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룡산성과 견훤

경북 청도군 운문면 신원리에 있는  지룡산은 후백제왕 견훤이 이 산에 살던 지렁이의 아들이라는 야설로 인해 지용산이라 부르게 되었고, 여기에 있는 산성을 지룡산성이라 부르게 되었다 한다.

지룡산성은 신라가 망하고 고려가 삼국을 통일하게 된 계기의 터전이기도 하다.

이 산성을 축조한 후백제왕 견훤이 신라의 수도였던 금성을 공략하게 되자, 신라왕이 나라를 들어 고려에 항복하게 되고 그 뒤 고려에 의해 후삼국이 통일되었던 것이다.

이 지룡산성에 얽혀있는 재미있는 전설이 전해온다. 

신라후기 지금의 운문면 신원리 내포에 한 아름다운 처녀가 살고 있었는데 주위 젊은이들의 흠모의 대상이 되었다.

 이 처녀는 부모님을 모시고 화목하게 살고 있었다. 처녀가 성숙해 지자 장래의 배필감을 생각하면서 가끔 상상의 나래를 펴기도 했다.
어느날 밤중, 처녀가 문을 잠그고 자고 있을 때 인기척에 놀라 깨어보니 어떤 낯선 총각이 방에 들어와 머리맡에 앉아 있었다. 

처녀는 얼마나 놀랐던지 소리도 못 지를 지경이었다. 이윽고 정신을 차리고 처녀가 말하기를 "누구시온데 이 밤중에 처녀 혼자 자는 방에 들어왔어요?" 하자 총각이 대딥하기를 "나는 여기서 좀 떨어진 곳에 살고 있으나 낭자를 주야로 사모하던 끝에 이러한 무례를 범하게 되었으니 너무 책망하지 마시오" 라고 하였다.

 처녀는 총각의 말을 듣고 그 풍모를 자세히 쳐다보니 늠름하고 믿음직하게 생긴 미장년이었다. 처녀는 자신도 모르게 이끌려 그날부터 두사람은 사이좋게 지내게 되었고, 처녀는 한시라도 총각을 잊지못하여 애타게 기다리게 되었다.

그뒤부터 매일 자정이 좀 지나면 언제나 찬바람이 일면서 그 늠름한 총각이 처녀방을 찾아들어 사랑을 나누다 첫닭이 울기전에 떠나버리곤 했다. 

이렇게 지내는 것이 얼마간 흘렀다. 그간 부모는 딸을 시집보내기 위해 곳곳에 좋은 혼처를 구해도 딸은 시집을 가지 않겠다고 막무가내였다.

 부모들은 딸이 사모하는 젊은이가 있나보다 하고 딸을 달래고 야단을 쳐서 추궁하였으나 처녀는 그런 일이 없다고 하여 부모들은 딸의 말을 믿었다.
이렇게 지나기를 수개월이 지나자 처녀는 아기를 갖게되어, 자신이 잉태한 것을 부모에게 숨기고 배를 천으로 싸매어 지냈으나 결국에는 부모가 알게 되었다.

 딸을 고이 길러 좋은 혼처를 찾아 결혼시키려던 부모의 꿈은 깨어지고 말아 크게 실망하였다. 딸을 앉히고 그간 어떻게 된 연유인가를 물으니 딸은 감출 수가 없어서 지난 일들을 낱낱이 이야기하기에 이르렀다. 

 딸은 눈물을 흘리며 대답하기를 "죄송하오나 그 총각의 거처도 이름도 모르옵니다. 앞으로 석달간만 기다려 주면 소녀를 아내로 맞이하겠다고 하였습니다. 

이에 부모들은 딸의 말을 믿고 몇 달을 기다리기로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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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밤 처녀는 찾아온 총각에게 이러한 사실을 이야기하고 빨리 혼사를 치를 수 있도록 부탁했다. 그러자 그 총각이 말하기를 “여보 낭자! 이제 한달도 안남았으니 참고 기다리도록 합시다.”하였다.

이틑날 이 사실을 부모에게 말하니 아버지는 기다리자고 했으나 어머니는 “안된다. 만약 총각이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너는 애비없는 자식을 낳게 되고 아이와 너의 신세가 어떻게 되겠느냐?”하면서 눈물을 흘렸다.

며칠 후 어머니가 말하기를 “좋은 방법을 생각해 두었으니 시키는 대로 하라.” 하시면서 명주실꾸리를 하나 딸에게 주었다. “오늘밤에 그 총각이 다시 너를 찾아오면 그 발목에다 명주실을 묶어두면 반드시 그 거처를 알 수 있을 것이니 그대로 해라.”면서 거처를 알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다. 그날 밤에도 총각은 여전히 처녀의 방으로 찾아왔고 처녀는 명주실을 발목에 묶느냐 마느냐의 갈등속에 마음을 잡을 수가 없었다. 총각의 말대로 며칠을 더 기다리자니 어머니의 말씀이 생각나고, 며칠만 기다리라는 총각의 말이 생각나 오랫동안 번민을 하던 처녀는 어머니의 말씀을 따르기로 하고 발목에다 명주실을 묶어두었다. 날이 밝자 처녀는 이 사실을 부모님께 알려서 부모들이 딸방으로 달려가 보니 명주실이 창문구멍으로 빠져나가 있었다. 부모들이 명주실을 따라갔더니 ‘복호산’ 중턱에 위치한 깊은 동굴속으로 들어가 있었다.

동굴속으로 들어가 보니 동굴 끝에 오색이 찬란한 짚동같이 큰 지렁이 한 마리가 낮잠을 자고 있었다. 부모들은 지렁이가 워낙 커서 잡을 도리가 없었다. 궁리 끝에 노루 가죽을 가져와서 지렁이 몸통에 씌우니 죽고 말았다. 그날 밤부터 그 총각도 처녀의 방에 다시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 후 달이차서 처녀가 아이를 낳았는데 이 아이가 자라서 후백제의 견훤이 되었다고 하며 '황간 견씨'의 시조라고 한다. 

견훤은 신라를 정복하기 위해 선조 지렁이의 영지인 지룡산을 찾아가서 지룡산성을 구축하고 신라를 정벌하기 위해 애를 썼으나 백성들에게 인심을 잃어버리고 결국에는 아들 '복희'에게 나라를 빼앗긴 후 금산사에 유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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