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려가 현실이 되고 있다. 사고난지 3일째가 됐지만 300명 가까운 실종자들 가운데 단 한 명의 추가 구조 소식도 들리지 않는다. 시신 인양 소식만 이어지고 있다.

희생자 가족은 물론 온국민의 간절한 염원과 기도는 처절한 울음으로 변하고 있다. 파도가 넘실대는 바다를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는 망연자실한 가족들의 모습은 보는 이의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믿기지 않는 참사앞에서 우리 모두는 죄인같다. 그러나 우리를 더 참담하게 하는 것은 어이없는 사고 당시와 전후의 상황이다. 조사하면 할수록, 파헤치면 파헤칠수록 이 참사는 기가 막힌다.'

우선 배에 이상징후가 생긴 것이 해경에 사고 발생이 접수된 16일 오전 8시58분 직전이 아니라 그 보다 1시간여 전이었다는 증언이 속출하고 있다.

생존 탑승객들은 오전 7시40분 무렵부터 갑자기 배가 기울었고, 사람들이 한쪽으로 쏠릴 정도였다고 말했다. 그러나 선내 방송에서는 9시가 지나고 나서야 "침착하라. 자리를 지키라"는 안내가 흘러나왔고 구명조끼를 입으라는 방송은 20분이 지난 뒤에 처음 나왔다고 한다.

그때도 여전히 "구명조끼를 입고 움직이지 말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 방송이 진행되는 와중에 선장과 일부 승무원들은 구명정에 몸을 실었다. 조금만 일찍 구조 작업이 이뤄졌더라면 이런 대형 참사로 이어지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점에서 선장 등 승무원들의 늦장 신고 여부는 철저히 수사돼야 한다. 또 누가 무슨 이유로 이런 어이없는 안내방송을 지시했는지 여부도 철저히 파헤쳐져야 한다.'

취재한 생존 학생들의 말에 따르면 사고 직후 배에는 선장이 먼저 탈출했다는 이야기가 돌았고, 당시 많은 학생들이 구명조끼도 착용하지 않고 있다가 몇분만에 배가 급격히 기울고 물이 차오르자 아비규환 상태가 됐다고 한다. 선장과 선원의 안내나 지시가 없는 상황에서 학생들은 헬기를 타거나 바다에 뛰어드는 것 보다 배안에서 구조대를 기다리는 것이 더 안전하다고 판단해 많은 수가 객실에 남아 있었다는 것이다.

"안전한 객실에서 대기하라"는 안내 방송을 철석같이 믿었던 학생들이 희생된 것이다. 단원고 학생중 최초로 구조된 한 학생은 팽목항에 도착하자 선장이 자신보다 먼저 와 있었다고 증언했다. 이러고도 선장이라고 할 수 있는가. 선장이 차분하게 승객들을 갑판으로 대피시키고 구명조끼를 착용시켜 바다로 탈출시켰더라면 그 생때같은 어린 목숨들을 이렇게 잃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 뿐이 아니다. 배가 침몰할 당시 입사한지 4개월 남짓된 26살짜리 3급 항해사가 조타실 키를 잡고 있던 사실도 드러났다. 원래 이 배의 항해사는 신모 1급 항해사였지만 그가 휴가중이어서 2급 항해사인 이준석 선장이 운항을 맡았는데, 침몰 당시에 선장은 조타실 밖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고 3급 항해사가 `맹골수도'로 불리는 위험 구간의 운항을 책임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사고 당시가 선장의 근무시간이 아니었다 해도 경험이 미숙한 항해사에게 위험구간의 운항을 맡긴 것이 사고의 단초가 된 것은 분명해 보인다. 하긴 제일먼저 구조돼 물에젖은 지폐를 말리고 있던 선장에게 안전 운항 여부를 따지는 것 자체가 어리석은 일일지 모른다. 가족과 함께 세월호에 탔다가 혼자 구조된 권지연(5) 양의 얘기는 가슴을 울린다. 사고 직전 권양과 오빠 혁규군은 부모와 잠시 떨어져 놀고 있었다.

배가 기울자 오빠는 입고 있던 구명조끼를 벗어 지연양에게 입혀준 뒤 부모를 찾아오겠다며 자리를 떴다. 그리고 그 오빠는 지금껏 실종상태다. 오빠 혁규군의 나이는 6살이다. 세월호의 선장은 6살짜리만도 못했다.'

구조작업도 어이없긴 마찬가지다. 사고 발생 사흘째가 돼서야 구조요원들이 선체내로 진입을 시도하고, 공기주입을 시작한 것은 아무리 현장 상황이 좋지않다 해도 납득하기 어렵다.

모든 수단과 방법을 총동원해 구조작업을 펼쳤는지 의문이 드는 대목이다. 해경은 세월호가 침몰할 때까지 1시간 이상을 여객선 밖으로 나온 승무원과 승객 구조에만 급급했을 뿐 여객선 안에 남아있는 승객들은 사실상 방치했다. 11시20분 세월호가 침몰하는 순간에도 승객들이 대부분 구조됐다고 하더니 한 시간쯤 후에야 사망 실종자수가 300명 가까이 된다고 번복한 정부의 넋나간 대처와 당시 구조대의 안이한 작업이 무관치만은 않아 보인다.

실종자 가족들이 대국민호소문을 통해 정부가 구조 작업을 부풀려 발표하고 초동 대처때도 상황을 정확히 판단하지 못했으며 현장에 책임자도 없었다고 주장하면서 "정부가 계속 거짓말을 하고 있다. 국민이 도와달라"고 절규하는 상황을 정부가 자초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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