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또의 키는 5척도 못되는 단구요 애송이로 도무지 볼품이 없어

옛날에는 신임사또가 임명되면 육방관속이 그 본가까지 모시고 왔었다. 어느 시대 서울 사는 가난한 선비가 과거에 급제했고 얼마 후 달성 판관으로 임명된지라 달성의 육방관속은 관례대로 사또를 모시러 갔다. 신임 사또가 인물이 어떠하며 성격은 어떤 사람일까 궁금한마음에 급히 사또 집을 물어 찾아가니 기대와는 딴판으로 사또의 키는 5척도 못되는 단구요 거기다 얼굴까지 빡빡 얽었고 나이도 겨우 스물이 넘을락 말락하는 애송이로 도무지 볼품이 없었다.

육방관속들은 별 것 아니구나 속으로 만만히 보며 함께 내려오는데 문경새재에서 쉬어가게 되었다. 
 
그때 찢어진 갓을 쓰고 남루한 옷차림의 어린 상주가 사또에게 울면서 딱한 사정을 하소연하였다. 

내용인즉 가난한 살림에 홀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는데 갑자기 어머니가 돌아가셔서 장례비용을 마련키 위해 상주의 몸인데도 닭 다섯 마리를 팔러 장에 나왔다. 

평생 물건을 팔러 시장에 나온 것은 처음이라 어떻게 파는지를 몰라 어리둥절해 있으려니 한 장수가 가까이 와 자기가 맡아 있다가 팔아주겠다면서 상주의 닭 다섯 마리를 자기 닭장 속에 집어넣었다. 

한나절을 지나 그 닭 장수에게 맡긴 닭을 달라니 맡은 일조차 없다고 잡아떼 본관사또에 이 사실을 알리고 닭을 찾아 달라했더니 "이놈 네 닭을 내가 어찌 안단 말이야" 고 호통만 칠 뿐 찾아줄 생각을 않는다는 것이다. 얘기를 다 듣고 난 달성판관은 곧 사령을 보내 닭 장사를 잡아오게 했다. 상주에게 자기 닭을 찾아라 하니 여러 마리 중에서 하나 하나 골라낸다.

사또가 먼저 닭 장수에게 물었다. "이놈 저 닭이 정녕 네 놈 것이 이라면 저 닭에게 아침에 뭘 먹였느냐" 닭 장수는 쌀, 보리 등 온갖 것을 주어 섬기며 횡설수설한다. 

상주에게 다시 물으니 아무 것도 먹일만한 것이 없어 집에 있는 수수 한줌을 먹였다는 대답이다. 다섯 마리 중 한 마리를 잡으니 과연 수수가 나왔다. 닭 장수는 꼼짝못하고 백배 사죄한 후 그를 얼러 닭 값을 열배나 물게 하고 문경 본관사또에게 5백냥을 빌어 상주에게 장례비용으로 쓰도록 마련해 주었다. 

교묘히 사건의 곡절을 가려내는 판관의 기질을 본 육방관속들은 혀를 내둘렀고 경멸이 여겼던 것을 뉘우쳤다.

달성판관이 부임한 후 여러 달이 지나도 문경사또에게 빌린 돈 5백냥을 갚지 않자 문경사또가 사람을 보내 돈을 갚으라고 독촉했다. 달성판관은 심부름 온 사람을 불러 "돈을 벌써 갚았는데 네 고을사또가 그렇게 정신이 없으시냐"고 되려 나무란다. 

심부름꾼이 영문을 몰라 의아해하자 사또에게 돌아가 대전통편 몇장 몇조를 보면 알 것이라 이르도록 했다.

대전통편 그 장은 본래 자기 고을에서 일어난 사건을 본관사또가 처리 못했을 때는 사또가 벌금을 5백냥을 물도록 규정한 것이다.
달성판관은 그것을 이용, 5백냥을 빌린다고 받아 불쌍한 상주에게 도움을 베풀고 똑똑치 못한 사또를 그 나름대로 징벌한 것이다.

 한편 최명길은 조선조 인조 때 강화파의 대표적인 정객(政客)으로 자(字)는 자겸(自謙) 호는 지천(遲川)이고 전주인이다. 좌우의정(左右議政)을 거쳐 영의정(領議政)으로 정사원훈 1등공신(精社元勳 一等功臣)에 완성부원군(完成府院君)에 봉해졌다. 최명길이 소시(少時)에 안동부사로 있는 외숙께 문후차 안동으로 갈 때 조령을 통과하였다.

그때 용모가 단정하고 자색이 아리따운 젊은 여인이 뒤를 따라 오면서 "험한 산길이라 여자 혼자 무서워 갈 수 없으니 동행(同行)할 수 없겠습니까?"라고 말을 건넸다. 최명길은 성격이 호방한데다가 젊은 여인이 동행을 원하는지라 쾌히 승낙하고 같이 동행하면서 그 여인의 정체가 궁금하여 마음속에서 살피고 있었다. 
 
앞서가던 여자도 그 눈치를 차렸는지 뒤를 돌아보고 방긋이 웃으며 "공이 저를 의심하는 모양이니 내 정체를 말씀하리이다. 저는 사람이 아니고 새재성황신인데 안동사는 좌수(左首) 모(某)야가 서울갔다오는 길에 성황당 앞을 지나면서 성황당에 걸려 있는 치마를 보고 욕심을 내어 치마를 훔쳐 제 딸년에게 주었으니 이런 고약한 자가 어디 있습니까. 지금 좌수 딸을 죽이러 가는 길인데 우연히 공과 동행하게 되었습니다" 고 말을 하면서 최명길의 눈치를 살핀다. 최명길은 마음속으로 놀랐으나 태연자약하게 "인명은 재천인데 죽일 것까지야 없지 않소" 하면서 용서할 수 없느냐고 말했다. 그 여자는 한참 대답이 없더니 "공은 미구(未久)에 정사공신으로 영의정에 오를 몸이요, 병자호란이 일어나는데 공은 큰공을 세우실 것입니다. 그러나 명나라는 망하고 청나라는 흥할 것이니 부디 청과 화친하여 이 나라 사직(社稷)을 보전하셔야 합니다. 오늘 좌수의 딸을 죽일 것이되 공의 체면을 봐서 징벌(懲罰)을 할 것이니 공은 이렇게 하여 제 체면을 세워 주시오" 하고는 간 곳이 없었다. 최명길은 이상히 여기고 급히 서둘러 안동 모 좌수 집을 찾으니 좌수 딸이 급사(急死)하여 집안이 발끈 뒤집혀 경황이 없었다. 최명길은 주인을 찾아 인사를 나눈 후 "딸을 내가 회생시킬 수 있으니 딸 있는 방으로 안내하시오?"라고 말했다. 주인은 죽은 딸을 살리겠다니 감사히 여겨 최명길을 딸 방으로 인도하였다.

새재서 본 성황신이 좌수의 딸의 목을 누르고 있다가 일어나면서 "이제야 오십니까?" 하고 인사를 한다. 성황신과 최명길의 대화는 다른 사람에게 들리나 성황신이 다른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 문경새재 성황당에서 가져온 치마를 빨리 불사르고 깨끗한 음식을 장만하여 치제하면 딸이 회생할 것이니 염려 마시오"라고 말하자 좌수는 백배사례(百拜謝禮)하고 최명길의 말대로 치성하니 딸이 다시 살아났다. 그 후 과연 최명길은 벼슬이 차츰 올라 영상이 되고 병자호란때 중의를 물리치고 당시 정세를 잘 파악하여 치욕을 참고 화청정책을 채택하여 국난을 수습한 사실은 새재성황신과 관련된 인연이었다는 사화가 구전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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