은 "네가 그때 그 도둑놈이로구나!"하면서 욕심쟁이를 때리기 시작했다. 흠씬 두들겨 맞은 욕심쟁이는 정신이 가물거리면서도 "도깨비 방망이, 도깨비 방망이"하고 중얼거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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