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소는 암소와 더불어 따뜻한 아낙네의 손길에 감명

옛날, 북쪽의 차가운 지방에 한 마리의 황소가 있었다. 황소는 힘이 센데다가 또한 부지런하기까지 하여 주인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 

봄 부터 가을에 이르기까지 주인이 이끄는 대로 온 힘을 다하여 땅을 갈고 짐을 나르면서 땀을 흘려댔다. 

그러나 이렇게 부지런하고 힘센 황소의 주인은 욕심꾸러기에다 인색하기 짝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황소가 부지런히 땀을 흘리면서 일을 하는데도 먹을것을 제대로 주지 아니하였다. 일한 만큼 먹을 것을 주는 것이 아니라 일에 부지런하면, 먹을 것보다도 일을 더욱 시켰다. 

어느 날 마침내 황소는 주인으로부터 탈출하기로 결심을 하였다. 이러한 주인과 더불어 몇 년을 살다가는 몸이 약해질 뿐만 아니라 결국 목숨마저 부지하기가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그래서 싸늘한 바람이 외양간으로 휩쓸려 몰아칠 때 황소는 마지막 힘을 다하여 매여있던 고삐를 끊어 버렸다. 

그리고 두려운 마음으로 외양간을 벗어나 남쪽으로 방향을 잡고는 곧 달리기 시작하였다. 남쪽의 따뜻한 나라가 몹시도 그리워졌다. 등뒤에서 몰아쳐오는 차가운 바람이 그칠 때까지 황소는 달리고 또 달렸다. 남쪽으로 달려온 황소는 이윽고 정신을 가다듬어 깊은 숨을 들이쉬고는 한 산으로 올라갔다. 산꼭대기에 올라갔다. 그리고 온누리를 휘―둘러보았다. 그러다가 황소는 깜짝 놀랐다.

북쪽 나라에서 보지 못한 넓고 넓은 바다가 끝없이 펼쳐져 있는가 하면 너른 들녘이나 산기슭, 그리고 맑은 물이 흘러내리는 시내의 둑에 새파란 풀이 무럭무럭 자라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산과 들에서는 자라나는 풀만 뜯어먹어도 사시사철 편안히 먹고 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황소는 곧 푸른 바다가 훤히 내려다 보이는 산기슭에 자리를 잡고, 북쪽 나라에서 먹을 것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일에 쫓기던 지난날을 생각하면서 앞으로의 행복하게 살 날을 그려보았다. 산 아래로 보이는 마을이 북쪽 나라보다 훨씬 더컸고, 그만큼 오가는 사람들도 많았다.

 모든 것이 만족스럽고 풍족스럽게만 보였다. 몹시 기뻤다. 하루하루 산과 들을 여유있게 돌아다니면서 우거진 풀잎들을 뜯어먹었다. 

그러나 따뜻한 남쪽 나라에도 눈이 오고 바람이 불고 비가 내렸다.

다음날 아침 비가 그치고 맑은 햇살이 산과 들에 쏟아질 때 황소는 어슬렁 어슬렁 외양간을 빠져나왔다. 막 외양간으로 나오던 암소의 주인이 자기를 가리키면서 누구네 황소인지 모르겠다고 큰 소리를 질러댔지만 황소는 못들은 척 둑길로 들어서 논가운데로 내려갔다. 

며칠후, 유난히 햇살이 맑고 날씨가 화창했던 어느 날, 황소는 아낙네가 휘두르는 고삐에 매달려 열심히 일을 하고 있는 암소를 발견하고는 슬금슬금 다가섰다. 

그러다가 황소는 깜짝 놀랐다. 가까이 다가가서 자세히 살펴보니 암소가 콧물을 질질 흘리면서 눈물을 찔금거리는 채 콧물을 떨어뜨리고 있었다. 분명 앓고 있음이었다. 

그래서 황소는 아낙네에게로 다가가서 자기에게 일을 시키고 어서 암소를 풀어 달라고 몇 번이고 크게 울었다. 그러나 아낙네는 황소에게 채찍을 휘두를 뿐 한나절이 다 지나도록 계속 일을 시켰다. 안타까운 마음에 황소는 하늘을 우러러 크게 울었다. 

해가 중천에 이르러서야 아낙네는 휘두르던 고삐를 비로소 내려 놓았다.

 그리고 나무 그늘에 앉아 미리 준비한 밥그릇 뚜껑을 힘차게 열어 제꼈다. 

그러나 지금까지 일에 지쳐있던 암소는 허둥거리며 논에서 기어나오더니 털썩 둑길에 주저앉아 힘없이 풀을 뜯었다. 기운을 모두 탕진한 탓일까? 암소는 풀을 뜯다가도 이따금 심한 호흡을 해댔다. 황소는 이러다가는 암소가 쓰러져 죽을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곧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암소에게 다가간 황소는 다짜고짜 앉아있는 암소를 커다란 두 뿔로 받았다. 암소는 갑작스러움에 벌떡 일어섰다. 그리고 황소의 뿔을 피해 달아났다. 그러자 황소가 뒤따랐다. 쫓기고 쫓기를 여러번. 결국 두 마리의 소는 숲속으로 사라졌다.그리고 사흘 후에는 마치 부부나 되는 것처럼 암소와 황소가 어슬렁어슬렁 마을로 들어섰다. 그리고 나란히 아낙네의 집으로 들어갔다. 조용히 새벽을 맞고 마침내 등불을 켠 채 나온 암소의 주인 아낙네의 손에 의하여 황소와 암소는 고삐를 받았다. 

암소의 주인인 아낙네는 황소가 보았던 것처럼 그렇게 일만 시키는 사람은 아니었다. 마음씨가 아주 고운 사람이었다. 그리고 일한 만큼의 넉넉한 댓가를 치뤄주는 사람이었다. 열심히 일하면 일한 만큼 맛있는 먹이를 준비하였다 주고, 또 그만큼 쉬는 시간도 주었다. 

그래서 암소와 황소는 한 마음이 되어 열심히 일을 하여 아낙네를 기쁘게 하였다.

추운 겨울에도 황소는 암소와 더불어 따뜻한 아낙네의 손길 속에서 지냈다. 항상 즐거움이요, 기쁨만이 외양간에 가득했다. 외양간의 생활이 그렇게 재미있을 수 없었다. 겨울이 지나고 다시 봄이 돌아와서는 앞뒤산이 온통 붉게 물들었다. 정말 신나게 일을 하면서 신나게 즐길 수 있는 봄이었다. 

그러나 전혀 뜻밖의 일이 일어났다. 하루는 새벽이 되어도 구유에 먹을 것이 주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황소는 크게 울었다. 그러나 전혀 인기척이 없었다. 

황소는 다시 크게 울었다. 암소도 따라서 크게 울었다. 여전히 아무 대답이 없었다. 황소는 힘을 주어 고삐를 끊었다. 

그리고 안마당으로 들어갔다. 안마당에서도 크게 울었다. 여전히 아무런 인기척 없었다. 황소는 마루에 발을 기대고 방문을 당겼다. 방문이 스르르 열렸다. 

그러나 다음 순간 황소는 뒤따라온 암소와 더불어 목구멍이 터지도록 크게 울었다. 아낙네는 이미 두 눈을 뜬 채 죽어 있었던 것이다. 

암소와 황소의 처절한 울음소리에 몰려온 마을 사람들도 아낙네의 죽음을 확인했다. 

그리고 곧 아낙네의 시체를 거두어 정중하게 장례를 치뤘다. 그리고 또, 마을 사람들은 장례를 치른 다음의 뒤처리에 대한 의견을 나누기 시작했다. 

그러나 마을 사람들의 의논의 이야기는 황소와 암소는 너무나 놀랐다.

모두 끌어내어 다음날 장에 나가 팔아버리자는 것이었다. 그 소리를 들은 황소와 암소는 큰 소리로 울면서 산속으로 사라졌다.

그 뒤로부터 마을 사람들은 아낙네의 무덤이 있는 곳으로부터 저녁마다 처절하게 울어대는 두 마리의 소울음소리를 들어야 했다. 그리고 일년이 못된 겨울날 눈이 펑펑 쏟아져 쌓인 아낙네의 무덤에 죽은 암소와 황소의 모습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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