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이 14일 회사 밖 호텔에서 이사회를 열어 신고리 원전 5·6호기 공사의 일시 중단을 결정했다. 한수원은 전날 경주 본사에서 이사회를 열려고 했으나 노조와 인근 주민들의 반발로 무산됐다. 이사회에는 이관섭 사장 등 이사 13명(상임이사 6명, 비상임이사 7명)이 모두 참석했는데 반대표는 1표였다고 한다. 이례적인 이번 이사회를 놓고 한수원이 정부의 '거수기' 역할을 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이사회에서 의결한 공사 일시 중단 기간은, 영구중단 여부를 논의할 공론화위원회 발족 시점부터 3개월간이다. 정부는 지난달 27일 국무회의에서 신고리 5·6호기 공사를 일시 중단하고 공론화위 논의를 거쳐 영구중단 여부는 시민배심원단에서 결정하기로 했다.

한수원 이사회가 이날 기습적으로 안건을 처리하자 비판이 쏟아졌다. 이 회사 노조는 "국가의 중요 정책을 이렇게 '도둑 이사회'로 결정했다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행위"라며 "의결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과 함께 배임 등 혐의로 이사들에 대한 민·형사상 소송을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상대 주민대책협의회 위원장은 "한수원이 이사회를 회사가 아닌 외부 호텔에서 기습적으로 열고 원전 공사중단을 결정하는 것이 말이 되느냐"며 "독재시대에나 있었던 일이 현재 일어나고 있다"고 성토했다. 자유한국당 등 야 3당도 "절차적 정당성을 무시한 날치기"라고 한목소리로 비판했다. 이에 대해 한수원은 "노조 등의 반발과 각종 소송 우려가 컸지만, 이사회 결정이 지연돼 공론화위 출발이 늦어지면 사회적 논란이 더 커질 것이란 의견이 이사회에서 지배적이었다"며 "불가피한 결정이었다"고 해명했다.

한수원 이사회의 파행적 의결은 어느 정도 예고된 것이다. 정부 결정이 내려진 지난달 말 국무회의에서도 충분한 논의는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정식 보고서 없이 구두 보고만 받았고 토론도 20여 분만에 끝났다고 한다. 그 후 산업부 요청을 받은 한수원이 원전 시공업체들에 "공사 일시 중단에 필요한 조치를 해 달라"고 공문을 보내자 시공업체들이 "공사중단의 법적 근거가 없다"며 반발하기도 했다. 공사 현장의 일용직 근로자들은 임금 보전 대책 등을 요구하며 보름째 농성하고 있다.

새 정부의 탈원전정책은 초기부터 각종 논란에 휘말려 있다. 대체 에너지 확보 및 재원 마련, 전기요금 급등 우려, 원전 분야의 대량 실업 등 해결해야 할 문제가 한둘이 아니다. 대선 공약이라고 너무 서두르면 탈이 날 수밖에 없다. 실행하기 전에 여론을 충분히 듣고, 이해 당사자 간 갈등도 잘 조정해야 한다. 한수원 이사회의 이번 비정상적 의결도 꼭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었는지 의문이다. 공론화 과정을 시작하는 데 필요한 절차였다고 하지만 이렇게 갈등을 증폭시키면 되레 역효과가 커질 수 있다. 특히 호텔 이사회를 열어 안건을 처리한 것은 좋지 않았다고 본다. 과거 권위주의 정권 시절 국민이 공분했던 국회 날치기 통과와 무엇이 다른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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