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회2부 부장 이원규

비가 내리다 그치기를 반복하며 게릴라성 장맛비가 쏟아지더니 오후부터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뚝 그쳤다. 한없이 맑은 하늘, 쨍쨍 햇볕이 무자비하게 아스팔트를 달군다. 바닥으로부터 올라오는 꿉꿉한 습도 탓에 땀도 아닌 것이 등줄기를 타고 내린다. 물 폭탄이 예상돼 새벽부터 출입 통제했던 복개천 표지판이 지금은 녹아내릴 듯 뜨겁게 달구어졌다.

이번에도 빗나간 날씨 예보는 또 정확하게 오보다. 기상 캐스터의 한 몸매가 없었다면 아마 지금쯤 방송국에 ICBM급 이상의 문자 폭탄과 댓글로 사이버 테러로 서버가 마비될 정도로 된통 혼쭐났을 거다. 시쳇말로 예쁘니까 봐주는 거다.

지금처럼 돈벌이할 자리가 많았던 시절도 아니었다. 기껏해야 밭에서 풀을 매는 게 전부였지만, 천만다행으로 근처에 임업시험장에 어머님은 취업이 되셨다. 매일 이른 새벽부터 출근해서 온종일 잡초를 뽑고 해거름에 집으로 오셨으나 아버님 앞에서는 조금도 힘든 내색을 하지 않으셨던 어머니다. 아버님께 들어가는 병원비가 만만치 않았다.

모처럼 형제들이 한자리에 다 모인 날이다. 필자는 비도 그쳤으니 밭에 가서 잡초나 뽑자고 제안을 했다. 그간 날이 가물어서 잡초가 별로 없다며 쉬는 김에 쉬자는 의견도 있었지만, 비 온 뒤로는 하루에도 세 치 이상씩 자란다는 어머니의 근심·걱정이나 풀어주자는 데는 아무도 이의를 달지 않았다. 간단한 먹거리를 챙겨 우리는 둘째가 퇴직금으로 장만한 밭 구경도 할 겸 밭으로 나섰다. 

“깨금도 있네!”

볼일 좀 보겠다며 산속으로 들어갔던 둘째가 두 손에 한 움큼 열매를 따와 우리 앉은자리에 내려놓는다. 어찌 보면 은행과 도토리처럼 생긴 견과류이다. 도토리와 달리 날로 깨물어 먹어도 깨소금 맛처럼 고소해서 깨금이다. 영어로 헤이즐넛은 알아도 우리말로 개암이라면 모르는 이들이 많다. 그 개암이라는 게 다이어트 커피로 즐겨 마시는 헤이즐넛(hazelnut)의 원재료이다. 헤이즐은 우리말로 개암나무다. 어머니의 고향에서는 깨금이란다. 그 개암 깨무는 소리에 도깨비가 놀라 도깨비방망이를 놓고 도망쳐 큰 부자가 되었다는 동화의 열매다. 개암, 깨금 아니면 헤이즐넛이라 불러도 좋다.

그간 국무위원들 임명문제로 너무 많은 힘과 시간을 허비했다. 죽기 살기로 야당이 반대해봐야 할 사람은 되고 아닌 사람은 물러나게 마련이다. 요즘에는 어디가 야당이고 누가 여당인지도 분간이 안 된다. 집권당의 대표가 꼬리가 아닌 ‘머리 자르기’라고 말했다고 해서 또 시끄럽다. 사실 모든 선거판에서야 사돈에 팔촌까지 시시콜콜한 별별 흉측한 얘기들이 떠돌게 마련이다. 그런 걸 잘 알면서 시계를 거꾸로 돌리며 쌈박질이니 한심스럽다. 비싼 세비 줘가며 일 좀 잘 풀라 했더니 딴전들만 피우고 있다. 밥값도 못하며 터진 입으로 말들은 청산유수다. 볼모로 잡아둔 민생문제는 국회 책상 밑에 산더미처럼 쌓였다.  

날씨마저 참 꿉꿉하고 이상야릇하다. 이런 날에는 헤이즐넛, 도깨비 차 한 잔 마시면 머릿속이 상쾌하고 맑아진다. 세상 살아가기 날로 힘들어졌다. 철밥통이라는 선출직 ㅇㅇ의원이나 공무원 신분이 아니라면 하루하루가 외줄 타는 곡예의 연속이다. 하루 한 날 살아가고 살아남는 게 기적이 아니라면 불가능할 정도다. 나날이 살아가는 게 힘들고 일기예보처럼 앞날을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지금 사람들이 겉으로는 웃고 있지만 실제로는 웃는 게 아니다, 요즘 내리는 비처럼 운다. 때로는 통곡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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