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깎이 미술학도 이끌어 준 당신은 '참스승'

▲ 권영걸 계원예대 총장(좌측)과 권금옥씨(우측).

"선생님이라는 단어만 접해도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일러스트 작가 권금옥(59·여) 씨는 1985년 만 27세의 나이로 가슴 속에 품고 있던 대학 입학의 꿈을 이뤘다.

고등학교 졸업 8년 만이었다. 권 씨는 어려운 가정형편 탓에 일찌감치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상업고등학교로 진학, 졸업 후 곧바로 취업한 터였다.

직장 일에 매진하던 권 씨는 그러나 "대학에 보내지 못해 미안하다"는 아버지의 유언이 머릿속에 맴돌아 고민 끝에 동덕여대 산업디자인학과(야간)에 입학했다.

권 씨는 "서울대병원에서 비서로 일하다 레지던트 사이에 오가는 '전공'이란 말을 듣고 공부하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다"며 "특히 대학에 보내지 못해 미안하다는 아버지의 말씀이 가슴 한 쪽에 자리 잡고 있던 터라 평소 원했던 미술을 하기로 마음먹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막상 대학에 입학했으나, 직장과 학업을 병행하기란 만만치 않았다.

더욱이 학과가 야간에서 주간으로 바뀌기까지 했다. 학생 45명 중 직장을 다니는 사람이라곤 권 씨가 유일했기 때문이다.

직장이냐 학업이냐를 놓고 갈림길에 선 권 씨는 직장을 관둘 수 없어 행정실을 찾아가 통사정해 봤으나 아무도 귀담아 듣지 않았다.

결국 자퇴를 결심한 권 씨는 자퇴 서류에 도장을 받기 위해 당시 학과장이던 권영걸 교수(66·현 계원예대 총장)를 찾아갔다.

놀란 권 교수는 사정을 듣고 나서 "내가 어떻게 도와주면 학업을 포기하지 않겠느냐"고 되물으며 도움을 자청하고 나섰다.

권 교수는 각 교수를 직접 만나거나 전화를 해 사정을 이야기하고, 권 씨가 일부 수업에 참여하지 못해도 과제 검사를 받는 식으로 수강을 대체할 수 있도록 도왔다.

권 교수의 이런 노력에 권 씨는 학업을 이어갈 수 있었다.

전공을 선택하는 3학년이 돼서는 고민 끝에 직장을 관두고 본격적으로 일러스트 공부에 열중했다.

그 결과 각종 공모전에서 입상하고, 일본에서 출간되는 일러스트 잡지에 작품을 싣는 영광도 안았다.

이후 권씨의 삶은 크게 달라졌다. 프리랜서 일러스트 작가로 활동하며 입지를 굳건히 다졌다.

기업으로부터 제품을 의뢰 받아 일러스트 등 다양한 기법으로 꾸미고 다듬어 인터넷을 통해 소개하면서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 

권 씨의 사연은 대한적십자사가 지난 4월 공모한 '선생님께 쓰는 편지 공모전'을 통해 알려졌다.

그는 권 총장에게 마음을 담아 쓴 편지로 공모작 737편 중 대상인 교육부장관상을 받았다.

대한적십자사는 21일 의왕시 계원예대에서 권 씨와 권 총장이 만날 수 있도록 자리를 만들고, 제주도 여행권 등 소정의 상품을 전달했다.

권 씨는 "선생님 덕분에 인생의 길이 바뀌었다"며 "언제나 생각해도 가슴 먹먹하고 감사할 뿐"이라고 말했다.

권 총장은 "제자의 재능을 살릴 수 있도록 조언과 도움을 주고자 했다. 학생 다수에 맞추는 정책을 취하는 것은 교육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지금 이 순간 큰 보람을 느낀다. 앞으로도 학생 하나하나를 돌보겠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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