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놈이 침입, 팔봉에 큰 대못을 박지 못하여 팔응장군이 탄생

영주 땅에 참으로 아름답고 신비한 팔영산이 있다.

일찍이 위왕 시대에 중국 위왕이 세수하려던 관수에 여덟 가지 산봉우리 그림자가 비치었다.

신기하게 생각한 위왕은 신하들을 불러 천하 제후들에게 명하여 팔 봉의 산이 어느 곳에 있는가를 찾아 아뢰도록 하였다.

그러나 중국의 땅에서는 찾아볼 수 없고 뒤늦게 동방의 나라 조선국 최남단에 있는 점암면 성기리와 동쪽 금사리를 에워싸고 중앙 상부에 돌출한 팔봉의 운치를 자랑한 영산 팔영산을 발견했다는 고사가 구전되고 있다.

원래는 팔전산이라 이름하였는데 위왕의 관수에 팔 봉이 비치었다 하여 그때부터 그림자 영자를 붙여 팔영산으로 불리게 됐다.

동쪽에는 유영봉, 군선봉, 중앙에는 성주봉, 북쪽에는 천주봉, 중앙에 사자봉, 서쪽에는 별봉과 팔응장군이 백마를 채찍질하여 하늘을 날았다는 팔응봉이 있으며, 남쪽에는 일출봉 등이 있는데 왜놈이 침입하여 조선을 정복하려면 팔 봉에다 큰 대못을 박아야 민족의 정기가 끊어진다 하여 칠 봉까지 못을 박고, 팔영봉에는 대못을 박지 못하여 팔응장군이 나왔다는 전설도 있다.

또 남서쪽의 산등성이를 내리 닥치면 평평한 산기슭에 능가사가 자리 잡고 있다.

불교의 발상지인 인도의 나라에 있는 명산을 능가사라고 불렀는데, 이를 한자를 붙여 능가라고 했다는 것이다.

이 능가사의 정문에 들어서면 지금으로부터 700여 년 전의 거장이 조각했다는 사천왕의 목각이 웅대하게 안치되어 있으며, 약 1500여 년 전 아도화상이란 중이 창건했다는 절인데 이때 팔영산 중턱에 자리 잡아 그 이름을 보현사라 하였다.

그 후 정현대사가 약 10년 동안에 20여 개의 전당을 중건하고 능가사라 했다.

건평 63평의 대웅전과 높이 3m, 폭 1.3m의 거대한 사적비(지방문화재 90호)는 덕복스님의 도술로 옮겨졌다 하며 지방 문화재 제69호로 지정된 무게 1500근이나 되는 범종이 있으며 9개의 석탑이 즐비하게 서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수천 평의 사찰 내 잔디밭 사이로 산줄기를 넘쳐 흐르는 청정한 물맛은 또한 신선하다고 할 것이다. 
멀리서 구름 사이로 뚜렷하게 솟아 나오는 팔 봉은 마치 뭉게구름을 타고 우리 행인들을 언제나 반겨 맞아주고 있다.

너를 보려 내가 왔다. 기쁨에 넘쳐 손을 들면 그 또한 나도 기다렸노라 하고 주춤주춤 걸어 나와 맞이한 듯하다.

또 이산의 모습은 기묘하여 팔봉에 올라서서 바라보면 마치 천주 공을 잡음과 같고 군선이 구름을 능가함과 같아 엄연한 불가범의 상이다.

또 동쪽 유영봉에는 서불암이 있었고 우리 고장의 기절 처로서 이 층암절벽 맨 위엔 용 알이 9개가 들어 있어 이 곳에서 구룡정의 샘물이 솟아 이 물을 마시고 백년수 스님이 살았다는 전설도 깃들어 있다.

이곳에서 남해안을 바라보면 탄환과 같은 작은 섬들이 성라기포처럼 아름답게 펼쳐 보인다.

선인들은 이를 가리켜 보석해라 불렀고, 또 한계가 무궁하여 맑은 날씨에는 일출의 광경을 볼 수 있으며, 바다 멀리 제주도 한라산도 바라볼 수 있다.

그리고 춘추 양분에는 노인성이 보이므로 각처에서 몰려드는 관광객이 빈번하여 이와 같은 기묘 절경의 명승을 보지 못한 사람은 마치 화인(중국인)이 금강산의 일경을 원함과 같다고 하는 명산이다.

이산 동북쪽 깊숙이 이 고장 고흥지명의 창시자 류청산의 효심을 상징하는 피난 굴이 있어 유명하다.

이 봉 저 봉 젖 줄기에는 정기가 넘쳐흘러 우리 고장의 동맥이요, 사방으로 깔린 층암절벽의 핏줄기는 의지와 기상이 용솟음치는 고장의 심장이니 과연 팔영산은 우리 고장의 맥이 이어져 오고 있는 역사의 향기를 간직한 선비의 고장으로써 유유히 흐르는 전통을 상징하고 있다.

고흥의 영산이요 명산 팔영산을 해방 후 어느 재벌의 사업 조성을 위해 산림을 훼손하고 형질까지 손상하는 행위 등이 자행되고 오늘날 도립공원으로 인가되어 관광지로 개발되고 팔 봉을 중심으로 산 전체가 4통 5달로 도로가 개설되었으니 자연의 훼손이 말할 수 없이 많았으나, 한편 관광지로 개발되어 군비 수입에 한몫을 단단히 하는 셈이다.

고흥지방의 산세를 모아 지맥을 이루고 있는 팔영산 8봉 중 제4종인 사자봉은 용이 바다를 향해 내달리는 형상의 기백으로 그 혈명은 신선이 구름 속에 앉아 있다는 운중선좌의 형국이다. 이 자리는 대혈이지만 임금의 옥쇄에 해당하는 마지막 봉우리가 완성되지 않아 아쉬운 곳이다.

그러나 이 혈의 가치는 바닷가 부근에서 제일의 산세로서 자손 대대로 재물이 모이며 명현 인물이 배출되는 명산이다. 더불어 왕주두에 있다는 지주결망형은 거미가 줄을 치고 기다리고 있다는 특수한 형국으로 해변에서 보기 드문 대혈이지만 정확한 지점이 밝혀지지 않아 아쉬움을 남긴다. 
천혜의 명당들을 두루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고흥은 각종 전설과 설화 등에서 전해오거나 풍수지리론을 연구하는 지사(지관)들에 의하여 천하 지대 팔이 발굴될 것으로 본다.

바위마다 사연이 많다는 점안면을 돌아보고 과연 팔영산은 전설이 담긴 명산이라는 것을 새삼 느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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