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 일자리 좀 없을까?”
평생을 대기업에서 근무하다가 정년퇴직한 선배가 전화로 하소연한다. 퇴직 후 8개월 정도는 부인과 함께 해외여행까지 다니면서 좋았는데, 집에 있자니 몸이 근질거려 두 달 전에 취직했단다. 공장에서는 라인 작업만 했기 때문에 별다른 기술은 배울 틈도 없어 30여 년 이상 밥벌이가 됐던 그 기술은 다른 기업에서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단다. 할 수 없이 후배가 경영하는 집 근처 공장의 경비직이나마 체면 불고하고 입사했다는 것이다.

“잘됐네요, 후배가 사장이라니 나가라는 소리는 안 하겠네요.”

사장이야 한 달에 한두 번 얼굴 보기도 힘들단다. 다름이 아니라 함께 일하는 사람들과 호흡 맞추기가 쉽지 않아서 그런단다. 남들에게 폐를 끼치며 산 적이 없는데 이런 강적들도 있음을 처음 알았단다. 필자는 S대 나온 사람도 낯선 일을 하게 되면 어리바리할 수밖에 없으니, ‘조금만 더 참고 견디시라’고 위로하면서 통화를 끝냈다. 며칠이 지난 후 다시 전화가 왔다. 이번에는 도저히 못 참겠다며 당장에라도 보따리를 쌀 기세다. 사연인즉슨,

공장 내에 잡종 진돗개 세 마리를 경비견으로 키우는데, 사료를 많이 먹으니 당연히 배설물도 엄청나다고 한다. 날이 추워져서 바닥에 얼어붙을까 봐 야밤에 손전등을 밝히고 세 군데 개집을 돌아다니며 분명히 치우고 취침했는데, 마치 감시하듯 이른 새벽부터 출근한 직속 과장이 ‘개똥도 안 치우고 뭐 했느냐’며 타박을 주더란다. 그러한 잔소리는 한두 번 들었던 게 아니라서 ‘새벽에 싼 모양이다’라고 했더니, 인사고과 들먹이며 시말서를 받아야겠다고 짜증을 내더란다.

“대기업에서도 안 써봤던 시말서라는 걸 쓰라는데 열불 안 나겠어?”

눈으로 안 봐도 현장이 훤히 보인다. 입에 게거품을 물면서 필자와는 아무 상관도 없을 얘기를 선배는 한참 동안 내게 퍼붓는다. 막판에는 ‘군대도 이러지 않는다’, ‘개보다도 서열이 아래’라면서 신세 한탄을 늘어놓는다. 한 이불 덮는 형수님도 ‘스트레스받느니 그만두라’고 하셨단다. 하지만 잘난 후배 덕에 좋은 데 취직했다며 동네 친구들 모아 입사주로 한턱 화끈하게 쏜 상황이라서 나갈 수도 없고 이래저래 환장하겠단다.

선배도 입사하자마자 반장이지만, 셋이서 3교대 하는데 과장도 있다며 희한하단다. 선배가 직장 다닐 때는 대학을 졸업하고 제대한 후 곧바로 입사해도 과장 진급하려면 10년은 조이 걸렸단다. 회계나 경리부서가 아닌 담에야 몇 개 라인 조·반장을 통솔하는 막중한 직책이었단다. 계장이나 대리 때와는 달리 업무도 통달한 때라고 했다. 알고 보니 그 과장이라는 사람도 처음에는 경비로 입사했는데, 나이도 젊고 눈썰미가 있어 사장은 과장이라는 직책을 주고 이런저런 잡일을 시키는 모양이다.

“그것도 벼슬이라고 죽창만 들면 사람 잡아먹겠어.”

100세 시대라지만 명퇴 이후 노년의 일자리가 더욱 심각하다. 특별한 기술이 없다면 청소·경비직이라도 맘 편하게 일할 수 있다면 감지덕지다. 요즘 국회 같은 데야 처우가 상당히 개선됐다지만, 웬만한 곳에서야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야만 버틸 수 있다. 선배처럼 완장 찬 못된 선임이라도 만나면 ‘갑질’도 아닌 ‘을질’에 서러움은 곱빼기가 된다.

예나 지금이나 별 볼 일 없는 곳일수록 별것도 아닌 완장들이 설치게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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