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도화상이 도리사를 짓고 금산(金山) 금릉땅을 바라보니 황학산(黃鶴山)중턱에 좋은 절터가 보이므로 승도들에게 손가락으로 절터를 가리켰다하여 절 이름을 직지사(直指寺)라고 하였다.

임진왜란(壬辰倭亂)때는 많은 승병을 이끌고 왜병과 싸워 전공을 세웠으며 일본과의 외교에서 많은 활약을 하여 포로를 구출한 사명당(四溟堂)이 13살에 직지사에서 수도하였다.
 
이렇듯 도리사와 직지사는 불가분의 인연을 갖고 불도의 수련장이요 호국의 도량(道場)으로서 우리 겨레와 영고성쇠(榮枯盛衰)를 함께하여 왔었다.
 
냉산문답(冷山問答) 선산(善山)땅 비봉산(飛鳳山) 아래 자그마한 암자에는 오랜 세월을 두고 벽을 향해 문을 굳게 닫고 대학(大學)을 공부하고 있는 선비 한 사람이 있었으니, 연산군(燕山君)이 손수 그 아버님 성종(成宗)이 기르시던 사슴을 쏘는 것을 보고 장차 이 나라가 어지럽겠구나 탄식하고 높은 무관의 벼슬을 버리고 처자를 데리고 산자수명(山紫水明)한 선산으로 내려와 성현의 가르침을 마음에 깊이 간직하고 익힌 선전관 송당 박영(松堂 朴英) 이다.
 
하루는 송당이 글 읽기를 마친 뒤에 산쪽으로 난 창문을 열었다. 단정히 앉아 창밖을 내다보니 옥을 깍아 세운 듯한 많은 골짜기와 봉우리의 설경이 그림인 듯 뻗쳐 송당의 넓고 큰 마음으로 희망을 가지고 설경을 구경하고 있을 때 구비쳐진 길 아래에 말방울소리가 달랑달랑 들렸다. 송당은 다시 귀를 기울여 방울소리 나는 곳을 바라보고 있으려니 산모퉁이 구비진 곳에 나귀를 몰고 눈을 밟으며 암자를 향하여 올라오는 두 사람이 나타났다. 자세히 보니 신당 정붕(新堂 鄭鵬)과 박경(朴耕)이다.
 
 "아아 신당 선생께서 눈길에 어떻게 험한 길을 올라오십니까?""설경도 구경할겸 자네 공부도 볼겸해서 박진사(朴進士)를 동반해 오는 길일세""그래 얼마나 공부를 하시기에 고생이 되시오 늦공부가 과연 힘들 것이오"하고 송당은 두 어른을 서재로 인도하니 신당은 방에 들어가"그래 그동안 대학을 만 번을 읽었오?"신당 선생이 물은 말이다. "내일 모래면 끝날듯 합니다마는 저는 그저 뜻을 모르고 읽기만 한 것이죠"송당은 탄식하듯 옷 깃을 바로 잡고 대답한다.

 "지금 올라 오다가 박진사 하고 이야기하고 웃었네마는 대학의 격물치지(格物致知 : 사물의 이치를 연구하여 알아서 깨닫는 경지에 이름) 공부 말이야. 지난 가을에 내가 저냉산(冷山)을 가리키며 저산 바깥에는 무엇이 있겠느냐고 물었을 때 자네는 아무런 대답도 못하지 않았나 이제 그만큼 공부를 했으면 짐작이 있을 것이니 다시 한번 대답해 보게, 저산 밖에는 무엇이 있겠나?" 하고 신당이 물었다.
 
 "산 밖에는 다시 산이 있을 겁니다."송당이 고개를 수그려 대답했다. 신당은 껄껄 웃으며 송당의 손을 잡았다."옳아 이제 자네의 글 읽는 공을 알겠다. 이제 집으로 돌아가게."송당은 아무런 대답도 없이 방긋이 웃을 뿐이요. 박경(朴耕)은"허허 송당이 글 공부가 이렇게 도저(到低)하단 말씀이요. 그야말로 참 갑자기 학식이 늘었어. 아주 놀라겠는걸요" 하고 공경하여 탄식하였다.
 
 "선생님 저는 이제 의학을 좀 공부해야겠습니다." 송당은 신당을 쳐다보고 이렇게 말했다.
 
 "그건 왜?" "무수한 시골 산천에 훌륭한 의원이 없어서 귀중한 생명을 버리게 되는 사람이 많습니다. 혹 의원이 있다해도 그나마 이름있는 양반집에만 드나들게 되니 가난한 백성이  자식으로 그 아버지가 운명을 한다해도 약한첩 못쓰고 팔짱을 끼고 들여다 볼 뿐이요 처자가 병들어도 약방을 찾지 못하고 그대로 생죽음하게 되니 한심한 일이 아니오니까?"
 
 "송당의 높은 견식에 탄복하네" 신당이 어루만지며 고개를 끄덕거린다. "다시 문과를 보지 아니하시려오?" 박경이 송당에게 묻는 소리다.
 
 "허허 벼슬을 버리고 온 사람이 과거가 무엇이오니까? 무인이 싫어서 고향에 돌아온 것이 아닌 바에야 점필재를 보시고 탁영 김일손을 보십시오. 지금 벼슬을 할 때오니까?
 자연을 칭찬하고 글 공부나 하며 성현의 길로 제자나 인도하고 의술과 약으로 백성들의 천대받던 목숨이나 구하여 주면서 남은 세월을 보내렵니다."
 
 "그렇지, 송당의 말씀이 옳네, 비밀이지만 지금 과거를 보아 조정에 벼슬할땐가?"
 
신당이 송당의 말을 받는 소리다. 송당은 신당을 선생으로 모시고 스스로 이르기를 대학동자라 하며 열심히 도학을 연구하여 많은 후학을 길러 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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