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여개 상영관 잡은 '한공주', '10분'보다 흥행수입 100배 이상 많아

예술영화의 관객 편중 현상이 점차 뚜렷해지고 있다. 대기업들이 예술영화 배급 시장을 쥐락펴락하면서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심화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30일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에 따르면 지난 17일 개봉한 '한공주'는 200여 관에서 상영돼 12일 만에 15만 관객(매출액 약 12억 원)을 돌파했다. 적은 제작비로 만들어진 독립영화로서는 이례적인 성적이다.

영화는 개봉 첫날 1만 관객을 돌파한 데 이어 9일 만에 10만 관객을 넘었다. 2009년 독립영화 최고의 히트작 중 하나인 '똥파리'가 18일 만에 10만 관객을 돌파한 것에 비춰보면 훨씬 빠른 속도다.

선댄스영화제와 함께 가장 대표적인 독립영화제인 로테르담영화제에서 작품상을 받는 등 9개 영화제에서 수상하고 각종 언론의 호평이 이어진 것이 흥행의 원동력으로 보인다.

영화를 배급한 CGV 무비꼴라쥬 측은 "영화가 가진 힘이 흥행으로 이어진 경우"라고 분석했다.

그러나 독립영화 치고는 이례적으로 많은 200여 개 관에서 상영된 '폭넓은 배급망' 덕도 간과할 수 없다. 영화를 배급한 무비꼴라쥬는 국내 최대 규모의 멀티플렉스 CGV의 다양성영화 브랜드다.

실제로 비슷한 시기에 개봉한 한국 독립영화들은 개봉관을 많이 잡지 못했고, 그러다 보니 고스란히 수익 악화로 이어졌다.

'한공주'보다 일주일 늦게 개봉한 이용승 감독의 '10분'은 지난 28일까지 23개 관에서 1천254명(매출액 971만원)을 모으는 데 그쳤다. 홍콩국제영화제에서 국제비평가협회상을 받은 수작이다.

2012년 서울독립영화제에서 최우수작품상을 받은 다큐멘터리 '아버지의 이메일'도 21개 관에서 1천704명(1천144만 원)을 동원했으며 부산국제영화제서 호평받은 '셔틀콕'도 30개 관에서 1천857명(1천369만 원)을 모은 데 그쳤다.

'한공주'보다 이들 영화의 상영일수가 일주일 가량 짧지만, 개봉관 수에서 10배, 흥행수입에서는 100배나 차이가 나는 건 양극화하는 예술영화 시장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한 수입배급사 관계자는 "'한공주'의 흥행과 다른 독립영화의 몰락을 보고 이제 독립영화도 100개 이상의 상영관에서 상영해야만 하는가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아트버스터'(Artbuster)를 만드는 건 이제 작품 자체보다는 프린트와 광고(P&A) 비용이라는 생각에 씁쓸하다"고 말했다.

CGV 무비꼴라쥬뿐만 아니다. 태광그룹이 운영하는 씨네큐브도 예술영화계에서는 '갑'으로 통한다. 10년 넘게 서울 광화문에 터잡으면서 예술영화 단골 관객들이 많이 찾아오기 때문이다.

실제로 씨네큐브가 수입해 작년 개봉한 '마지막 4중주'와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는 10만 관객을 넘겼다. 독립예술영화에서는 상업영화 1천만 관객 동원에 비견되는 10만 관객을 1년 안에 두 편이나 넘긴 건 이례적인 성공이다.

이처럼 대기업 진출로 촉발된 예술영화의 양극화 현상을 놓고 부정과 긍정의 시각이 엇갈린다.

정지욱 영화평론가는 "예술영화에서도 대기업의 손을 거치지 않으면 흥행할 수 없다는 새로운 공식이 생겼다. 이는 기존 상업영화에서 오랫동안 되풀이된 병폐가 예술영화에서도 재현된 것"이라며 "대기업이 직접 수입하거나 배급한 영화뿐 아니라 좀 더 다양한 영화들에 극장 문호를 개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영화계의 한 관계자는 "예술영화는 손익이 안 맞을 수밖에 없는 사업이기 때문에 대기업의 사회공헌 관점에서 생각해야만 한다"며 "다만 대기업은 예술영화 시장의 생태계에 대한 책임도 같이 져야 하기 때문에 항상 공생의 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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