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천소방서 예방교육훈련팀장 윤형석

최근 개봉된 영화‘임금님의 사건수첩’은 조선 예종 때 예문관 신출내기 사관이 겪는 궁중암투를 다룬 코믹 활극이다. 하지만 영화의 시작은 낯선 장면으로부터 연출한다. 한양 저자거리에 참언이 적힌 허수아비가 여기저기 내걸리고 군중들은 동요한다. 임금이 은밀하게 함경도로 파견했던 관리가 온몸이 불에 휩싸여 타살당하는 장면이다. 숨진 관원의 시신을 직접 부검한 예종은 누군가가 백린을 이용해 갑작스러운 불길을 일으켰음을 알아낸다

38선이 통과하는 포천지역은 한국전쟁 당시부터 전략적 요충지였다. 민가 주변에서 불발탄이 발견되는 일은 뉴스거리도 아니다. 2012년 내촌면 고물상에서 연습용 고폭탄이 터지면서 소방관을 포함한 5명이 부상당한 일이 있었다. 특히 산이 높고 골이 깊은 포천지역은 전적지가 많은 곳이다. 6.25 당시 쏟아 부은 살상용 무기들이 주변 산야에 얼마나 많이 묻혀 있는지 가늠하기도 어렵다.

25일 화현면 화현마을 진입도로 좁은 틈 사이에서 연기와 불꽃이 올라온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해 보니 한국전쟁 당시 사용했던 장비폭파용 백린 연막수류탄으로 확인되었다. 어제 내린 집중호우로 지반이 일부 유실되면서 노출된 것으로 보였다. 군부대 폭발물처리반을 동원하여 안전조치 하였지만 백린수류탄이란 말은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영화 속 불길에 일그러진 관원의 얼굴이 생생하게 떠올랐기 때문이다.

소방법상 제3류 위험물로 분류되는 백린(P4)은 소방관들조차 매뉴얼에 따라 고도의 주의를 기울여 신중한 대처가 요구된다. 공기 중에서 극렬하게 산화하며 발열하고 물로서는 소화할 수 없는 자연발화성 물질이다. 피부에 닿으면 심한 화상으로 녹아내리고 연기마저도 많이 흡입하게 되면 사망에 이를 수 있다. 월남전 당시 네이팜탄, 소이탄의 주성분이다. 우리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백린은 성냥이다. 백린이 햇빛에 노출되면 적린이 된다. 성냥의 화약을 적린으로 만든다.

포천은 계곡 물놀이 휴양지로 유명한 관광지이다. 장마철 빗물에 쓸려내려온 불발탄을 계곡주변에서 발견하게 된다면 반드시 소방상식을 떠올려야 한다. 녹슬고 낡은 불발탄을 대수롭지 않게 만지거나 옮기는 행동은 위험천만한 일이다. 더군다나 가까이 다가가 구경하는 것도 위험하다. 이번에 발견된 백린 연막수류탄의 경우처럼 공기중에서 자연발화 누출되 연기를 무방비 상태에서 마시게 된다면 사망에 이를 수 있기 때문이다. 휴가철 가족들의 안전한 야외활동을 위해서는 소방상식이 반드시 필요한 시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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