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시 남구 문학산에 있는 '술바위'가 아들을 얻고자 기원하는 고대 신앙 터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학산포럼 향토사연구팀은 지난해 10월부터 최근까지 3차례에 걸쳐 술바위와 인근 지역을 탐사한 결과 제사에서 행해지는 의식인 '제의(祭儀)'가 이뤄진 것으로 추정되는 특징을 발견했다.

연구팀은 높이 270㎝ 크기의 술바위가 '남근(男根)'을 형상화하고 있고 주변에 우물터로 추정되는 돌무지가 있어 이 지역이 제의공간일 것이라고 봤다.

특히 제의는 아기의 점지와 해산을 맡는다는 세 신령 '삼신(三神)'을 숭상하는 형태로 이뤄졌으며 술바위는 아들을 얻고자 기원하는 바위인 '기자암(祈子巖)'일 가능성이 농후할 것으로 추정했다.

술바위 명칭은 전국 곳곳에서 제의가 이뤄진 '수리바위'에서 연유한 것으로 보인다.

연구팀은 이 지역에서 고대 제의 도구가 발굴될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탐사를 이어가는 한편 문화재 전문기관 등에 연구를 촉구할 방침이라고 한다.

천영기 학산포럼 대표는 "이번 탐사로 고대 선조들의 신앙과 제의를 엿볼 수 있는 의미 있는 결과를 얻은 것 같다"며 "여러 가지 추정과 가능성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전문적인 현장조사가 필요할 것"이라고 했다.

문학산 술바위를 중심으로 신화적 화소를 담고 있는 갑옷바위 전설을 들어 본다.  

 술바위는 단순히 술이 나온 바위가 아니라 새로운 생명 탄생의 장소이고 고대 부족장(군왕)이나 아기장수 출현의 기도처다.
세모지 고개는 ‘샘이 나오는 고개’이고 술바위 설화에 연관해 삼해주고개, 또는 삼호현으로 한자음 지명이 되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문학산 술바위는 남근석의 전형으로 상부 서편에 삼성혈(三聖穴)이 있으며 상부 머리에 칠성(七星) 성혈이 있던 삼신(三神)신앙터이다. 

 문학산 술바위는 ‘수리바위’에서 연유한 명칭이다. ‘수리바위'‘선바위’에서 기자제의가 이루어진 사례는 전국적으로 많다.

문학산 술바위는 남근석 아래가 큰 제의터로 여겨지는 공간이다. 주변에 우물터로 보이는 돌무지와 신성한 제의 공간의 경계선으로 보이는 선돌이 있다고 한다.

 문학산 술바위는 수직 최장 270cm의 거대한 남근석이다. 문학산 주변의 고대 신구석기 유물과 청동기 문화와 연관한 원시 성석제의터일 가능성이 있다.

 술바위 전설에서는 술을 3잔만 허용된다는 것, 갑옷바위에는 아무리 궁금해도 보려고 해서는 않된다는 것, 둘다 지켜지지 않아 전설이 되었다고 한다.
 
사모지고개를 넘어가던 길손들이 바위에 걸터 앉아 잠시 땀을 식히며 쉬고 있으면  이쁜 처자가 바위구멍에서 나와 술을 한잔 따라주었다고 한다.

 그런데 3잔 이상을 요구하면 큰일이 나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3잔 이상을 청한 적이 없었다.

 어느 날, 스님이 이 바위에 앉아 예쁜 처녀가 따라주는 술은 3잔을 마셨다.
그런데 오늘은 왠지 1잔만 더 먹고 싶어서 금기인줄 알면서도 처녀에게 1잔을 더 달라거 애원 했다.

 그러자 예쁜 처녀는 술이 나오는 바위 구멍 속으로 들어가 버리고 말았다.스님은 못내 아쉬워 무릎을 꿇고 아무리 애타게 불러도 처녀는 구멍 속에서 나오질 않았다.

그 이후 술바위는 더 이상 길손들을 반갑게 맞아주는 영물이 아닌 큰 바위에 지나지 않게 되었다. 술바위를 살펴보니 커다란 구멍들이 보이는데 스님의 손자국 발자국이라 한다. 그래서 술바위는 일명 중바위라고도 한다.

사모지 고개를 넘어 인천광역시 연수구 청학동 쪽으로 약 15m 가량 내려가다가 오른쪽 노적산(露積山)의 비탈을 다시 15m 가량 오르면 있는 큰 바위가 갑옷 바위이다. 이 바위는 ‘술이 나오는 바위’의 건너편에 있다. 얼른 보면 개구리가 비탈에 앉아있는 듯한 형상으로 남쪽을 향해 있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그리 크지 않은 갑옷 바위는 상 하 두 부분으로 나뉘어졌다. 갑옷 바위의 둘레에 큰 금이 나 있어 흡사 뚜껑을 닫아놓은 돌함과 같이 되어 있다. 그러나 지금은 그 뚜껑의 아래쪽 부분이 떨어져 달아난 바위이다.

 옛날에는 장수가 이 바위의 아랫부분에 석함을 파고 자기 갑옷과 투구를 감추어 놓고 그 위에다 뚜껑 바위를 덮어 놓았다고 한다. 그리고 누구든지 이 바위를 건들기만 하면 이상하게도 별안간에 뇌성벽력이 쳐서 그 자리에서 벼락을 맞았 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문학산 꼭대기에 있는 안광당 (安官堂)의 당집을 지키던 당지기가 호기심이 많아  바위를 깨뜨려서 그 속에 무엇이 들었는지 확인할 작정으로 뚜껑바위 아래쪽을 망치로 쳐서 깨뜨리기 시작했다. 

이때  별안간 청천벽력이 일어나고 천지가 진동하는 괴변이 일어나 넋을 잃은 당지기는 겁에 질려 그 일을 중단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지금 뚜껑바위 아래쪽이 떨어져 나간 것은 그때 당지기가 깨뜨렸기 때문이라고 전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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