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잡한 거리에서 밀리고 밀치면서 걷는데 “사장님!” 하는 소리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뒤로 돌렸다. 왕년에 흔하게 들었던 사장님 소리, 참 오랜만이다. 예나 지금이나 종업원 수가 몇이건 자본금이 얼마이든 관계없이 흔하게 부르는 호칭이 사장님이다. 또한, 그렇게 불렀다고 벌컥 화를 낼 사람도 없다. 뭐라 부르기 곤란할 때 술술 나오는 사장님 소리에 십중팔구는 갑자기 목에 잔뜩 힘이 들어간다. 필자도 ‘뭔 일로?’ 하며 상대방을 위아래로 쭉 훑어봤지만 역시나 착각이었다. 

“628만 원에서 503만 원으로 저렴하게 분양합니다. 살살 당겨도 술술 잘 풀리는 화장지도 덤으로 드려요.”

오는 5월 9일 제19대 대통령 선거는 겨울이 아닌 장미꽃 만발할 때라서 그 이름도 아름답게 ‘장미 대선’이란다. 그런데 장미는 아름다워도 날카로운 가시가 있다. 역사와 전통을 자랑했던 자기네 정당의 이름까지도 뒤가 급할 때 쓰는 두루마리 화장지처럼 밑씻개로 쓰고 버리듯 처넣었던 세상이다.

원내 5개 정당 중 최고라는 더민주도 역사는 고작 3년 안팎이다. 물론 정의당이 5년이라지만, 무소속과 함께 의원 수가 턱없이 모자라 비교섭단체이다. 이미 중앙선관위에 등록된 정당도 창당준비위원회까지 합친다면 무려 50여 개에 달한다. 그러니 이번 대선은 그야말로 신생 정당들끼리 막장 대결로 펼쳐지는 셈이다. 물론 본선에 이르면 여기저기 이놈 저놈 쥐나 새나 대통령 후보로 이름이라도 올리겠다며 야단법석 날 판이다. 예측건대 이번에는 20여 명은 족히 넘겠다. 이처럼 대통령도 만만한 웃픈 현실이 됐다.

앞서 얘기한 것처럼 세상에 흔하고 흔한 게 사장님이다. 대통령마저도 별 볼 일 없는 존재로 하락했다. 자신이야 엮였다지만, 다행히 더 커지기 전에 무혈혁명으로 진압됐다. 혼자만 살고 싶었을 청와대를 떠나 비워뒀던 옛집을 수리해 살려고 했지만, 벽지의 풀도 마르기도 전에 검찰에 불려갔다가 다짜고짜 감옥으로 직행했다. 꼭두새벽부터 초주검이 됐던 험한 몰골이 지금도 눈에 삼삼하게 어른거린다.  

옳고 그름이야 세월 지나면 저절로 밝혀진다. 그런데도 아직 정신 못 차린 대한민국 정치판은 좌파·우파, 진보·보수를 들먹인다. 그따위 이념 논리가 제대로 먹힐 리가 없다. 그런 것에 넘어갈 사람 또한 이 땅에 있지도 않다. 이미 물 건너간 옛날이야기에 혹할 사람은 없다는 말이다. 정치꾼들보다 더 똑똑한 국민은 이미 알고 있다. 물론 배가 터질 듯 부푼 나이 어린 저 건너 김 아무개 씨는 그러거나 말거나 미사일 만드는 취미에 더욱더 정진하겠지만,

개똥밭보다 더 구린 정치판에서 굴러 눈치코치 9단인 어떤 이가 갑자기 게거품을 무는 기이한 현상도 생겼다. 요리조리 있는 통빡 굴리다가 틈새를 노린 그 몰골이 볼썽사납고 안쓰럽다. 이미 눈동자는 칼도마에 눕혀진 광어나 가자미처럼 좌우로 홱 돌아갔다. 그 좋은 이론을 보통 사람 깜냥으로 헤아릴 수 없으니 답답하다. 지금은 그럴 때가 결코 아니다. 눈보라 휘몰아치는 만주벌판에서 개 끌고 독립·운동할 때가 절대로 아니라는 말씀이다. 연세도 조금은 생각하셔야 하고,

가정이나 회사에서도 소통이 잘 돼야 하는 일마다 잘 풀린다. 대한민국을 이끌 사장님(대통령님)은 누가 뭐라 해도 가족을 최우선으로 치는 내 어버이 같은 분으로 모시고 싶다. 좌우, 보수, 진보를 뛰어넘을 다져진 내공이 있는 분이라면 더욱 좋겠다. 지난번처럼 외곬에 불통은 절대 사절이다. 기왕지사 앞당긴 김에 대한민국의 미래까지도 앞당겨질 절호의 기회가 왔다. 딱 한 달이다. 돌돌 말린 화장지처럼 당기는 각도와 힘에 따라 술술 풀리기도 하지만, 자칫 어긋나면 중간에서 끊겨 낭패를 본다. 기왕이면 화장지 풀 듯 대한민국도 살살, 술술 잘 풀어주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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