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겪는 내리막길…이적은 신중하게 접근"

▲ 독일 분데스리가 도르트문트의 박주호가 지난 2일 인천공항에서 출국에 앞서 연합뉴스와 인터뷰하며 최근 이적설에 대해 "신중하게 접근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연합뉴스 제공)

"어릴 때는 '과정'이라고 표현할 수 있지만, 이제는 작은 것 하나도 '결과'가 됩니다. 이래서 노장이 어려운 거죠."

축구대표팀의 왼쪽 풀백 박주호(30·도르트문트)는 2017년이 남다르게 느껴진다. 1987년 1월생인 박주호는 정유년을 맞아 만 30세에 접어들면서 이름 앞에 '노장'이라는 수식어를 달게 됐다.

2008년 일본 프로축구 미토 홀리호크에서 데뷔한 박주호는 어느새 프로 무대에서 10년째 뛰는 '베테랑 수비수'로 성장했다.

박주호는 프로 무대에 뛰어든 이후 '뒷걸음질' 없이 줄곧 전진만 해왔다.
 
일본 J2리그(2부리그) 미토 홀리호크에 2008년 입단한 박주호는 이듬해 J1리그 가시마 앤틀러스로 이적했고, 2010~2011년까지 주빌로 이와타에서 활약했다.

유럽진출을 꿈꾼 박주호는 2011년 6월 스위스의 명문 클럽 바젤로 이적하더니 2013년 7월에는 독일 분데스리가 마인츠 유니폼을 입으며 승승장구했다.

박주호는 마침내 2015년 9월 독일 명문 클럽 도르트문트로 이적하면서 국내 팬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마인츠 시절 박주호와 사제의 인연을 맺었던 토마스 투헬 감독이 도르트문트 지휘봉을 잡은 뒤 평소 눈여겨봤던 박주호에게 러브콜을 보내 '빅클럽맨'으로 변신에 성공했다. 그동안 현실에 만족하지 않고 항상 '도전 앞으로!'를 외친 박주호의 최고 성과물이었다.

하지만 '슈퍼스타'들의 집결소인 도르트문트의 현실은 박주호에게 그리 친절하지는 않았다.

박주호는 이적 첫 시즌인 2015-2017시즌에 정규리그 5경기와 유럽축구연맹(UEFA) 유로파리그 4경기에 나서며 아쉬움을 남기더니 2016-2017 시즌에는 정규리그에서 단 2경기(선발 1경기·교체출전 1경기)밖에 출전하지 못하고 있다.

이 때문에 박주호는 이번 시즌 분데스리가 전반기가 끝나자마자 이적설에 휩싸였다.

박주호도 '경기에 나설 수 있는 팀'을 내심 그리워하고 있지만 여러 가능성을 열어놓고 신중하게 접근하겠다는 생각이다.

2일 인천공항을 통해 소속팀으로 복귀한 박주호는 연합뉴스 인터뷰에서 만 30세에 접어든 심정과 이적, 그리고 축구대표팀에 대한 솔직한 속내를 털어놨다.

다음은 박주호와 일문일답.

-- 올해 만으로 30세가 됐다. 어떤 느낌이 드나.

▲ 만 나이로 30세가 됐지만 생일이 빨라서 학교에 일찍 입학하다 보니 친구들은 이미 31~32세라서 실감은 크게 나지 않는다(웃음). 하지만 축구 선수로서 30세는 특별한 의미가 있다. 30세는 축구 선수로서 터닝포인트가 될 수 있는 나이다. 지금은 앞으로 축구 인생을 어떻게 펼쳐나가야 할지 결정을 내려야 할 때다.

-- 노장이라는 말이 익숙해질 때가 됐는데.

▲ 어릴 때는 '과정'이라고 했던 작은 것들 하나도 이제는 '결과물'이 되고 있다. 지금은 그런 결과 하나하나가 중요할 때가 됐다. 무엇을 결정하든지 한 번 더 생각하게 된다.

-- 최근 경기 출전기회가 적었다. 어떤 심정인가.

▲ 선수생활을 뒤돌아보면 뒷걸음질이 없었다는 생각이 든다. '실패할 때까지 도전한다'라는 생각으로 열심히 뛰어왔다. 하지만 이번 시즌 출전기회가 적다 보니 실패를 맛보는 느낌이다. 솔직히 티를 내지는 않았지만 2016년은 힘든 한 해였다. 지금의 문제는 나 스스로 풀 수 있는 게 아니다. 몸 상태가 좋다고 경기에 출전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다. 그러다 보니 생각도 복잡해졌다. 벤치에 앉아있다 보면 올해 겪었던 일들이 한 장면씩 주마등처럼 떠오르기도 했다.

솔직히 지금의 상황을 예상했지만 감당하기는 쉽지 않았다. 도르트문트 같은 빅클럽에서는 이런 문제를 스스로 해결해야만 한다. 지금 1군 스쿼드가 27~28명 정도인데 나와 같은 처지에 있는 선수가 7~8명이나 된다.

-- 이적에 관한 생각은.

▲ 사실 정답을 모르겠다. 팀을 옮겨야 한다는 생각도 든다. 지금은 모든 가능성을 열어놨다. 경기를 뛸 수 있는 팀으로 옮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적은 여러 가지 조건이 맞아야 한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이적할 수는 없다. 그래서 더 신중하게 생각하고 있다.

무엇보다 내 이적료가 높다. 그동안 상승세를 그리면서 더 좋은 팀으로만 옮기다 보니 이적료도 높아졌다. 또 이제 적은 나이가 아니어서 새로운 팀을 찾기도 쉽지 않다. 나를 영입하는 구단도 나중에 다른 팀에 높은 이적료를 받고 이적시켜야 하지만 지금 내 나이로는 그럴 가능성이 작다.

예전에 뛰었던 마인츠나 바젤로 이적도 그리 만만하지는 않다. 주전은 보장될 수 있지만 그런 생각 때문에 스스로 나태해질 수 있다. 또 팬들은 기존의 박주호가 보여줬던 모습 이상의 것을 원하게 마련이어서 적응이 쉽지 않을 수 있다.

-- 이적 대상으로 K리그도 생각하고 있나.

▲ K리그 진출 가능성도 열어놓기는 했다. 하지만 아시아 시장에서 K리그는 핵심 선수를 내다 파는 '셀링 리그'가 됐다. 높은 이적료 때문에 사실상 K리그에 진출하기는 쉽지 않다고 생각한다.

-- 축구대표팀이 팬들로부터 차가운 시선을 받고 있는데 어떤 느낌이 드나.

▲ 지난해 11월 우즈베키스탄과 2018 러시아 월드컵 최종예선 5차전을 치르려고 입국한 뒤 대표팀을 향한 팬들의 비판이 최고치에 다다랐다는 것을 실감했다. 선수들도 팬들의 비난을 불안해했다. 그러다 보니 경기도 안 풀리고 자기의 실력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수비진의 고참으로서 차분하게 후배들이 흥분하지 않도록 경기를 조절해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상대는 우리가 조급해지기를 기다렸다. 그래서 무리수를 두기보다는 경기 템포를 조율하는 데 애를 썼다. 동료들에게도 '우리는 위기에 강하다는 것을 보여주자'고 강조했다.

-- 축구대표팀에 임하는 자세는.

▲ 대표팀은 모든 선수가 튀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뒤에서 묵묵히 희생하는 선수가 필요하다. 지금 대표팀의 상황을 보면 고참으로서 내가 먼저 희생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동료의 실수를 메우는 역할이 중요하다. 항상 후배들에게도 이런 점을 강조한다. 내가 잘할 수 있는 것을 잘하고 빈자리를 지키려고 노력하고 있다. 대표팀도 이제는 올라갈 일만 남았다고 본다. 선수들끼리 소통이 잘되고 있어서 앞으로 좋은 모습만 보여줄 것으로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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