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회2부 부장 이원규

길거리를 걷는 사람 중 사장 아닌 사람이 없다. 붐비는 거리에서 “김 사장!”하고 부르면 열에 서너 명은 고개를 뒤로 돌린다 하지 않던가. 좌판을 깔고 길거리에 앉아 있는 과일 장수부터 노래방, 뽑기방 점주도 사장임은 분명하다. 엊그제부터 최저임금 1만 원, 비정규직 철폐를 내세우며 광화문 광장으로 또 사람들이 나섰단다. 무더운 날에 고생들 참 많다.

언제부턴가 웬만하면 은행 빚이라도 얻어 사업장을 차리며 너도나도 사장이 되기를 희망했다. 대기업이 아닌 담에야 안정된 회사를 물려받을 수 없기에 개고생도 마다하지 않으며 악착같이 산다. 세월이 지나 아랫배가 불룩해지면 아랫사람은 개똥에 앉은 파리만도 못하게 여기는 이들도 있다. 이른바 돈독이 올라 사람을 몰라보게 되는 것이다. 잘못 비교하면 문자 폭탄이 쏟아질 일이지만, 무엇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딱한 이들이 부지기수다.

배고픈 파리가 꿀단지에 앉아 꿀을 핥아 먹었다. 파리는 처음에는 꿀단지 언저리를 돌면서 꿀을 먹다가 성에 차지 않아 아예 꿀단지 속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파리의 날개에 묻은 꿀 때문에 꼼짝달싹할 수가 없었다. 위에서 그 광경을 지켜보던 나방 한 마리가 파리에게 핀잔을 주었다. 

“이런 멍청이야! 꿀이 맛있다고 꿀단지로 들어가 먹다니, 넌 이젠 꼼짝없이 죽었다.”

나방이 빈정대도 파리는 할 말이 없었다. 밤이 되자 등불이 하나둘 켜졌다. 나방은 파리가 보란 듯이 등불 주위를 빙글빙글 돌며 춤을 추다가 날개가 불에 닿아 땅으로 떨어졌다. 꿀단지 속에서 이 광경을 지켜보던 파리도 한마디 했다. 

“타 죽는 줄도 모르고 불로 뛰어들다니, 너는 나보다 더 바보구나.”

먹이에 욕심냈던 파리나 현란한 불빛으로 뛰어들었던 나방이나 결국에는 죽었다는 요지의 우화가 떠오른다. 이익과 쾌락에 정신 못 차려 자신을 망치는 경우가 어찌 파리와 나방뿐이랴. 꿀을 빨고 있거나 불로 뛰어드는 건 어찌할 수 없는 팔자소관이다. 그보다도 못한, 참으로 기구하지만 개만도 못한 대접을 받는 K형 같은 사람도 많기 때문이다. 예나 지금이나 의인화된 동물들이 등장하는 이솝 우화는 깊은 교훈을 준다. 딱 여기까지 나가서 마무리하려고 하는데,

K형이 전화에 대고 벼락 치듯 핏대를 올리며 게거품을 문다. 필자는 노예는 부끄럽지만, 노동은 신성하다. 노동이란 좁게는 내 가족이 살고 넓게는 국민이 모두 행복하고 질 높은 삶을 사는 지름길이라며 다독였다. 노동자가 당당한 사회, 노동을 자랑스럽게 하는 사회, 정당한 땀의 대가에 의무를 다하고 권리를 주장하는 공짜가 아닌 그런 사회야말로 우리가 원하고 바라야 할 복지국가라면서 마치 고용노동부 장관이라도 되는 양 K형을 달래면서 위로했다. 

기삿거리가 될 성싶지 않아 뒷전으로 미루고 싶었지만, 사정 얘기를 듣고 보니 딱하기 그지없다. 사연인즉슨 어젯밤에 회사 경비견 한 마리가 실종됐단다. 날이 뜨겁다 보니 개까지 K형에게도 으르렁거리며 성질을 부려 사료를 줄 때도 대빗자루로 밀어줬었단다. 모처럼 비가 내리던 어제 일요일 오후, 갑자기 과장이 회사로 들어와서는 그놈의 목줄을 풀어주더니 일언반구 말도 없이 휙 차를 몰고 나가더란다. 복날도 가까워져 오는데 별별 방정맞은 생각이 다 든다고 했다. 사정이 너무 딱해 다독이며 선배에게 전화를 끊자고 했다. K형! 낼 저녁에 내가 한잔 쏠게요. 날도 푹푹 찌는 개 같은 날의 오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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