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밖으로 나도는 직업 탓에 소소한 집안일은 뒷전으로 미루고 관심 밖에 두었다. 지난번 한식 때에도 아버님 산소에 가자는 말은 필자가 먼저 꺼내놓고 또 미뤘다. 여름 휴가철쯤 벌초할 때는 꼭 가겠다고 호언장담했지만, 그것도 그때 가봐야 안다. 서로 다른 직장과 직업이라서 형제들이 한자리에 모이기란 여간해서는 쉽지가 않다. 필자가 시간이 나면 막내가 사정이 생기고, 둘째가 시간이 될 때는 필자나 막내 중 하나가 꼭 일이 생긴다. 정말 쪽팔리는 얘기지만, 어차피 둘째를 중심으로 집안의 대소사가 진행된 지 오래되었다. 필자는 장남이지만 마치 객처럼 참여한다.

한때는 예술에 또 정치한답시고 집안일은 아예 돌보지 않고 허송세월했다. 집안이 풍비박산 난 건 당연하다. 그러나 10여 년의 방황도 단칼에 정리됐다.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어도 나를 믿고 따르겠다는 착한 맘씨, 내 어머니를 쏙 빼닮은 여인 때문이다. 내게 이런 날이 오리라는 건 꿈에도 몰랐다. 둘째는 바깥으로만 겉도는 내게 투정하듯 빈정거린다. 그런 소리야 한두 번 듣는 게 아니라서 이미 귓속은 굳은살이 두툼하게 박힌 지 오래됐다.

“큰형은 걱정이 남북통일밖에 없었잖아.”

남들 일에는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지만, 집안일은 단 한 번도 먼저 나서서 챙긴 적이 없다. 욕을 먹어도 션찮은 판에 어머님은 필자의 역성을 들어주시는 영원한 우군이다. 필자가 크게 잘못을 저질러도 운때가 나빠서…, 분명히 잘못해서 사고를 쳤음에도 운수가 사나워서…, 흥청망청하다가 사업이 쫄딱 망했을 때도 경제가 안 좋아서 라면서 한 번도 필자의 기를 꺾으신 적이 없다. 내세울 것도 잘난 것이 없어도, 끝까지 필자 편에 서주시는 내 어머니!

성질 급한 아버님을 먼저 보내셨어도 단 한 번도 힘든 내색 하지 않으시던 그야말로 대찬 내 어머니시다. 그렇게 손발이 다 닳도록 기대했던 자식 농사에서 필자만 빼고 나머지는 나름대로 형편이 잘들 풀렸다. 엊그제 짬을 내 어머님을 찾아뵈었다. 일손을 놓으신 지가 오래돼 피부도 고와지셨고 특히, 거칠었던 손이 뽀얘져 신기했다. 죄송한 마음에 어머님 손을 잡아보니 한 줌도 안 되는 조그마한 손이었다. 둘째의 딸인 조카가 정성스럽게 매니큐어를 발라도 어찌할 수 없는 모양이다. 닳고 문드러져 흔적만 조금 달라붙은 손톱이 안쓰럽다.

어마어마하게 크게만 보였던 어머님도 이제는 늙고 쇠약해져 자꾸만 작아지신다. 호랑이도 맨손으로 때려눕힐 기세로 악바리처럼 이곳저곳에서 품 팔며 사 남매를 키워내신 내 어머니의 굽은 허리를 보니 마음이 울컥해진다. 어릴 적 잘못할 때마다 들었던 어머님의 회초리가 전에는 아팠는데, 지금은 아프지 않아 어머니의 힘이 모자란 것 같아 울었다는 백유지효(伯兪之孝) 고사가 딱 내 처지와 같다. 저녁 9시 뉴스를 뚫어지게 보시던 어머니께서 필자에게 이르신다.

“원기야! 굶더라도 저렇게 빌어먹진 말아라.”

글쟁이면 글로 영화나 연극이면 연기로 가수는 노래로 승부를 걸면 된다. 쉽게 가려고 정치권에 기대서야 무슨 대단한 예술작품이 나오겠는가. 그동안 누릴 만큼 누렸던 사람들이다. 더 어려운 환경에서 창작하는 진솔한 작가들도 부지기수다. 기다렸다는 듯 대세가 한쪽으로 기울자 너도나도 지지하겠다며 장사치처럼 예술인들까지 줄줄이 정치권으로 줄을 댄다. 그럴싸한 성명서까지 낭독하며 마치 자신들만이 우국지사라도 되는 양 꼴값한다. 빌어먹을! 볼수록 쪽팔려 칼럼도 이젠 못 써먹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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