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5월 1일은 메이데이(May-day), 노동절이다. 고교 시절 우스갯말로 ‘공장 가서 미싱할래, 대학 가서 미팅할래?’라는 말이 유행했었다. 대학에 진학하지 못하면 공장에 취업해서 기술을 배워야 하는 건 당연했던 시절이었다. 그래서 노동이라는 건 대학에 가지 못하면 꼭 하는 것으로 알았다. 지금은 근로자의 날이라 부르지만, 그때만 해도 노동절이었다. 요즘에는 은행원, 공무원, 학교 교사 등 화이트칼라도 노동자라 하고 노동조합도 설립돼 있다. 그런데 참 이상하다. 노동조합은 근로조합이 아닌데 노동자의 날은 생뚱맞게 근로자의 날이라 부르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일할 맛이 안 나.”

필자의 된걸음 세상 칼럼이 1년을 넘어서니 애독자도 꽤 많이 늘었다. 그중 한 사람인 공직에서 30여 년간 장기 근속했던 선배와 약속했던 남문 통닭거리 전집에 들렸다. 푸짐한 부추전 한 판을 안주로 막걸리를 들이켜며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었다. 선배의 사연인즉슨, 좋은 일자리가 났다고 해서 출근했는데, 도저히 못 견디겠단다. 일을 못 하면 그것도 못하느냐 하고 알아서 하면 왜 시키지도 않은 일을 하느냐며 핀잔이란다. 필자에게 이런 억울함을 기사로 써보란다.

마음이야 팔팔한 청춘이겠지만 60대 안팎이면 대부분 직장에서 밀려나 퇴직한다. 하지만 그즈음 자식들 출가 등으로 목돈 들어갈 일이 닥친다. 그동안 일했다고 마냥 먹고 놀 형편이 아니다. 그래서 구직활동이랍시고 전봇대에 걸린 교차로를 가져와 돋보기안경 끼고 일자리를 찾는다. 물론 화려했던 과거의 경력 되살려 일할 만한 자리가 있을 리 없다. 잘나갔던 그 시절, 생각하면 할수록 억울함이 밀려오지만, 마지막 남은 자존심마저 내팽개치고 선택한 게 중소기업체 경비원이었단다.

하루 24시간 근무에 이틀은 쉰다는 바람에 입사했더니, 하는 일이 만만치 않단다. 전날 근무자와 교대하면 곧바로 대빗자루와 쓰레받기를 들고 주변 청소부터 시작해서 분리수거장 정리, 화단과 외곽의 잡초 뽑기, 통행로의 낙엽과 오물은 물론 경비견 배설물까지 치우고 있단다. 경비라지만 초소에 앉아 있는 시간보다 밖에서 잔일을 하는 시간이 더 많단다. 선택을 잘못했다는 생각으로 하루에도 열두 번씩 후회하지만, 집사람에게 아주 좋은 직장이라며 안심시켰으니 그만둘 수도 없단다. 옛 생각이 떠올라 마땅한 위로의 말은 목에 걸렸다.

“선배! 다 그렇게 사는 거야.”

필자도 부산에서 20여 년 대기업에서 근무하다가 명퇴하고 올라왔지만, 막상 고향 땅에서 할 만한 일은 없었다. 딸 둘이 대학입시를 문전에 둔 상황이라서 닥치는 대로 일했다. 그렇게 아이들 뒷바라지를 끝내니 내게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 다행히 글 쓰는 재주를 인정받아 정년 걱정 없이 글은 쓸 수 있지만, 원고료라는 게 쥐꼬리 반쪽만 하다. 급기야 욕심을 절반쯤 비워내니 그런대로 생활에 불편함은 크게 느끼지 않는다.

지금은 뚜껑 열린 트럭의 스피커를 통해 맘 놓고 고성방가해도 이해해주는 대통령 선거운동 기간이다. 누구 하나 귀담아듣는 이가 없어도 입에 게거품 물면서 무엇이라 외쳐댄다. 말대로라면 반가운 소리지만 영 씨알이 먹힐 성싶지는 않다. 다행인지 불행인지는 모르겠으나 대통령은 물론 경제계 수장까지도 손목에 은팔찌 채워 교도소로 끌고 가는 기가 막힌 세상이다. 그런 판국에 대한민국 살려내겠다며 너도나도 나타난 팔도의 영웅호걸들이 제 잘났다 야단법석들이다. 지상낙원이 바로 코앞에 다가온 듯하다. 

저작권자 © 일간경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