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산시문학회 사무국장 박민순

경기도의 남부 오산시에는 6·25 동란 시 치열한 전투를 벌였던 장소가 있다. 일명 죽미(竹美)고개에는 가신님들의 영혼을 달래주듯, 산새들의 울음이 그치지 않는다.

‘북괴의 이리떼 38선을 넘으니 자유 수호 위해 유엔은 일어나다. 폭력엔 폭력을 다짐하고 급히 달려온 스미드 특수 임무 부대 앞장서 죽미고개에 서고 한국군 제17연대 이에 따르니 
한미 연합작전의 서막은 열리다. 혈전 6시간 15분 피바다 이루고 화선은 낙동강으로 이어지네. 한 품은 고혼 이곳에 잠드니 혈맹의 우리 어찌 잊으랴.’

북괴군이 남한에 선제공격을 가하면서 6.25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당시 일본 오키나와에 주둔하던 유엔군 제24사단(사단장 : 딘 소장) 보병 제21연대 제1대대(대대장 : 스미드 중령)는 딘 소장의 지시로 ‘이쯔라기’비행장을 출발, 7월 2일 부산비행장에 도착했다. 7월 3일 대전에 도착, 오산 부근에 주둔 지시를 받은 스미드 부대는 야간열차로 북진, 평택과 안성에 1개 중대씩을 배치하고 평택 성동국교에 부대본부를 설치했다.

한편, 북괴군은 7월 3일부터 한강철교 수리를 마치고 계속 남하하기 시작했다. 이때 스미드 부대 장병은 7월 5일 오산 죽미고개에 포진, 전투태세를 갖추고 수원을 점령한 후 전차 33대를 앞세운 북괴군 제4사단 제5연대와 첫 전투를 벌였다. 이날 피비린내 나는 격렬한 전투에서 유엔군은 적 사살 1백 27명과 전차 6대를 파괴하는 전과를 올렸다. 그러나 북괴군의 남하 속도를 6시간여 동안 지연시켰지만, 북괴군의 집중적인 공격을 견디지 못한 유엔군은 미군 참전 병사 중 보병 1백 50여 명이 전사하고 포병 31명이 전사하거나 실종, 많은 중화기를 잃고 후퇴하게 되었다.

유엔군 초전지 오산 죽미고개에는 1955. 7. 5일 화성군(당시는 화성군 오산읍이었음) 관내 유지와 미 제24사단 장병들에 의하여 유엔군 초전 기념비(세교동 산10번지)가 세워졌지만, 탑신이 작고 주차장도 없고 협소하여 1981년 전적지 개발계획에 의거 1982년 4월 6일 길 건너 맞은편에 5천 평 규모의 신 전적비(내삼미동 산70-6번지)를 세웠다.

2013년 4월 23일엔 유엔군과 북괴군 간의 초전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고 국가 안보 교육의 장이 될 수 있는 유엔군 초전 기념관(오산시 경기대로 742, 외삼미동 640)이 개관하여 관람객의 발길이 계속 이어진다. 

해마다 첫 전투가 벌어진 7월 5일을 기념하여 오산문화원과 한미연합사 주관으로 지역유지 및 국내외 관계자들이 모여 추도식을 열고 있다. 많은 사람이 초전 기념비에 한 송이 꽃을 바치고 묵념을 하며, 기념관을 둘러보며 피 흘린 그날의 역사를 더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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