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편집위원 이보택

오는 7일은 한국 신문·방송인협회가 ‘신문의 날’로 정한지 61주년이 되는 신문의 날이다.

민주화 물결을 타고 신문이 우후죽순(雨後竹筍)으로 마구 창간되면서 주위의 따가운 시선을 받으며 슬그머니 사라진 후 20여 년째 기념행사가 없어지면서 ‘신문의 날’마저 잊혀가고 있다. 

‘신문의 날’은 1957년 4월 7일 독립신문 창간 61주년인 1896년 4월 7일 서재필(徐載弼)과 개화파가 합작해 창간한 우리나라 최초의 민영일간지 창간기념일을 ‘제1회 신문의 날’로 정하고 기념식과 신문윤리강령 선포와 활약하다 전사한 6,25종군기자들의 훈장을 수여했다.

’신문의 날’은 당일 신문휴간으로 독자들은 신문 없는 하루가 무척이나 지루하고 문명의 혜택이 얼마나 고마운지 실감했다며 신문 없는 하루를 보낸 독자들의 얘기를 전해들을 때 자부심도 갖고 하루를 쉬면서 주위의 찬사를 받을 때를 아련히 그려 보았다.

우리 신문은 130여 년의 짧은 역사지만 국민정신을 일깨워주고 결집시켜주었으며 걸어온 길은 너무나 험난했고 복잡한 민족의 투쟁과 분노를 표출(表出)하며 국민정서를 화합과 단결을 키우는데 그 도리를 다해온 우리 신문이 걸어온 길은 참으로 장한 가시밭길이었다.

구한말 신문이 등장하면서 우리민족의 근대화운동은 시작됐고 보수에 대한 혁신(革新), 사대(事大)에 대한 자주(自主) 이런 대결은 신문을 발판으로 과감히 전개됐고 이때 군,국 일본의 침략주의였다. 이를 계기로 우리 신문은 보수와 혁신을 넘어 침략주의에 맞섰다.

구국운동으로 결집해 언론투쟁이 전개되고 신문은 침략주의 배격(排擊)에 있었고 신문기자 모두는 애국투사들이었다. 신문 구호는 <애국과 독립> 그것이었다. 그러나 치열(熾烈)한 신문의 투쟁도 한일합병이란 군,국 일본의 압도적인 군사행동에는 당할 도리가 없었다. 

우리 신문은 일본 식민 통치하에서도 꾸준히 현대화로 달음질을 쳐 현대화를 일깨워왔다. 그리고 국민의 정신을 결집하는 등 신문의 업적은 찬연(燦然)히 빛나야 할 것이다. 신문역사는 민족의 투쟁사요 근대사로부터 현대사를 꿰뚫은 민족의 이면사이기도하다. 

독립신문은 국문판과 영문판으로 3면은 국문판 1면은 영어로 제작해 격일간지로 주3회(화?목?토)를 발행한 최초의 민영일간신문으로 3년 7개월간의 짧은 기간을 발행했지만 우리에게 많은 것을 일깨워주고 안타깝게 1899년 12월 4일자를 마지막으로 폐간됐다.

이렇듯 우리 신문은 일제시대부터 꾸준히 혁신과 자주를 부르짖으며 현대화의 선봉에 서 국민들의 애국정신을 통합하는데도 앞장섰었다. 자유와 품위를 강조하기 위해 제정했던 신문의 날을 맞아 신문의 사회적인 사명과 책임을 자각하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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