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2부 부장 이원규

그제 토요일은 중복이며 윤오월의 마지막 날이었다. 어제 일요일은 대서, ‘염소 뿔도 녹는다’는 속담도 있는 그야말로 삼복 절기 중 무더위가 정점을 찍는 날이었다. 음력 6월 보름은 유둣날이다. 올해는 윤오월이 껴서 멀찌감치 말복 무렵인 8월 6일로 밀렸다. 옛날에는 맑은 개울에서 목욕하고 머리도 감으며 하루를 먹고 즐겼다. 쌍칠년도 명가수 김부자 누님이 부른 달 타령에서처럼 ‘유월에 뜨는 저 달은 유두 밀떡 먹는’ 바로 그날이다.

여자가 발목만 노출해도 음탕하게 여겼던 우리네 조상들이다. 아무리 더워도 치마 속에 속속곳, 다리속곳, 단속곳, 속바지 등을 겹겹이 챙겨 입었다. 젊으나 늙으나 어깨, 허리, 허벅지는 물론 배꼽까지 내놓을 줄이야 상상도 못 하셨으리라. 더구나 요즘처럼 목욕탕이 있던 시절도 아니었다. 남자들이야 냇가에서 물장구치며 놀면서 천렵도 했다지만, 여자들은 그것마저도 쉽지 않아 캄캄한 부엌이나 장독대 옆에서 몰래 씻어야 했다. 하지만 유둣날만큼은 노출이 허용됐다. 가족과 친지들과 함께 시냇가로 나갔으니 오늘날의 바캉스와 다름없다.

부산에서 살던 젊은 시절에는 「젊은시」 동인 전국연합회장 직함까지 완장처럼 차고 줄 박박 그으며 시에 빠졌던 적이 있다. 그 당시 함께 시혼을 불태웠던 C 시인은 H 일보에 <연장론>이 당선됐다. 필자도 <이조선비론>, <수박론> 등 ‘론(論)’ 자 제목으로 수십 편의 시를 만들어 응모했었지만, 달랑 한 군데만 다음을 기약한다면서 한 줄도 채 안 되는 심사평이 언급됐다. 고향으로 다시 돌아와서도 <이빨론>, <나사론> 등을 썼으나 반응은 영 신통치 않았다. 연장이 문제인 줄은 그때 첨 알았다. 기왕지사 말이 난 김에 그때의 <수박론>부터 전격 공개한다.

「너의 탄력 있는 가슴팍 두드려도 보고 살살 더듬어도 본다만 느낄 수 없어 예리한 칼날 곧추세워 벌건 속살 도려내 치켜본다 어쩌랴 말라 쪼그라진 노란 꽃잎 속앓이에 타던 욕망 목 잠긴 그대들의 함성 변덕스러운 장마통에 한물갔다만 구름 밀린 틈으로 언뜻언뜻 불어오는 뜨거운 바람 한때는 중한 씨부랄 뎅컹뎅컹 잘라낸 씨 없는 수박도 인기 끌었지 수박씨 삼킨다고 목에 걸릴 리 있나 뱉는다고 욕하더냐 흉잡히겠느냐 칼부림 난다 해도 역시 씨알은 있어야 해 살다 보면 절로 안다 아무 아무개는 아무개 속살에 들어앉아 미끈미끈한 씨알 되는 꿈 꾼다지 힘깨나 쓴다는 그치들 깃발 아래 얼쩡거리는 너는 누구냐 부끄럽고 두렵던 초경 치른 어느 날 씨알이 여물기도 전에 쩌억 빠개져 버리는구나 아삭아삭 생살 씹히는 아픔 눌러 참아야 해 빳빳하게 버티어야 한다 긴장 풀면 그땐 끝장이다.」

이런 말 하면 속 좁은 사람 몇몇은 별별 욕바가지 쏟아내겠지만, 더워 죽겠는데 체면 차릴 여유가 없다. 없을 성싶지만, 뜻밖에도 시원한 곳은 주변에 널려있다. 일반가정에서는 누진세가 부담스러워 엄두도 낼 수 없겠지만, 쇼핑센터, 은행, 병원을 비롯해 시청, 동사무소 민원실과 도서관도 한기를 느낄 정도로 에어컨이 빵빵하게 돌아간다. 그런데, 작년까지만 해도 자유롭게 드나들었던 도청, 도의회 건물은 철저하게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위로 올라갈수록 인심들 참 고약하다. 방문 걸어 잠그고 꼭 일해야 일이 잘되는지, 아니면 뭘 그리 감출 게 많은지 모르겠다. ‘도’라는 말만 나와도 열불 난다. 이참에 수박 열 통 더 빠개 열통 좀 날리겠다.

미국, 한국, 일본인이 식인종 섬에서 붙잡혔다. 식인종은 세 사람에게 과일 열 개씩 따오라고 명령했다. 만약에 울거나 웃으면 당장 잡아먹는다고 했다. 역시 보폭이 큰 미국인이 젤 먼저 사과 10개를 따왔다. 식인종은 그 사과를 항문에 넣으라고 명령했다. 미국인은 원, 투, 쓰리하며 너무 아파 울어 식인종에게 먹혔다. 눈치 빠른 한국인은 딸기 10개를 따왔다. 의기양양해서 한두 개씩 항문에 넣다가 그만 막판에 웃음보가 터졌다. 저승에서 만남 미국인은 왜 웃었느냐고 한국인에게 물었다.

“10개 짼 데 일본놈이 으찌 니…, 수박을 10통이나 따오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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