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방이 건물로 둘러싸인 잔디밭에는 아무것도 없다. 하지만 가만히 귀를 기울이다 보면 이런저런 소리가 들린다. 프랑스에 거주하며 활동 중인 뉴미디어 작가 김순기(68)의 작품 '침묵의 소리를 들어라'다.

작가는 소격동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곳곳에 마이크를 설치하고 주변의 바람과 자동차 소리, 관람객의 대화 소리 등이 섞여 만들어내는 우연성을 체험하도록 했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김순기를 비롯해 아시아 출신 여성 뉴미디어 작가 7명의 예술 세계를 조명한 '끝없는 도전_인피니트 챌린지'전이 열리고 있다.

전시에서는 김순기의 1970년대 초반 작업인 '조형상황'도 소개한다. 프랑스 남부 지역 해안가에서 풍선을 날리는 등의 대형 퍼포먼스를 영상으로 선보여 주목받았던 작품이다.

인도 출신 날리니 말라니(68)는 5개의 벽에서 영사되는 작품을 통해 인도와 파키스탄의 분리 분쟁 속에 성적·신체적 폭력을 겪은 여성의 참혹한 경험을 다루고, 대만 출신 슈리 쳉(60)은 인터넷을 매개로 한 '넷 아트'를 통해 거대 권력이 은폐하려고 하는 진실을 폭로한다.

이들 셋이 선구적인 뉴미디어 여성 작가라면 나머지 4명은 다채로운 작품을 선보이는 40대 안팎의 젊은 작가들이다.

어색하고 우스꽝스러운 힙합 춤을 추는 아시아인의 모습을 통해 "자본주의 문화를 받아들이는 이질감을 시각화"한 '힙합' 연작으로 주목받은 중국 작가 차오 페이(36)는 '힙합' 연작과 함께 첫 장편 영화인 '황사', 인터넷 기반의 가상 세계인 '세컨드 라이프'를 배경으로 한 작품 '위안화 도시'를 소개한다.

샤흐지아 시칸더(45·파키스탄)는 과슈로 그린 회화를 디지털 애니메이션으로 변환해 집단간 마찰을 표현하고, 단편영화 감독 출신인 틴틴 울리아(43·인도네시아)는 세계화 시대에 '동시대성'이 갖는 양면적 의미를 서울관과 과천관에 실시간으로 연결된 설치 작품으로 드러낸다.

서울관 교육동 옥상에 설치된 작품 'WMYEOAIUSRT'는 인도 출신 쉴파 굽타(38)의 작품으로, 조명이 들어온 알파벳만 읽으면 'MY EAST IS YOUR WEST'라는 문장이 완성된다. 서구 중심적인 시각에 따라 동양으로 정의된 아시아에 대한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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