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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여울-멍수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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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7.06.15 1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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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삼국 통일전쟁 과정에 있었던 나주포구 진격전은 국경 확장 활동인 동시에 후백제의 견훤과 태봉의 왕건이 전라도 일대의 곡창지대를 선점하기 위한 전투이기도 하다.

왕건과 견훤은 영산강 일대에서 격돌하였는데, 전투 초기에는 이 지역에 기반을 두고 있던 견훤의 전세가 훨씬 유리하였다. 

왕건은 군사들의 사상(死傷) 정도가 심하여 타격이 컸을 뿐만 아니라 군사 지휘력이 뛰어난 견훤에게 포위를 당하기도 하는 등 전세가 매우 불리하였다.

겨우 위기를 벗어난 왕건은 부상자를 치료하는 등 전열을 정비하였다. 전열을 정비하고 겨우 잠이 든 왕건은 한 신인(神人)이 나타나는 꿈을 꾸게 된다. 

그 신인은 “너는 이렇게 중요한 순간에 왜 잠만 자는가? 지금 바로 강으로 나가 보아라. 강의 수심이 얕아져 있다. 지금 강을 건너 후백제를 치도록 하여라. 그러면 네가 이길 것이다” 라고 말하고 나서 홀연히 사라졌다.

꿈에서 깬 왕건은 부장들을 깨워 꿈의 일을 알리고 야간침투계획을 세운 뒤 전군을 소집하였다. 전열이 정비되자 야간침투를 감행하였는데, 과연 꿈 속의 신인이 일러 준 대로 강의 수심이 얕아져 있어 적진으로 침투하기가 한결 수월하였다.

한편 낮의 전투에서 우위를 차지한 견훤의 부대는 날이 밝으면 왕건의 부대를 확실하게 물리치리라 생각하며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왕건은 적군이 방심한 틈을 타서 재빠르게 기습공격을 하도록 명령을 내렸다. 

이내 후백제의 군진에서는 붉은 피가 튀기고 찢기는 듯한 비명이 메아리쳤고, 칠흑의 야밤에 벌어진 왕건의 기습에 후백제 군대는 완전히 괴멸되었다. 야간 작전을 성공리에 수행한 왕건은 꿈에 나타나서 예언한 신인을 기려 그 지역을 ‘꿈여울’이라고 명명했다고 한다.

이 전설에서 신인은 이 지역의 주민 혹은 호족을 의미한다고 한다. 

이 지역은 견훤 아래에 있었지만 왕건의 후덕한 품성과 화합 정책으로 무안 지역의 호족과 주민들의 마음을 포섭하였고, 그들의 적극적인 지원과 협조를 통해서 전투에 승리할 수 있었다고 파악된다.

왕건이 덕과 포용심으로 지역 주민의 협력을 이끌어내어 전투에서 승리했음을 암시하고 있는 설화이다. 태봉은 이 전투와 나주포구진격전의 승리로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된다. 즉 이 지역의 호족과 지역민들이 왕건의 편으로 돌아섰기 때문에, 견훤의 세력이 크게 압박받는 가운데 태봉은 전국 영토의 대부분을 차지하게 되었다.

한편 일로읍 구정리 소대이는 영산강이 흐르고 있는 옛날 포구로서 영암군과 무안군의 경계지점인 강 한가운데에 바위하나가 먼 하늘을 바라보는 듯 외롭게 서있는데 이 바위를 멍수바위라고 부른다.

옛날 이 마을에 땅 한평없는 가난한 과부가 살고 있었는데. 과부에게는 애지중지하는 외아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아들은 마음은 착하였으나 태어날 때부터 미련하고 바보스러워 어려서부터 마을 사람들은 멍수라고 놀렸으며 멍수는 그의 이름이 되고 말았죠.

멍수 어머니는 벌어먹을 땅이 없기 때문에 항상 영산강에 나가 갯바라지하여 생계를 유지하였는데. 멍수 어머니가 굴을 따는 곳은 주로 영산강 가운데 섬처럼 솟아 있는 바위였다. 그러나 그 바위가 영산강 한가운데 있기 때문에 물이 들면 굴을 딸 수 없어 물이 빠지기를 기다렸다가 그 아들 멍수가 노를 저어 어머니를 모셔다 드리고 물이 들 때쯤이면 모셔 나오곤 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멍수는 여느 때와 같이 어머니를 바위까지 모셔다 드리고 집에 돌아와 보니 마을에 큰 잔치를 벌이고 있었다. 멍수는 잔치집에 불려가 잔일을 거들어 주고 술과 음식을 얻어 먹었다.

 오랜만에 먹어보는 산해진미인지라 맘껏 먹어 포만감에 온몸이 나른하고 취기가 올라 정신이 몽롱했죠. 몇 시간이 흐른 뒤 번득 어머니를 모셔와야 된다는 생각이 들어 비틀거리며 강가에까지 왔으나 그만 배에서 잠이 들고 말았다.

한편 굴을 따던 어머니는 아들 명수가 오기만을 애타게 기다리며 아들 이름을 목이 터져라 불렀다. 어둠이 깃들자 점점 밀물이 들기 시작했고. 어머님의 발을 덮던 밀물은 정강이에 차더니 점점 위로 올라왔다. 

바구니에 따담았던 굴바구니도 물결에 휩쓸려 떠내려 갔구요. 어머니는 피가 맺히도록 멍수 이름을 불러댔지만 끝내 멍수는 나타나지않고 어머니는 밀물에 휩쓸려 목숨을 잃고 말았다. 

뒤늦게 술에서 깬 멍수는 있는 힘을 다해 노를 저었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어머니가 굴을 따던 바위는 밀물에 잠기고 물새 한 마리가 섧게 섧게 울며 지나갔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것을 알고 대성통곡을 하였지만 한번가신 어머니는 영영돌아오지 않았고. 멍수는 마을 사람들의 도움으로 시신을 찾아 장사를 지냈으나 어머니가 살아있어 금방이라도 바위 위에서 멍수를 향해 손을 흔들며 부르는 것 같았다.

 멍수는 끼니도 거르면서 날마다 강가에 나와 바위를 바라보며 목이 터져라 어머니를 불렀다. 마을 사람들은 다 쓸데없는 짓이니 집으로 가서 어머니의 명복이나 빌도록 충고했으나 멍수는 바람이 부나 비가 오나 변함없이 어머니를 부르다가 결국에는 목에서 붉은 피를 쏟더니 한많은 세상을 하직하고 말았다.

이때부터 마을 사람들은 이 바위를 멍수바위라 불렀으며 지금도 변함없이 머리를 물위에 내놓고 이곳을 왕래하는 뱃길손의 등대역할을 하고 있으며, 바람이 심하게 부는 날이나 비가 오는 날이면 어머니와 멍수의 애틋한 외침이 여운되어 들려온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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