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천만년 동안 황폐하여 갈매기가 나래를 쉬어가는 절해의 고도

포항제철소가 자리잡고 있는 일대를‘어룡사''어룡불'또는 '어링이불' 이라고 불렀다.

옛 사람들은 장기곶이 영일만을 감싸고 동해로 길 게 돌출한 것을 보고 마치 용이 등천하는 형국이라 하여 용미등이라 부르고, 흥해읍 용덕리의‘용덕곶이 동남으로 돌출한 것을 어약승천의 형국으로 보았다.

양곶의 형상을 풍수학적으로 어룡상투의 형국으로 보았다. 그래서 영일만의 중심지대인 이곳을 어룡사라고 부르게 된 것이었다.

또 이‘어룡사는 광의(넓은 뜻),협의(좁은 뜻)의‘어룡사로 나누고 있다. 

광의의 어룡사는 동해면 약전동으로부터 형산강을 지나 포항시 두호동에 이르는 넓은 백사장을 총칭하는 것이고, 협의의 어룡사는 형산강 하류를 중심으로 남쪽과 북쪽, 즉 포항제철소가 자리잡은 지대와 지금의 포항송도 해수욕장 전역을 말한다.

장장 20여리나 되는 옛날의 어룡사는 모래벌판으로 풀 한 포기없는 황무지였다고 한다. 동지섣달의 하늬바람이 불어 닥치면 눈을 뜰 수 없고 발을 붙일 수도 없는 지대로서 수천만년 동안 황폐하여져서 갈매기가 나래를 쉬어가는 절해의 고도와 같았다.

조선의 유명한 지상학자였던 성지가 이 지역을 둘러보고는 범상한 곳이 아니라는 말을 했다.

서편의 운제산이 십 리쯤만 떨어졌더라도 수십만의 사람이 살았을 거라고 했다.

그러나 이만한 위치와 지형이라도 좀 늦어지기는 하겠으나 많은 사람이 모여 살 거라고 예언했다.

같이 길을 나섰던 이 지방의 선비들이 풀 한포기 없는 이 백사장에 어찌 수십만의 사람이 살 수 있는 대도시가 된단 말인가 하고 그의 말을 믿으려 하지 않자, 성지는 혼자말처럼 ‘죽생어룡사 가활만인지 서기동천래 회망무사장’이라는 시를 뇌었다고 한다.

위 글의 의미를 새겨 보면 "어룡사에 대나무가 나면 가히 수만이 살 곳이니라. 서쪽 그릇이 동쪽 하늘에 오면,돌이켜 보니 모래밭이 없어졌더라 "로 해석할 수 있다.그 이후 이 지방에는 성지의 예언이 널리 퍼졌다고 한다.

이 예언은 수백년이 지나도 아무런 징조가 없더니 약 30년 전, 어룡사가 포항제철 부지로 선정되어 대나무 같은 굴뚝이 치솟아 올라가고, 수십만의 사람이 모여 살게 됨으로써 실현된 셈이다.
 
 한펀 형제산은 포항시와 경주시의 경계에 위치해 있다.

형산강 어구의 남쪽에 북형산성 이 있고, 김부대왕, 즉 경순왕을 모신 용왕사가 있는 산을 북형산(고려때부터는 '형산'이라 부름)이라 하고, 그 북쪽 산을 제산이라고 한다. 형산강은 이 두산 사이를 지나 포항으로 흘러 온다.

그런데 옛날 형제산이 단맥되기 전에는 남천, 북천, 기계천의 물이 안강일대에 모여 호수를 형성하였고, 범람하면 경주까지 그 피해를 입었다고 한다. 그래서 안강의 치수문제는 신라의 숙원사업이었다.

경순왕 김부가 왕위에 올랐을 때는 후삼국이 일어나 서로 각축을 벌였을 뿐만 아니라, 나라 안에서는 사방에서 도적떼가 일어나 치안이 극도로 문란해지는 등 신라는 장래를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답답해진 경순왕은 사관에게 신라의 장래에 관한 점을 보도록 하였다. 신라의 산천과 지세를 살펴 본 사관은 장차 신라의 왕위를 찬탈할 역적은 북쪽의 궁예도 아니고, 남쪽의 후백제왕도 아니고 동쪽 임정현에서 일어날 것이라고 하였다.

또 이를 막기 위해서 형산포의 산을 끊어 안강호수의 물을 어용사, 즉 영일만으로 흘러 보내면 임정현땅의 지정왕기가 제압되어 역적이 출현하지 못할 것이라고 하였다.

이에 경순왕은 태자 김충과 의논하여 백일간의 기도를 올리기로 하였다. 

경순왕은 하늘에 올라가 목침 으로 삼층집을 짓고 옥황상제와 천지신명과 신라왕실의 조종들에게 종묘사직의 안녕을 기원하였다. 땅에서는 태자 김충이 형제산맥의 단절을 천지신명께 기도하였다.

태자는 기도 끝에 큰 뱀이 되었다.그러나 사람들이 그를 용으로 불러 줘야만 용이 될 수가 있었다.길가에 누워 지나가는 사람이 용으로 불러주기를 기다렸다.그러나 아무도 용이라 불러주는 사람은 없고,큰 뱀을 보고는 두려워서 달아나기만 하였다. 왕과 약속한 백일이 불과 하루밖에 남지 않은 날이었다. 크게 낙심을 하고 있는데 마침 한 노인이 손자를 업고 지나가다 큰 뱀을 보고 깜짝 놀라면서 “ 저런 큰 뱀도 이 세상에 있는가?” 하고 말했다. 그때 업혀 있던 손자가 “ 할머니! 저것은 뱀이 아니고 용이에요” 라고 했다.

뱀을 용으로 불러 준 아이에게 안강호수에 물이 빠진 후 생긴 땅과 그 일대의 논밭을 주고 들의 이름을 아이의 이름을 따라 유금들이라고 불렀다. 현재 강동면의 유금이라는 지명은 여기서 비롯되었다.

형산 산정의 왕룡사라는 절에는 김부 대왕과 김충 태자의 목상을 세워 제향을 하고 그 유덕을 추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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