西湖를 절세미인에 견주며 아름다움을 극찬하였다

글 章石 徐明澤

우리도 石砌에 둘러 앉아 옛 모습을 생각하며 摩河선생은 書聖何處去란 시제로 전에 지은바 있다고 하면서 오언절구 한수를 읊으니, 곡수에 띄운 술과 함께 분위기가 한층 高調되었다.

曲水流觴繼 유상곡수 이어지고

亭前脩竹幽 정자 앞 긴 대숲 그윽하구나.

鵝池籠鵝叫 아지에 거위는 부르짖는데

天際白雲流 하늘가에 흰 구름만 흘러가네.

보고 싶은 서성은 간데없고 허무하게 흰 구름만 흐른다고 하니 애절함이 절절하다.이어서 時雨同學이 懷古蘭亭을 칠언절구로 읊고 난 후 다시 일순배가 돌아갔다.

永和嘉客萃蘭亭 동진의 가객처럼 난정에 모여

曲水流觴詠歎聽 곡수에 잔 띄우고 영탄함을 듣는구나.

暢敍幽懷胸宇曠 그윽한 생각 펼쳐 가슴속 텅 비우고

渾融物我擬忘形 물아가 하나 되어 자신도 잊었어라.

“예나 이제나 세상과 꿈은 달라도 느끼는 감정은 하나다”라는 난정서의 한 문장이 떠오른다. 끝으로 나는 訪蘭亭幽墟를 시제로 한수를 읊었다.

遙憶蘭亭與友來 멀리 난정을 그리다가 벗과 함께 찾아와

流觴曲水客心開 곡수에 잔 띄우고 나그네 마음을 열었네.

右軍手澤仍餘跡 왕우군 손때가 그대로 남은 이곳

暢敍幽情志氣培 그윽한 정 펼치며 지기를 북돋우네.

그런데 시를 짓는 사람들은 흥에 겨워 더 취하고 못 지은 사람들은 오히려 멀쩡했으니, 當年에 난정에서의 벌주를 마시는 것과는 似而非라고나 할까!

고즈넉한 정자를 찾아 난정서의 주옥같은 구절들을 마하선생이 일필휘지하여 나누어 주시니 즐거움은 더해졌고, 시필하는 모습을 지켜보던 뭇사람들도 탄성과 함께 서로 구하고자 하였으니 서예가로서 맛 볼 수 있는 여행의 또 다른 일미였다. 모래판에 이르러 나뭇가지를 꺾어 錐劃沙를 실험하고 혜풍정의 시원한 바람을 쏘이며 王羲之故居인 계주사로 향했다.

王羲之 故居가 계주사(戒珠寺)로 된 緣由는 ‘왕희지의 집에 스님이 기거했는데 스님과 친하게 지냈다. 어느 날 왕희지가 갖고 놀던 구슬(진주)이 없어져 왕희지는 스님이 구슬을 가져갔다고 의심하게 되었다. 스님은 의심받고 있는 것을 알면서 아니라고 말 할 수도 없고 오랜 知己가 깨질까 속으로만 끙끙 앓다 병을 얻어 죽고 말았다. 그 뒤 왕희지가 기르던 거위를 잡았는데 뱃속에서 구슬이 나왔다. 왕희지는 자신의 잘못을 크게 뉘우치고 스님을 위해 자기 집을 절로 만들고 구슬을 경계하겠다는 의미로 “戒珠寺”라고 명명했으며, 그 이후로 구슬을 가지고 놀지 않았다’는 이야기이다. 의심으로 인해 빚어진 안타까운 인간사의 일면을 보여준 경계의 말을 들으며 書聖古里를 둘러보았다. 주위는 한산 했으며 초라한 陋巷의 모습이 그대로 보존되고 있었기에 1600여년 전 서성 왕희지가 이곳 映月橋를 오가며 살았을 모습이 눈에 그려져 仙境에 온 느낌마저 들었다.

만찬을 위해 식당을 찾아드니 인사동에서 서령필방을 운영, 중국에서 섬유회사까지 경영하는 김우곤 사장이 4시간이 넘는 먼 거리를 한달음에 달려와 반가이 맞아 주었다. 함께 즐거운 식사를 마치고 발 맛사지를 받으며 여정의 피로를 풀었다. 김우곤사장과 노래방을 찾아갔지만 한국가요는 없고 중국노래 몇 소절 따라 부르다 숙소로 돌아와 白酒로 새벽까지 友誼를 다졌다.

셋째 날 아침, 龍井茶농장에 잠시 들려 차를 마신 후 동방문화원으로 향했다.

동방문화원은 주역의 8괘에 따라 건축물이 분포되어 있으며 儒家 ․ 佛家 ․ 道家 3가의 건축물이 세워져 있고, 2728m 길이의 화려하고 예술적인 긴 통로가 문화원을 가로질러 이어져 있었다. 천정엔 일만 개의 작은 부처상이 조각되어 있어 만불당이라 하는데 실제로는 9,999개로 하나는 마음속에 있는 것이라 한다.

大雄寶殿을 지나 香煙이 자욱한 천왕전 앞에 이르니 머리를 조아리며 기도하는 수많은 신도들의 모습에서 심원하고도 오묘한 종교적 염원이 느껴져 경내의 숙연함이 더해졌다. 그동안 많은 사찰을 다녀봤지만 유⦁불⦁도가 어우러진 동방문화원에서의 남달랐던 정취와 감동은 오래 기억 될 것이다.

浙江省美術館에 들려 서화를 관람한 뒤 西泠印社로 향했다. 西泠印社는 청나라 光緖帝(1904년)때 절강성의 賢士 丁仁 ․ 吳隱 ․ 葉銘 ․ 王昱등 4인이 항주 서호의 人倚樓에 모여 발기 창립 하였으며, 金石 ․ 書畵 ․ 篆刻을 연구하는 학술단체였다. 이때 항주에 머물고 있던 吳昌碩도 그 취지에 찬동하여 뜻을 모아 건립된 곳으로 明·淸 시대의 古蹟과 빼어난 園林으로 유명하다. 柏堂 ․ 竹閣 ․ 仰賢亭 ․ 四照閣 ․ 題襟館 ․ 觀樂樓 ․ 還朴精廬 ․ 華嚴經塔 등의 건물이 아름답게 자리 잡고 있으며 각 건물들 사이에는 印泉 ․ 閑泉 ․ 潛泉 등의 샘이 있다. 2001년 6월 근대 및 현대사적으로서의 중요성과 건축의 대표성을 인정받아 전국중점문물보호단위로 지정된 서령인사는 항주를 찾는 모든 이들에게 빼놓을 수 없는 명소가 되었다.

서령인사를 뒤로하며 보행으로 서호에 이르니 안개가 자욱하여 신비스럽기까지 하였다. 나뭇배 3척에 분승한 우리를 노 젓는 사공이 반가이 맞아 주었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흥겨운 노랫가락에 선경에서 노니는 신선이 된 듯 서로의 얼굴에 천진한 미소가 가득 번져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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