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회 2부/부장 이원규

양력으로 인쇄된 달력에서 1년 열두 달은 2월을 예외로 하고 1달이 30일과 31일로 365일로 셈한다. 그러나 음력은 약 29.53059일이 한 달이다. 다시 말하면 29일과 30일이 반복된 12개가 모여 1년이 된다. 그 날 수가 354.3671일로, 지구가 태양을 한 번 도는 365.2422일보다 약 11일이 짧다. 그래서 3년이 지나면 이 날짜가 쌓여서 약 33일, 즉 한 달 정도의 차이가 난다. 우리 조상들은 세시풍속과 계절별로 절기를 믿었다. 그것을 맞춰주기 3년에 한 차례 또는 5년에 두 차례는 1년이 열세 달인 윤달을 두었다.

달력은 옛날부터 해와 달의 움직임을 보고 만들었다. 음은 달이고, 양은 해이다. 우주의 행성 중에 가장 크게 보이고 자주 접하는 해와 달은 옛 조상들이 보기에도 자연법칙에 의해 가장 정확하게 움직이는 것으로 믿었다. 한 해인 연(年)은 지구가 태양 주위를 한 바퀴 완전히 도는 데 걸리는 시간이고, 월(月)은 그믐과 다음 그믐 사이, 일(日)은 해가 떴다가 다음 질 때까지를 기준으로 삼았다. 하지만 그 시간이 정밀한 기계처럼 딱 맞아 떨어지지 않는다. 달력은 실제로는 양력과 음력을 동시에 고려한 ‘태음태양력이다. 언제부턴가 달력에서 날짜를 인쇄할 때 밑에 작게 인쇄된 게 음력이다.

조상을 끔찍하게 모시던 옛날에는 제사는 선산에 있는 묘지를 가꾸는 일도 큰 미덕으로 여겼다. 또한 지금처럼 과학적 실험과 수치에 의한 세상살이를 하지 않았던 시절에는 경험과 심리 상태에 따라 하늘을 믿었다. 옛 조상들은 께름칙한 일은 윤달로 미루는 예가 많았다. 윤달에는 이장과 개장 보수, 화장은 물론 무병장수한다 해서 주검에 입히는 수의(壽衣)를 미리 짓고자 하는 사람들로 장의 업계는 호황이다. 하지만 결혼이나 출산은 꺼렸는데 이는 잘못 알려진 속설 때문이다.

옛날에는 사람이 죽어 땅속에 묻히면 혼(魂)은 하늘로 올라간다고 믿었다. 대부분 귀신은 밝은 것보다는 어둠을, 강한 것이 아닌 약한 것에 달라붙는다고 한다. 그런 귀신이 곡할 만한 사건들이 계속 터지는 속에서 우리는 귀신보다도 모질게 산다. 윤달에는 ‘하늘과 땅의 신이 사람들에 대한 감시를 쉬는 때로 불경스러운 짓을 해도 신의 벌도 피할 수 있다’고 믿었다. 11월에는 윤달이 거의 안 들어 하기 싫은 일이나 빚 갚는 일을 ‘윤동짓달 초하룻날 하겠다’라는 식으로 미뤘다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내가 어릴 적에는 집의 형태가 지금처럼 고층이 아닌 단층 아니면 2층 정도에 불과했었다. 발뒤꿈치만 들면 보이는 얕은 담장 너머로 서로의 안녕을 묻고 인심이 오가기도 했다. 설령 담장이 없어도 말뚝만 박아놔도 경계가 확실해 귀신이 아닌 담에는 넘나들지도 않았다. 너와 내가 아닌 제삼자는 다름 아닌 귀신에게 미뤘다. 집안일이 잘되기를 바라거나 잘못됐을 때는 할머니와 어머님은 물 한 그릇을 떠놓고 손바닥을 싹싹 비비며 치성을 드렸다. 벽에 못 하나를 박거나 이사할 때도 손 없는 날을 가렸고, 동티가 난다며 함부로 아무 데나 드나들지도 않았다. 요즘처럼 철근콘크리트의 빌딩이나 아파트 세상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행위였다.

지난 주말 6월 24일부터 내달 22일까지 29일 동안은 음력 5월이 한 번 더 있는 윤달이다. 내년 2018년에는 윤달이 없고, 2020년에는 4월에 윤달이 든다. 빠른 세월이 야속한 사람들에게 1달을 덤으로 주는 윤달이라서 그런지 이름도 많다. 공달, 덤 달, 여벌 달, 남은 달, 군 달, 남의 달, 가외 달, 공짜 달, 그저 달, 남은 달, 없는 달, 해가 없는 달, 우외 달, 보태진 달, 썩은 달 등 귀신도 모를 달이다. 돈이라면 최고로 여기는 시쳇말로 바꾼다면 보너스 달인 셈이다. 어차피 지난 한 달간의 세상은 생지옥이나 다름없었다. 하늘에서는 비도 감질나게 내렸다. 기왕지사 복더위에 귀신도 모르는 한 달을 덤으로 얻었다. 천둥·번개가 내리쳐도 괜찮으니 제발 비 좀 죽죽 내려주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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