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강점기 만주지역 항일 무장투쟁의 핵심 인물이었던 이규채(李圭彩, 1890~1947)가 죽기 전 자신의 삶과 독립운동 여정을 기록한 친필 원고가 처음 공개됐다.

독립운동가가 자신의 기억을 토대로 직접 쓴 기록이어서 다른 자료와 달리 현장감이 뛰어나다. 그뿐 아니라 만주지역 항일 무장투쟁에 관한 새로운 사실, 독립운동사 이면의 어두운 부분까지 보여준다는 점에서 가치가 큰 자료로 평가된다.

박경목 서대문형무소역사관장은 30일 발간된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학술지 '한국독립운동사연구' 47호에 이규채 선생의 친필 기록 '이규채 연보'를 소개했다.

'이규채 연보'는 애초 제목이 붙은 책이 아니라 이규채가 1890년부터 1944년까지 54년간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쓴 기록의 모음이다. 작성 연도는 명시돼 있지 않으나 정황상 1944년 작성된 것으로 박 관장은 추정했다.

원문은 한문이며, 이규채의 손자 이성우씨가 집안에 전해져 내려오던 이규채의 친필 기록을 정선용 한국고전번역원 수석연구위원에게 의뢰해 번역했다.

이규채는 만주지역 독립운동사에서 한국독립당, 한국독립군, 신한독립당, 이청천, 박찬익, 오광선, 홍진 등을 언급할 때 빠지지 않는 인물임에도 개인의 상세한 행적을 보여주는 자료가 없어 그간 일반에 잘 알려지지 않았다.

연보에는 그간 정사(正史)에서 다룬 독립운동가와 관련 단체들의 활동뿐 아니라 당시 독립운동의 고단함, 일제의 혹독한 감시, 심지어 독립운동가 사이에 벌어진 갈등과 내부 배신 등 어두운 면까지 숨김없이 기록돼 있다.

일례로 1934년 기록을 보면, 이규채는 중국 상하이에서 활동할 당시 과거 자신과 함께 독립운동에 가담했던 조선인의 밀고로 일본 경찰에 체포됐다.

한때 이규채의 휘하에서 한국독립군에 참여한 인물로 추정되는 '이민달'이라는 인물이 9월25일 그를 찾아왔다. 이민달을 따라 목적지에 도착한 이규채가 뒤를 돌아보니 그는 보이지 않고, 중국 옷을 입은 두 사람이 나타나 이규채를 체포했다.

그를 조사하던 한 경찰관이 이렇게 귀띔한다.

"선생이 듣지 못한 것이 있는 듯하다. 선생을 4천원을 주고서 압송해 왔는데, 이민달과 처음에는 1만원을 주기로 약속했다."

한때 이규채와 독립운동에 동참한 이민달이 일본 경찰에 매수돼 그를 팔아넘겼다는 뜻이다.

일본 경찰은 이규채를 신문할 때 그의 행적이 기록된 책자를 펼쳐놨는데, 분량이 7권에 이르는 데다 이규채 본인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일까지 상세하게 적혀 있었다고 한다. 그만큼 독립운동가를 밀착 감시했다는 방증이다.

이밖에 공산주의자들과 갈등으로 생매장당했다가 구사일생으로 구출된 일화, 중국 민간 비밀결사가 이규채 일행을 일본의 정탐꾼으로 오인하고는 그들을 포박한 뒤 밧줄을 말 안장에 묶은 채 달리는 바람에 죽을 뻔한 일, 일본이 현상금을 내걸고 수배한 5명 가운데 자신에게 걸린 금액이 2번째로 높았다는 내용에 이르기까지 독립운동 현장을 생생히 보여주는 기록이 많다.

이규채는 이 기록을 당시 경기도 포천에 있던 한 상점에서 얻은 계산서 용지에 썼다고 한다. 연보를 쓰던 1944년 무렵 일반 종이를 구하기 어려웠을 정도로 그의 생활이 어려웠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박경목 관장은 "이 연보는 이규채의 행적에 관한 사실 확인은 물론 독립운동가들과 그의 교류 네트워크, 독립운동 여전의 주변 상황과 역경, 일제의 감시, 내부 배신 등 그간 잘 알려지지 않은 단편들을 보여주는 기록으로서 만주지역 독립운동사 연구에 더 넓은 시각을 제시하는 자료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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