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공군 훈련장 50년…전시·생태탐방 진행

"농섬 투어를 통해 학생들이 전쟁이 불러온 비극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했으면 좋겠습니다."

화성시 우정읍 '매향리 스튜디오'에서 바다 위 농섬을 맨눈으로 바라보며 경기창작센터 이기일 입주작가는 이같이 말했다.

매향리 일대와 농섬은 한국전쟁이 한창인 1951년부터 주한 미 공군의 사격장과 폭격장으로 이용됐다.
 
월요일부터 금요일, 아침 9시부터 밤 9시까지 수십 ㎏에서 수백 ㎏에 이르는 포탄 200∼300여개가 미 공군기로부터 땅으로, 바다로 쏟아져 내렸다.

매향리는 주한 미 공군 작전사령부인 오산공군기지에서 출격하면 1∼2분 안에 도달할 수 있고, 높은 산이 없으며, 바닷바람으로 안개 끼는 날이 적어 연중 훈련이 가능했다. 연습장 주변에 민가가 있어 실전과 가장 가까운 최적의 연습 장소였다.

엄마 젖을 먹던 아기도 전투기 소리만 들리면 부르르 떨었다. 고막이 찢어지는 듯한 소음 스트레스와 오폭으로 주민들의 고통은 더해갔다.

주민 증언에 의하면 6·25 전쟁 때 북에서 건너온 피난민들이 단체로 매향리에 터를 잡은 이유는 마을 앞 광활하게 펼쳐진 갯벌과 황금어장인 바다 때문이었다.

그러나 50여 년간 전투기 소리가 그치지 않으면서 이들의 주된 생계인 갯벌과 바다, 논밭은 황폐해졌다.

사격장과 폭격장은 피해를 호소하는 주민들의 투쟁 끝에 2005년 8월 폐쇄됐다.

주민들이 미군 전투기 굉음을 멈춰달라고 찾아가 기도하던 옛 매향교회는 지난해 12월 문화예술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매향리 스튜디오로 바뀌었다.

이기일 작가는 스튜디오의 총괄 운영을 맡고 있다.

지난 2월 미 공군 폭격 연습장이었던 매향리의 아픈 역사를 주제로 삼은 첫 전시 '1951-2005 겨울'을 진행한 그는 이번에 학생들과 농섬을 방문할 계획이다.

마치 작은 언덕처럼 보이는 농섬은 바닷물이 빠지고 갯벌이 드러나면 걸어갈 수 있을 정도로 매향리 마을과 맞닿아있다.

국내는 물론 일본 오키나와와 미국 괌에서 출격한 미군 전투기의 폭격 연습장소였던 이 섬은 날마다 이어진 폭격으로 크기가 3분의 1로 줄어든 것으로 전해진다.

반세기 동안 전투기 소음과 포탄 투하 폭발음이 끊이지 않았던 매향리에 고요함이 일상이 된 지도 올해로 12년째.

폭격이 중단되자 농섬에서 자취를 감췄던 물새 떼가 다시 찾아오기 시작했다.

섬의 변화를 감지한 이기일 작가는 생태치유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여름 방학을 맞은 초·중등학생을 대상으로 정화 활동에 나서기로 한 것이다.

바닷길이 열리면 학생들은 트랙터를 타고 섬으로 들어가 주민으로 구성된 마을해설사의 설명을 들으며 매향리의 역사를 배운다. 그리고서 섬 이곳저곳 녹슨 채 땅에 박혀있는 포탄들을 수거한다.

이들은 갯벌에서 가져온 진흙과 포탄을 이용해 각자 만의 농섬을 만든 뒤 스튜디오에 전시할 예정이다.

이 작가는 25일 "전쟁을 직접 겪어보지 않은 아이들이 포탄 파편을 수거하고, 이를 이용한 창작 활동을 하면서 평화의 소중함을 느꼈으면 한다"고 말했다.

1968년 건립된 옛 매향교회는 바로 옆에 새 예배당이 세워진 1984년부터는 거의 활용되지 않다가 1990년대부터 완전히 방치돼 흉물로 변했다.

경기창작센터 경기만 에코뮤지엄 사업의 일환인 스튜디오 리모델링은 외관과 내부 벽면은 최대한 유지하되 천장과 바닥 등을 보수하는 식으로 진행됐다.

앞으로 5년간 매향리 스튜디오에서 다양한 프로젝트를 운영할 예정이라는 이 작가는 이곳을 떠날 때쯤이면 스튜디오가 마을 주민들을 위한 공간이 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는 "주민들은 매향리를 떠나고 싶어도 헐값이 된 집과 논밭 탓에 떠나지도 못하고 오랜 세월을 참고 견디며 살아왔다"라며 "스튜디오에서 진행하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주민들이 매향리를 자랑스럽게 여길 수 있으면 좋겠고, 이들이 지속적인 수익을 창출할 수 있도록 여러 방안을 구상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작가는 마을에 주둔했던 미 공군 측으로부터 당시 군인들이 입었던 군복과 부대마크, 사진 등 당시 자료를 넘겨받아 조만간 전시를 열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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